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오이] 그리하여 불멸이여,
오이카와가 우시지마를 만난 것은 중학교 1학년 여름이었다. 어릴 때부터 배구를 좋아했지만 정식으로 대회에 나간 것은 그 해가 처음이었다. 그 어린 시절의 연습이 헛되지 않았는지 신입생임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주전 선수가 된 오이카와는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랐다. 어쩌면 그에게는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학교는 현 지역 예선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그는 최초로 벽을 마주했다.
소학교 때부터 유명하다고 하더라. 선배들 못지않게 키가 컸고 힘이 셌다. 시라토리자와 중등부는 고작 초등학생에 불과한 소년을 오직 ‘배구’ 때문에 자신의 학교로 영입했다고 하였다. 실제로 그는 오이카와와 같은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에이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낙지이후에 처음으로 패배했다.
압도적인 점수 차. 공이 자신의 머리 바로 옆을 스치며 지면에 처박힌다. 초점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오이카와는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심판의 휘슬이 이명처럼 퍼진다. 너. 그의 시선이 네트 너머를 응시했다. 우시지마가 단단하게 서 있다. 네가 누군지 알아. 밀물처럼 당겨오는 기억이다. 시선이 흙빛이 된다. 우시지마는 코트 위의 어둑시니가 되었다. 과거라 칭하기에도 민망한 전생을 상기한다. 거짓말처럼.
첫 번째 생에서 우시지마는 왕이었다. 폭군은 자신의 하루에도 네댓 씩 죽어나간 신하의 이름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생에서 우시지마는 사냥꾼이었다. 그는 노루를 활로 쏘아 단숨에 숨통을 끊었다. 그는 때론 짐승이 되기도 했다. 암컷을 두고 영역싸움을 하는 도중 경쟁자의 목을 물어뜯어 죽였다. 한 생에선 병사였다. 그는 침략한 마을의 계집을 겁탈하고 목을 잘랐다. 지난 모든 생에 종도 이름도 달랐지만 오이카와는 필연적으로 죽임 당했다. 그리고 그만은 본능적으로 우시지마의 존재를 꿰뚫었다. 이번 생도 같았다. 오이카와는 단초에 육도를 돌고 깨달았다.
너, 또 나를 죽이겠구나.
우습게도 그 자각에 패배에 의한 좌절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뒤덮는 것이다. 칼날이 목덜미에 닿던 순간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정말 빌어먹게도 오이카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곳은 처형대가 아닌데. 우시지마는 여전히 무심한 낯으로 코트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고 그의 몸집은 한 없이 커져만 갔다. 몇 십 번 살해당해 창백한 송장을 끌어내린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오이카와, 어서 정렬해. 그 말에야 가까스로 뒷걸음질했다. 첫 만남이었다.
대회가 전부 끝나고 나서야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생겼다.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과연 이번 생에서 우시지마는 어떻게 저를 죽일까? 불온당한 망나니는 칼춤을 추며 도련님의 목을 쳤다. 가난한 시녀는 제 마님의 패물을 훔치고 안채에 불을 질렀다. 계급과 성별에 상관없이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죽이게 되어 있다. 마땅한 결말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와쨩, 나 배구 그만둘까.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나, 죽기 싫어. 무릎을 모으고 체육관 끄트머리에 주저앉았다. 어린 오이카와는 진실로 살고 싶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를 내려다본다. 시라토리자와에게 패배한 이후 오이카와는 줄곧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는 패배에 분해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소꿉친구를 이해할 수가 없어 툭 말을 던졌다. 네가 왜 죽어. 코트 위에서 살인은 룰에 어긋난다고.
그 말에 계속 배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우시지마가 코트 위에서만은 자신을 죽일 수 없을 테니까. 대회에서는 관중들도 모두 저희를 내려보고 있다. 오이카와는 코트 위에서만은 안전해질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동시에 상기와 같은 연유로 필연적으로 우시지마를 만나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죽음 대신 패배와 친해졌다. 죽음이든 패배든 가해자는 우시지마였다. 어느 쪽이든 끔찍했다.
그에게 굴복한 수가 현생에서만 한 손가락을 넘겼다. 그렇다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이카와는 목에 낫을 걸고 매일을 보냈다. 입시를 준비하게 되면서 더 심해졌다. 우시지마는 그를 볼 적마다 시라토리자와에 오라고 제안하였다. 치밀한 범행 성명이다.
오이카와가 악몽을 꾸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다. 꿈의 디테일은 전부 제각각이었으나 끝은 같았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에게 살해당한다. 때로 그는 오이카와를 짓밟아 죽였고 입 안에 총구를 처넣기도 했다. 하루는 지하철 플랫폼에서 저를 밀쳤고 다른 날에는 목을 졸랐다. 오이카와는 꿈에서 깰 때마다 직감했다. 이 중 하나가 내 기정된 미래다. 우시지마의 얼굴을 만나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나는 네게 죽을 것이다. 과거를 엮어 얻어낸 현실이 괴물이다.
이따금 차라리 먼저 죽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너무 살고 싶지만 그보다 우시지마의 손에 죽는 게 더 싫었다. 공포와 열등이 숫돌이 된다. 숨이 갈리는 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죽을 듯이 뛰었지만 결국 그의 먹이가 되었던 삶을 기억한다. 어쩌면 이번 생에 그는 오이카와를 천천히 피말려 죽일 셈일지도 모른다. 이를 악물며 서브를 날렸다.
고등학교 3학년, 오이카와는 여전히 시라토리자와 앞에 무릎 꿇는다. 올가미를 씌워주기만을 기다리는 사형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도 패배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살인자는 무덤덤한 낯으로 지껄인다. 오이카와, 너는 길을 잘못 들였다. 적어도 네가 그 말을 지껄여선 안 되지. 잘못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라 너를 만난 삶과 나를 관통한 모든 죽음이건만.
결국 그는 살기 위해 배구를 그만두었다. 오이카와가가 끝까지 배구를 안고 갈 거라 장담했던 이와이즈미는 복잡한 낯으로 저를 바라보았다. 미안, 이와쨩. 난 살고 싶어. 어린 시절의 연장이다. 그의 사정을 모르는 이와이즈미는 이해할 수 없을 터다. 하지만 오이카와가 진학한 곳이 스포츠재활학과인 것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에 진학하자 드디어 우시지마와 떨어졌다. 사신이 모습을 감춘다. 드디어 그는 목울대를 떨 수 있게 되었다. 오이카와는 그제사 고작 코트 위에서는 살인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배구를 계속했던 스스로가 얼마나 멍청했는지를 깨달았다. 언제 죽을지 몰라 안심할 수 없는 낮은 볕마저 비참하지 않던가. 매일 다른 방법으로 심장 식던 밤도 멎었다. 더 이상 끓는 쇳물을 품지 않아도 된다. 비로소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
살아갈 수 있을까?
오이카와는 가장 최근의 죽음을 떠올렸다. 전쟁에 끌려갔고, 우시지마는 자신의 위로 미사일을 떨어뜨렸다. 그때 자신은 스물여섯이었다. 딱 지금과 같은 나이였다. 수 세기에 걸쳐 손에 피를 묻힌 치가 제 앞에 가까스로 앉아 있다. 몸의 반이 붕대다. 무기를 들기는커녕 앉아있음에도 목발에 몸뚱이를 지탱한다. 그 자신은 개의치 않은 듯 묵묵한 낯이나 보기에 초라했다. 생경하다. 그는 멍청하게 눈을 떴다. 우시와카쨩? 그는 이런 모습의 우시지마는 처음 보았다.
필연적으로 피해자는 폭력의 가해자에게 위압을 느끼지 마련이다. 아무리 오이카와라 한들 다른 바 없었다. 심지어 그 폭력이 살인이라는 점으로도 모자라 한 자리에서만 퇴적된 것에야. 헌데 그 단단하던 지층이 반으로 조각난다. 처음으로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과연 네가 나를 죽일 수 있을까? 의심이다. 이는 곧 희망이라, 어쩌면 이번 생에는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네, 우시와카쨩. 그런 것 치고 꼴이 말이 아닌 것 같지만.”
“배구를 그만뒀다더니 여기서 일을 하고 있었던 건가.”
웃음이 흘러나왔다. 응. 수려한 곡선. 그가 이끄는 마차에 치였을 때를 떠올렸다. 모든 뼈가 으스러졌다. 살려달라고 외쳤는데 너는 직진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내려다보았다. 반파한 신체. 그 꼴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 사뭇 희열까지 느껴졌다. 광소를 억누른다. 이런 모습은 또 새롭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넨다.
처음 겪은 패배 이후로 지척에 도사리고 있던 두려움이 무색해진다. 어깨높이로 팔을 올리는 것조차 버거운 네 모습이 지나치게 겨웠다. 오이카와에게 있어 죽음은 곧 우시지마다. 그를 지배해온 명제가 이 순간 역전한다.
이번 생은 너로 인해 불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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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지마를 만난 이후부터 오이카와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고교의 연장이다. 다만 내용은 반전되었다. 이번에 죽이는 자는 우시지마가 아닌 오이카와다. 오이카와는 매일 밤 우시지마를 칼로 베고 총질 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밀쳐 떨어뜨리고 영영 나오지 못할 물속으로 처박았다. 꿈에서 깰 때마다 오이카와는 시원하고도 찝찝한 기분이 휩싸였다. 과연 나는 우시지마를 죽이고 싶었던 걸까? 그가 불행했으면 했다.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도 자주 생각했다. 내가 죽은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 그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던가? 일말의 양심이 쿡쿡 찔렸다.
상반되는 죽음이 매일 달 아래를 방문하고 재활치료는 느리게 이루어졌다. 애초에 어느 정도 우시지마의 부러진 뼈가 붙고 치료가 시작할 모양새가 갖추어져야 했기에 시간이 걸린 것이다. 우습게도 우시지마는 그 와중에도 가공할 회복력을 발휘했다. 우시와카쨩, 참 대단하다. 오이카와는 프로그램을 설명해주기 위해 찾아간 우시지마의 병실 안에서 빈정거렸다. 그는 처음 재회했을 때 본 붕대의 반을 벗었다. 그는 찬찬히 멀쩡해지고 있다. 아, 그 광경이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남자가 자신을 죽일 준비를 하는 것만 같았다.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친다. 오이카와는 최소한의 설명만을 마친 채 도망치듯이 병실을 벗어났다. 이곳이 내 무덤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면 흰 벽이 납골당의 자그마한 칸막처럼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우시지마. 한낮에 선 어둑시니의 이름. 오이카와의 평생에 걸쳐 드리워질 가장 긴 그림자. 목발을 짚지 않고선 걸을 수가 없던 우시지마는 이제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었다. 팔근육이 재생된다. 그 결과의 반절이 자신의 공이다. 스스로 무덤을 판다. 두려움이 목을 조른다. 멍청한 오이카와, 몇 달 전의 자신에게 조소를 던졌다. 그 꼴로는 나를 죽일 수 없을 거라고? 오만이다. 저 자는 아직까지도 건재했다. 그것이 억울했다. 왜 저 치만.
그 날 밤에는 직접 두 손으로 우시지마의 손을 조르는 꿈을 꿨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으나, 아직까지 성치 못한 자가 오이카와의 상대가 될 리는 만무했다. 숨이 꺼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한시에 눈이 축 늘어지고 몸이 감긴다. 필사적으로 오이카와의 어깨를 밀어내던 손이 떨어진다. 참으로 고요한 낙하라, 결국 빛이 시들어 유리처럼 반들거리는 눈동자 너머로 비치는 스스로를 보며 오이카와는 잠에서 깨어났다.
한 치 앞이 보이질 않는 허공을 직시하며 그는 불현듯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수도 없는 전생에서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충신이기도 했고, 생판 남이기도 했으나 그의 주인이기도 했으며 형제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한 때 둘도 없는 벗이자 심지어는 부부였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사랑하기도 했고 존경하기도 했다. 지금은 문드러진 감정들이 오이카와의 어슴한 가장자리에 곰보로 남는다. 내가 잘못을 하던 하지 않았던, 결국 네가 나를 죽였잖아. 억울함에 울음이 차고 올랐다. 절명에 대한 공포는 이토록 끈질기다.
오이카와는 정말이지 살고 싶었다. 그는 하고 싶은 것이 참으로 많았다. 그가 죽는다면 다시 배구도 할 수 있다. 이 어쩔 수 없는 열등과 두려움도 식을 터였다. 매번 우시지마가 자신을 죽일 때마다 그에게 품고 있던 감정들이 바닥으로 꺼진 것처럼. 누구도 말하지 않은 예언이 숨구멍을 덮는다. 우시지마와 재회한 이후 그의 수명은 착실히 줄고 있었다.
“안색이 좋지 않군, 오이카와.”
유난히 질린 낯의 오이카와를 차분히 뜯어보던 우시지마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차트를 들여다보고 있는 안경 너머의 눈가가 붉었다. 밤이라도 제대로 자지 못한 건가, 싶다. 오이카와는 훈련 첫날 체크했던 그의 신체검사 결과와 바로 어제 재검사한 결과를 비교하는 중이었다. 고작 10주의 기간 답지 않게 비약적으로 멀쩡해졌다. 아무리 그래봤자 선수생활은 무리겠지만. 오이카와는 한쪽 입매를 비틀어 웃었다.
“좋지 않긴? 오이카와 씨가 얼마나 기쁜데.”
“무엇이?”
“우시와카쨩, 아무리 노력해봤자 평생 배구는 못할 테니까.”
고약한 심보가 고스란히 튀어나온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세 달 전보다 마른 턱선이 우시지마의 시야에 들었다. 재활치료를 시작한 이후 죽어가던 근육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하는 저와 비교된다. 진정 그는 오이카와를 양분삼아 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시지마는 아아, 느리게 수긍했다. 그는 예상 외로 제 미래에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아무렇지도 않아? 슬퍼하는 표정이 아닌데.”
글쎄. 우시지마는 느즉하게 시선을 돌렸다. 만약 그만두게 된다면 그건 타의에 의해서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단 초. 다시 오이카와를 바라본다. 그는 상대에게 되물었다.
“너는 왜 배구를 그만뒀지?”
“하? 그런 거 알아서 뭐하게.”
“오이카와.”
그는 능숙하게 우시지마의 물음을 무시했다. 내일부터는 훈련 내용이 조금 바뀔 거야. 더 힘들어질 걸. 우시지마는 한 번 더 말했다. 오이카와. 그는 신경질적으로 차트를 뒤집었다.
“우시와카쨩이 싫어서? 자, 이제 빨리 나가버려. 물리치료 늦지 않았어?”
그리고는 우시지마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그가 자신의 가장 싫은 부분을 찔러오는 것도 짜증났다. 당사자에게 네게 죽기 싫어서 그리 말하라고? 농담이 따로 없다.
“오이카와.”
오이카와가 그를 지나쳐 사무실을 나가려는 것을 우시지마가 가로막았다. 뻗은 팔이 그의 손목을 가로챘다. 환자라고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억센 힘이다. 무력. 오이카와는 얼었다. 잡힌 것은 팔인데 서늘해진 것은 목덜미다. 그가 왜 저런 이상한 이유로 자신을 붙잡는지 보다, 충분히 우시지마가 자신을 죽일 힘이 있다는 인지가 더 강하게 내달렸다. 너. 오래 전 아주 강력한 스파이크의 귓가를 가까스로 비키고 지나갔을 때처럼. 곧 나를 죽이겠구나. 본능이 속삭인다.
“이유를 말해라.”
이해할 수 없는 집착이다. 마치 우시지마는 오이카와의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이카와는 침을 삼켰다. 다시 낫이 목에 걸려, 목울대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웠다. 이미 죽은 시체마냥 파란 입술로 겨우 말한다.
“만약 그만두게 된다면, 그건 자의에 의해서여만 했으니까.”
타인에게는 제가 제 의지로 배구를 그만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국 그가 그만둔 것은 우시지마에 의해서였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위장이었다. 오이카와는 우시지마를 겨우 뿌리치고 문을 열었다. 폐가 쪼그라들었다. 그는 스스로의 입을 막았다. 죽음이 지척이었다.
그 날 밤, 오이카와는 회귀했다. 그는 우시지마가 자신을 죽이는 꿈을 꾸었다. 손목을 틀어쥐고 칼로 배때기를 쑤셨다. 붉게 물드는 너의 손. 기어코 원점이다. 내가 너를 사랑해도 너는 날 죽였잖아. 너를 증오하는 지금은 얼마나 고통스럽게 목숨을 거둬갈 지 상상하기가 끔찍하다.
오이카와는 허덕였다. 잠이 드는 것이 두려웠으나 기어코 꿈은 찾아왔다. 너는 나의 살점을 생으로 삼킨다. 죽음은 수억인데 추락하는 영혼은 하나다. 일곱 번째 밤, 그는 호흡이 힘겨워 한참을 침대 위에서 허덕였다. 많은 죽음으로 그는 제가 죽기 직전임을 깨달았다. 숨이 버거웠다. 산소가 부족해 뿌옇게 흐려지는 정신으로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그가 죽는다면 이 모든 죄악 역시 식을 터였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다면, 이 영원할 공포도 그를 향한 감정과 함께 사라지는 걸까?
그렇게 의식을 잃었다. 깨어난 날은 병실 위였다. 다행히 룸메이트인 이와이즈미가 발견하여 구급차를 불렀다 했다. 오이카와는 살아났다. 그는 제 몸이 어색하여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입원한 곳은 제가 일하는 재활 센터와 이어지는 병원이었다. 우시지마가 입원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혹시 모를 검사를 위해 이틀 더 입원하기로 했다. 오이카와는 육인실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았다. 지난 밤, 까무룩한 머리로 떠오른 한 물음이 도저히 사라지질 않았다.
그는 충동적으로 발을 디뎠다. 방해가 될 링겔은 일찌감치 뽑아냈다. 손등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우시지마의 병실은 알고 있다. 일본 국가대표 선수가 쓰는 병실은 그답게 값비싼 1인실이었다. 어둔 복도를 소리 없이 딛는다. 제 발로 걸어가는 묘지. 고요하게 문을 연다. 묘비의 이름은 아직 알 수 없다.
짙게 두른 암막 새로 사물의 윤곽만이 어슴푸레했다. 오이카와는 걸음을 디뎠다. 고른 호흡. 우시지마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자는 듯 했다.
만약 그를 죽인다면, 지금이 적기였다.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았다. 우시지마를 죽이는 방법은 아주 잘 알았다. 구십일의 밤 동안 구십 가지 행동을 행했잖은가. 심지어 개 중 몇은 저가 과거에 직접 그에게서 당한 것이다. 오이카와는 제 양 손을 올렸다. 가장 손쉬운 살해다. 열흘 전의 환각과 동일하게 목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더 이상 삼킬 산소가 없던 순간 늘어지는 신체. 엄지로 기도를 막고 힘을 가했다. 떨어지던 시선, 그 차분한 하강.
이제 곧 다급하게 몸을 들썩일 것이다. 팔을 휘저으며 어떻게든 생을 갈구하겠지. 그 맨질한 눈동자는 결국 아무 것도 투과하지 못하고….
“…….”
눈이 마주친다. 오이카와는 숨을 삼켰다. 반사적으로 목을 쥔 손에 강하게 힘을 줬다. 검은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정확하게 자신을 보고 있다.
“너….”
우시지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팔을 들어 필사적으로 오이카와의 손을 떼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오이카와를 마주하고만 있었다.
왜. 오이카와는 가까스로 한 마디 내뱉었다. 이해의 범위를 넘어섰다. 범인이란 무릇 필사적으로 미래를 갈구하지 않던가. 자신처럼. 결코 덤덤하게 죽음을 받을 수는 없다. 아무리 우시지마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영역이다. 이어야만 했다.
과연 그의 얼굴은 희게 질렸을까? 이 방만 잉크 엎질러진 것처럼 까매 알 수 없다. 우시지마는 본능이 구걸하듯 가끔 끅끅거리는 소리를 토했다. 입술이 반쯤 벌려진다. 삼키지 못하는 공기가 그 언저리에서만 맴돈다. 거친 호흡. 그러나 반항 없는 신체. 정작 힘을 주는 오이카와의 양 팔이 파르래하니 떨린다.
“너, 왜. 가만히 있는 거야.”
목소리가 진동한다. 울먹이는 것 같기도 했다. 우시지마는 꿈에서 본 어느 모습과도 달랐다. 입술을 빠끔거린다. 바람빠지는 소리. 당연히 언어는 되지 못한다. 숨이 모자라 허덕임만 몇 번. 에, 오? 오이카와는 그 흐린 가장자리를 잡아내려 애썼지만, 불가능했다. 그는 팔에 힘을 주었다. 우시지마의 상체가 한 번 들썩인다. 삭아드는 호흡. 우시지마는 팔을 들었다. 역시 살고 싶은가, 생각했는데 오이카와의 왼 손등에 손을 얹는다. 여전히 힘은 없다. 대신 그의 지문 위로 핏방울 몇 자국이 번진다. 아, 순간 우습게도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마지막 문장을 이해했다.
이제 공평해지니까.
오이카와는 갑작스레 사위가 고요해졌다고 생각했다. 모든 소음이 호흡을 중단한다. 심지어 손아귀 아래로 진동하던 맥박마저 멎는다. 더 이상 그의 눈동자에 저는 비치지 않는다. 너. 느즈막이 손을 뗀다. 제 손등에 얹어진 것이 미끄러져 시트 위로 떨어졌다. 그제야 더 이상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자각한다. 다만 잠 든 듯이 정지한.
눈만 뻐끔거리다, 조심스레 불러본다. 우시와카쨩? 방금 그 말 뭐야. 뭐가 공평해진다는 건데?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기실 영혼에 각인된 생으로 이해했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의 영혼을 쥔 제 손아귀를 내려다보았다. 검었다. 그대로 어둠에게 잡아먹힌 듯이. 우시지마. 이번에는 제대로 이름을 불러본다. 마땅히 답은 없다.
아, 진정 죽음이 갔나? 제가 영영 보냈나? 알 수 없다. 감정은 죽지 않았으므로. 신뢰도 사랑도 분노도 전부 떠났는데 공포는 여전히 그의 옆에 도사리고 있다. 우시지마에 의해 죽을 현생을 넘어 이제는 그와 재회할 사후로 잔존한다. 오이카와는 죽음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기쁨도 없다. 여전히 꿈 같았다. 이제는 깨어날 수도 없고 무던히 이를 수 밖에 없을 삶처럼.
그리하여 불멸이여, 너는 내게 환영으로 타올라라. 나의 생은 줄곧 영점(零點)일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