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오이] 낱말의 해체 1
이분(二分)이 한 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학을 앞둔 삼학년의 겨울이다. 모든 3학년들은 춘계 고교 대회 이후 수순에 따라 은퇴하였기에 허공으로 붕 뜬 시간은 미래를 향한 불안과 설렘으로 채워졌다. 확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고민들이 병렬로 맴돈다. 이를 테면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렇다면 전공은 또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 졸업 후에는 어떻게 돈을 벌면서 살아야 할지, 그리고 정말로 너와 나는 떨어져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와쨩.”
오이카와는 책상에 걸터앉아 길쭉한 다리를 붕붕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가 책상 무너진다, 망할카와. 저 한 번 돌아보지 않은 주제에 제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곧장 핀잔이 떨어진다. 그 모습이 와중에도 줄곧 제게 신경을 놓지 않는 것 같아 뿌듯해졌다. 괜히 더 크게 다리를 흔들며 옆을 보았다. 그의 바로 옆 책상에는 오이카와가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체육 교사가 시킨 일에 몰두하는 이와이즈미가 온전하다. 그 모습이 기꺼워 절로 히죽거리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응응, 알았어. 알았긴 개뿔, 내 책상 흔들린다고. 와중에도 오이카와가 모르는 반 아이들의 이름이 쓰인 갱지는 착실히 이와이즈미의 손을 타고 넘어갔다. 이와이즈미는 인상 찡그리는 법 없이 기초체력 측정 목록을 정리했다. 애초에 귀찮기만 할 뿐 그렇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도 아니었다. 하이바라라는 성을 단 남자아이의 결과표를 손에 집다 말고 그는 고개를 돌렸다. 다소 기울어진 해에 비치는 오이카와를 응시한다.
“왜 자꾸 보는데.”
“그야 이와쨩, 나랑 안 놀아주니까.”
“체육관이라도 가 있지 그랬냐?”
“그게 말이야,”
오이카와 씨도 그러려고 했는데. 넌지시 건넨 제안을 줄곧 기다려온 것처럼 그는 연신 말을 토해냈다. 해가 바뀌니까 애들도 한층 건방져진 거 있지? 아니, 이제는 은퇴한 선배가 기껏 연습 도와주러 가도 또 왔냐며 지겨운 얼굴을 하더라니까? 완전 귀찮은 티만 풀풀 내고 말이야…. 누가 봐도 투정부리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그 투정을 받아주기엔 지나치게 매정했다.
“나 같아도 그러겠다. 은퇴한 후 두 달이 넘게 일주일에 다섯 번씩 체육관에 출근 도장을 찍는데 누가 널 은퇴한 선배로 생각하겠냐?”
무심히 한 마디 던지고 다시 종이에 집중한다. 와, 너무해! 그 전에 오이카와 씨, 주장이거든? 주장이‘었’겠지. 단거리 기록, 멀리 뛰기 기록…. 전부 정리하며 전 부주장은 친절하게 그 말을 정정해주었다. 오이카와는 제 교실보다 친숙할 체육관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 상당히 불만인 성 싶었다. 애초에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닌 터라 이와이즈미는 금세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그래도 야하바는 오이카와 씨가 오면 좋아하거든? 그런데 쿠니미쨩 표정이 완전….”
“알았어, 알았어.”
이와이즈미는 종이를 한데 모았다. 한숨을 쉬는 듯 오이카와의 어깨를 붙잡아 몸을 반쯤 일으킨다.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 떨어졌다. 종알거리는 입을 다물게 하기엔 지나치게 깃털 같았음에도 오이카와의 말은 쉬이 멎었다.
가방을 걸친 이와이즈미가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무 빠진 의자가 나무 바닥과 마찰하는 울림이 생생했다. 오이카와는 한 박자 늦게 책상에서 뛰어내렸다. 나란히 교실을 나선다. 기습공격은 반칙인 거 알지? 알겠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교실 문을 잠글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었다. 이제 두 사람의 가방은 스포츠백이 아닌 평범한 책가방이다. 서포터도 유니폼도 넣고 다닐 일이 없는 사각 천 내부에서는 필기구 부딪치는 소리만 털거덕 울렸다.
한층 아래 내려가 교무실 앞에 서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기다릴래, 들어갈래? 이대로 들어가면 선생님께 눈치 보일 것이 뻔해 오이카와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으며 제 목도리를 더 단단히 여몄다. 그를 두고 혼자 안으로 들어간 이와이즈미는 이미 체육 교사가 일러준 대로 다른 반들의 기초체력 측정지가 어지럽게 쌓인 교무실 한쪽 선반 위에 제 반의 것 역시 올려두었다. 최종적으로 반 열쇠까지 두고 나온다. 문을 열자 오이카와가 보였다.
“…로 가겠다는 거니?”
“네. 뭐, 그쪽도 조건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그것도 그렇지만,”
정확하게는 오이카와의 옆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의 담임이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멈칫했다. 문이 열리는 요란한 잡음에 두 사람의 대화도 멈췄다. 두 사람이 동시에 저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이와이즈미는 얼결에 제 반의 수업을 맡기도 하는 영어 선생님께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와이즈미 군이구나. 그녀는 가볍게 인사를 받은 후 다시 오이카와에게 말을 건넸다.
“자세한 건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자.”
“엑, 저 상담 끝난 거 아니었어요?”
“오이카와 군은 특별히 2차 상담이야.”
선생님 너무하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복도 전체에 윙윙거린다. 본디 그는 누구에게나 친근함을 가장하는 남자였다. 그녀는 장난스러운 말에 대꾸를 해주며 이와이즈미를 지나쳐 교무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얼굴을 보았다. 무어가 불만인지 입은 웃고 있으면서도 한쪽 눈가가 일그러져 있다. 이와이즈미는 빠르게 그가 담임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를 추측했다. 어딘가로 가겠다, 조건, 상담. 최근의 시기에 있어선 굉장히 뻔한 단어의 도열이었다. 두 사람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이와이즈미는 넌지시 말했다.
“대학?”
“응.”
예상대로 오이카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1차 추천입학 전형 마감이 이번 주였다. 이와이즈미는 일찌감치 갈 곳을 정해놓았던지라 마감 일자도 잊고 있었다. 기껏해야 2부 대학 리그나 미야기 현 내의 대학에서 제의가 온 저와 달리 오이카와는 꽤 여기저기에서 제의를 받은 것으로 기억했다. 중학 시절에도 그는 그랬다. 물론 이와이즈미는 그 사실에 단 한 번도 질투를 느껴본 적 없었다. 오이카와의 노력에 비하면 그에게 오는 제의들은 한 치도 모자람 없었으니까.
“어디 갈 건데?”
“도호쿠.”
“미쳤냐?”
그래서 그는 오이카와의 대답을 납득할 수 없었다. 신발을 갈아 신다 말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굽혔던 허리를 다시 편다. 이미 운동화를 신은 오이카와는 말간 낯으로 웃고 있었다. 에이, 이와쨩.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이와이즈미는 완전히 색을 지웠다.
“왜 네가 겨우 거길 가는데.”
“왜긴? 집이랑 가깝잖아.”
“웃기는 소리 하지 마. 1부 리그에 들기는커녕 전일본전에서 3일째 1회전에서 탈락하는 대학을 고작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네가 선택한다고?”
“와, 이와쨩. 자기가 갈 대학인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저도 모르게 코웃음이 나왔다. 현실이었다. 도호쿠 대학 배구부가 약세임에도 불구하고 저가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제게 온 다른 추천장들의 발신지와 내용을 고려했을 때, 이곳이 제일이었기 때문이다. 제게는 도호쿠가 최선이었다, 오이카와와는 달리.
“반응 차가워. 오이카와 씨가 이와쨩이랑 같은 학교에 간다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좋아해야 하는 거 아냐?”
오이카와가 제 실내화를 신발장 안에 넣어두었다. 이와이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신발코를 두드려 미처 들어가지 못한 발을 천 안에 우겨넣는다. 저가 구겨지는 기분이었다. 반가움보다 불안이 사십 배는 더 컸다.
“왜 다른 곳도 아니고 도호쿠에 가겠다는 건데.”
이와이즈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음, 오이카와는 잠시 고민하는 척 그의 눈치를 살폈다. 어쩜 그라면 화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예상이 들어맞을 줄이야. 그는 색색으로 깔아놓은 블록을 걸어 내려가며 느릿하게 대답했다.
“일단 집에서 가까우니까, 괜히 자취다 기숙사다 할 것 없이 비용도 적게 들 테고.”
“그리고.”
“4년 장학금 주겠다는 제안도 왔었으니까, 거의 공짜로 학교 다니는 셈이잖아. 대우도 좋았고….”
“그리고.”
“뭐, 그렇다는 거지. 그래도 도호쿠는 관북에서는 꽤 잘나가는 학교잖아.”
“그리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렸다. 빨개진 하늘 아래로 이와이즈미의 덤덤한 얼굴이 불처럼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멈추지 않고 물었다. 그리고? 마치 오이카와의 답이 끝나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어쩌면, 앞서 말한 모든 이유들은 그저 뒤에 나올 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붙여둔 변명이라는 것도. 이번에는 오이카와 역시 뻔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입술을 어물거렸다가, 결국 제 답을 기다리는 듯 얌전히 저를 응시하는 이와이즈미의 시선을 피했다. 마치 죄 지은 것 마냥 말한다.
“그리고, 너도 있고.”
“…….”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노을이 지옥 어귀마냥 울렁였다.
이와이즈미는, 아주 불현듯 3년 전의 이맘때를 떠올렸다. 고교 입시로 떠들썩한 겨울이었다. 일반 전형으로 가야 할까, 들어오는 추천 제의를 받아야 할까 갈피를 못 잡고 전전긍긍하던 와중에 우연히 한 소식을 들었다. 오이카와가 시라토리자와에서 추천 받았대. 뭐? 시라토리자와 고등부라면, 이삼년 전 봄고에서 카라스노에게 졌을 때를 빼면 늘 전국에 갔던 곳이잖아. 그런 강호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다니 오이카와도 진짜 대단하긴 한가보다. 동급생의 감탄 섞인 목소리가 참으로 괴이쩍게 들렸다. 같은 날 오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오이카와, 너 고등학교 정했냐? 너는 도리어 의아하다는 듯이 대꾸했더란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이와쨩? 우리 같이 아오바죠사이로 갈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제가 무어라 답했더라. 이와이즈미는 쓴웃음 지었다. 다만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함에 취해 그랬지. 라고 대답하고 말았노라 기억한다. 시라토리자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들은 것이 없는 척 했다.
어쩌면 이건 그 외면에 대한 죗값일지도 모른다. 3년을 돌아 비로소 맞이하는 마땅한 인과. 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그 때와는 달리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미 갈라진 몸을 한데 묶는 행위는 도리어 독이었다.
그랬다. 어처구니없게도 지금 이 순간, 이제야 비로소 이와이즈미는 실감하고 만 것이다. 그가 품은 열등도 재능도 무엇도 아닌 바로 자신의 존재가 오이카와의 찬란할 미래에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된다. 참혹했다. 헤매면서 나아가라 그랬던가. 우습지도 않은 충고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오이카와.”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마치 어떠한 전조 같았다. 해 마저 잠시 기울임을 멎은 듯 했다. 평소처럼 이름을 불렸을 뿐인데 등줄기가 차게 식는다. 오이카와는 제 발에 저려 괜히 한 번 더 강조했다. 뭐라고 하지 마. 정말 오이카와 씨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고 결정한 거니….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리 헤어지자.”
오이카와는 변명을 멈췄다.
“이와쨩, 뭐라고 그랬어?”
대신 되물었다. 헤어지자고. 이와이즈미는 참으로 덤덤하게 말했다. 참으로? 그래, 참으로. 오이카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문을 빠져나간 지 이제 고작 5분이 되었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버스로 십오분은 걸리는 길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약속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동행해야 했다. 그러니 물리적으로 흩어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의미는 하나이리라. 오이카와는 무너지는 입매를 애써 끌어올렸다.
“나 그런 농담 싫어해.”
“농담 아니야.”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건데?”
떠오르는 가정이라곤 이와이즈미와 같은 대학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뿐이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그 결심이 두 사람이 이별하는 일이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연인의 입장에서는 제 말에 기뻐해야 정상이었다. 상식을 떠나 감정적으로도. 저 자신도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심사숙고를 했던가. 제 미래 중 일부를 바치는 일이었고, 마땅히 가벼운 마음이 될 리가 없었는데.
“그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우리에게?”
“너에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눈가가 일그러지는 것을 꼼꼼하게 새겼다. 반쯤은 충동적인 말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아직은. 비록 이 이별이 영원이 아닐지라도 저희는 잠시간 떨어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오이카와 뿐만이 아닌, 어쩌면 둘 모두를 위해서.
“내가 너와 같은 대학에 간다는 것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솔직히, 반은 맞아.”
이해할 수가 없네. 오이카와는 걸음까지 멈추며 제 본심 하나 감추지 않고 전부 말했다. 세이죠에서도 함께 있었잖아, 계속. 여태껏 잘 해왔잖아. 왜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는 건데?
“…….”
그 말이 공교롭게도 이와이즈미의 내장을 헤집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시라토리자와에게 패배당한 채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질 못하고 주저앉는 것을 ‘잘 해왔다’고 정의내리는 행위 자체가. 저희끼리 매번 시합이 끝나고, ‘그래도 우리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모두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것과 이 세계에 안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고하자면 이와이즈미는, 3년 전 오이카와가 갈라질 것이 두려워 발휘한 한 번의 이기가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에 어떠한 죄악감마저 느꼈다.
“너는 잘 해왔지. 근데, 오이카와. 솔직히 냉정하게 말하면 ‘우리’의 배구는 항상 그대로였잖아.”
발전하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야. 결국 상대적인 선상에서 보면, 우리의 배구는 일보 내딛지 못했어. 오이카와의 낯색이 차게 식었다. 진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어째서 이와이즈미와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는 납득하지 못했다. 오이카와는 무어라 말하려던 것을 계속 억눌렀다. 끊임없이 인내하는 사람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자칫 삐뚠 말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배구는 배구의 일이고, 너랑 사귀는 건 별개의 일인데 왜 그것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지 모르겠어.”
“별개의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이와이즈미는 어느 봄 날 들었던 오이카와의 고백을 기억한다. 현민대회가 끝난 3월의 주말이었다. 그 때의 문장은 이와이즈미의 뼈에 조각되었다. 그 감내 못할 벅참을 잊지 않겠노라 새긴 것이 지금에 와 선혈로 흐른다.
난…. 오이카와는 무어라 말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조금만 있다 이야기하자. 그는 저 뿐만 아니라 이와이즈미 역시 상당히 감정적으로 격해진 상태라는 것을 알아챘다. 아마 이대로라면 대화는 어느 쪽으로도 향하지 못한 채 말다툼만 하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주먹싸움을 하게 되면 몹시 곤란했다. 대회 기간이 아니니 부상으로 출전 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고, 은퇴를 했으니 출전 정지를 당할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둘 모두 운동하는 사람이다.
찬바람에 목도리 꼬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오이카와는 제 입을 목도리 사이에 파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얼굴을 줄곧 바라보았다. 휘지 않는 눈매가 단정했다. 그것마저 사랑스러워 제 말을 철회할 의지를 다시 한 번 잃었다. 버스를 타는 동안까지도 적막만이 흘렀다. 내일 보자, 라는 말 한 마디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와이즈미는 집에 완전히 도착해 책가방을 의자에 내려놓을 즈음에야 하, 하고 알 수 없는 탄성을 토했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는 오이카와가 저 때문에 개화하지 못하고 언저리에서만 맴도는 삶을 절대 원치 않았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정상에 올라갈 가치가 있는 선수였다. 넌지시 그의 부모님에게서, 그리고 교무실에서 들었던 추천장 수만 해도 한자리 수를 꼬박 넘겼다. 대부분이 도쿄였고, 개 중에서는 전국에서 강호로 소문난 이름도 몇 있었다. 그곳이 오이카와의 자리였다. 자신이 그에게 배구와 다름없다 하여 제 곁에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비록 제 말이 조금 심했던 것 같지만, 조금 더 차분하게 오이카와가 다른 대학에 가게끔 설득을 했더라면 좋았을 지도 모르지만. 비록 오이카와가 당장 보고 싶을지라도 이 발언에 후회는 없다. 지금 당장 그에게 있어 후회스러운 것은 지금이 아닌 3년 전의 언젠가였던 것이다. 그 때 일찍이 오이카와에게 말을 했더라면, 내가 욕심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에게 제대로 된 승리를 선사할 수 있었을 텐데….
문득 진동이 울렸다. 오이카와인가 보다, 하고 이와이즈미는 핸드폰을 열었다. 기대와는 달리 시답잖은 메일이 와 있었다. 100% 당첨! 설문 조사에 응해주세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이 단 한가지의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스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내용이 마치 당장의 심정이라도 읽은 것 같아 우스웠다. 이와이즈미는 답장 않고 곧장 삭제를 눌렀다. 그러나 잠시간 3년 전의 겨울이 스쳐지나갔다.
그때 오이카와는 카게야마로 인해 상당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수도 없이 오버워크를 하고, 승리와 진화를 탐하면서도 결국 자신과 함께 아오바죠사이로 진학할 것을 선택했다. 한 편 자신은 오이카와가 품고 있던 불안을 꺼뜨려주었으나 그에게 차마 시라토리자와로 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네게 있어 훨씬 옳은 결정임을 알면서도.
있잖아, 오이카와. 나는….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가 선사하는 눈부신 어떤 것과 자신을 추악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관하여. 그는 오이카와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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