[이와오이] 손톱달
사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달 부스러진 조각들이 두 사람의 사이로 쏟아졌다. 미리 펼쳐놓은 신문지 위로 가라앉는다.
“이와쨩, 정말 잘 해야 해? 오이카와 씨, 세이죠의 정세터라고.”
“시끄러워.”
이와이즈미는 짧게 말했다. 일부러 잔뜩 부담을 주려는 듯 늘어놓는 말에도 굴하고 않고 손톱줄을 만진다. 분명 큼직하고 단단한 남자의 손인데 내미는 자세만큼은 네일샵에 온 계집애 같다. 가지런히 보인 손등으로 잔상처가 드문드문 보인다. 오이카와의 오른손 중지에 삐죽 튀어나온 흰 부분이 그의 손길에 따라 짧아지기 시작한다. 한 팀을 책임지는 손이다. 오이카와는 왼 손으로 제 턱을 괴곤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으아, 역시 불안한데 말이지. 치이에게 맡길 걸 그랬나.”
“나한테 해달라고 하루 종일 쫓아다니던 놈이 누군데 그래.”
이와이즈미가 살풋 인상을 썼다. 오이카와의 말이 불만스러워서가 아니라 단순히 제 행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마치 자장가처럼 슥슥 톱질 엇비슷한 소리가 귓가에 내려앉는다.
“하지만 치이라면 매니큐어라도 바를 태세였는걸…. 오늘 치이쨩 손톱 봤어? 예뻤지.”
“너 말고 누가 남의 여자친구 손톱 같은 데까지 보겠냐.”
“하긴, 그도 그런가.”
손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 오이카와는 대신 발끝을 까딱였다. 이와이즈미는 이제 오이카와의 약지를 다듬고 있었다. 이미 지나온 손가락을 바라보니 모양이 썩 괜찮아. 심각하게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딱 제가 늘 다듬어왔던 모양대로다. 그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어제 치이가 가져다 준 주먹밥 맛있었지?”
“네 어머님이 가져다주신 거 아니었냐? 맛이 딱 그랬는데.”
“아니야. 그런데 치이가 만들어주고 싶다기에 오이카와 씨가 엄마에게 부탁해서 레시피를 가져다주긴 했어.”
아, 어쩐지 맛이 비슷하더라. 이와이즈미가 납득했다. 맛있었지? 오이카와는 발작적으로 한 번 더 캐물었다. 그래. 실제로 그는 지난 날 멸치볶음 들어간 주먹밥을 세 개나 해치웠다. 오이카와 씨도 치이라면 오래 사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이와이즈미는 한탄처럼 뱉었다.
“엑. 이와쨩, 어째 날 불신한다?”
“네 놈이 갈아치운 여자가 얼만데. 당연하지.”
“이번에는 진짜야!”
오이카와가 빽 외쳤다. 이와이즈미는 코웃음만 쳤다. 얼씨구, 네가 잘도. 와중에도 시소처럼 기울어지는 손톱줄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진짜라니까? 이번에는 천년만년 행복할 거거든.”
“잘됐네.”
“아오, 진짜.”
이와쨩이 내가 얼마나 치이를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래. 이틀 전에는 우리 키스도 했거든? 놀이터에서 말이야…. 시끄러워, 집중 안 돼. 이와이즈미는 손톱줄로 오이카와의 손등을 가볍게 때렸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 오이카와는 울상을 지으며 그를 흘겼다. 지금 이와쨩, 세터의 손을 때린 거야? 어?
“시끄럽고 빨리 왼손 내놔.”
“벌써 다 했어?”
“애초에 수시로 다듬는 손 굳이 더 손 댈 것도 없잖아.”
빨리 하고 치워버리겠다는 의사가 만연하다. 오이카와는 투덜거리면서도 제 오른손을 꼼꼼히 훑었다. 흠 잡을 곳이 없나, 했더니 과연 없다. 분명 이와쨩이라면 남의 손톱 다듬어 줄 일이 없을 리가 당연한데도. 어쩔 수 없이 그는 왼손을 내밀었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고개를 내려 그의 엄지부터 다듬어갔다. 오이카와는 엄지를 굽혀 두 번째 손가락부터 시작되는 제 손톱 끝들을 한 번씩 매만져보았다. 부스러기 남은 손톱은 매끈했다.
“이와쨩.”
“그래.”
“내일 치이가 연습 끝나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그래.”
“나 치이랑 같이 하교한다?”
그러던가. 이와이즈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오이카와가 아무리 그의 표정을 살펴보아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다. 어쩔 수 없이 오이카와도 더 이상 말하기를 거부하고 그가 제 손톱 다듬는 모양만 빤히 응시했다.
시옷으로 시작하는 소리가 두 사람의 사이에 맴돈다. 오이카와의 손 아래 감추어진 열 개의 하얀 초승달은 이와이즈미에 의해 천천히 마모되고 있다. 그러나 흰 달은 아무리 갉아 먹혀도 결코 사라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감정이었으니까.
손톱의 잔해들이 먼지처럼 오이카와의 거짓말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