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팔뚝 위로 가느다란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A, S위에는 X, C, E. 뻘뻘 땀 흘리는 종자가 근육 불거진 팔에 찰싹 매달린 채 도안을 완성했다. 그는 땀을 슥 닦고 사내 티 풍기는 청년에게 물었다.


원하는 대로 다 그렸습니다. 이대로 새기면되는 건가요?”


에이스는 고개를 거울 너머로 비치는 모양을 보았다. 제 몸에 영원히 새겨질 상처일 텐데도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좋네! X가 해적기처럼 보여야 하지만이것도 나쁘지 않아.”

, 바꿔드릴까요?”

아냐. 그냥 해. 얼른 하고 끝내자.”


씩 웃으며 하는 말에도 문신사는 어쩐지 겁을 먹은 듯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이 남자가 근래 위대한 항로를 들썩이는 스페이드 해적단의 선장임을 안 이상 어떤 민간인이라도 두려워 할 밖에. , 그럼 소독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냉큼 서둘러 소독을 한 후 기계를 손에 쥐었다. 저를 해치려는 기색은 아직까지 보이지만, 상대는 해적이다. 어찌될 줄 모른다. 그는 어떻게든 빠르고 완벽하게 일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가실 줄을 몰라, 손이 가늘게 떨린다.


첫 잉크가 A의 꼭짓점에 박힌다. 에이스는 자리에 앉은 채 미동 않았다. 조금 따끔한 정도였다. 견딜 만 했다. 그는 얼마간 맞은편의 거울만 응시했다. 꽤 집중하는지, 옆의 문신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감각만으로는 우둔한 통증만 있을 뿐, 정작 지금 그가 A를 그리고 있는지 Z를 그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에이스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문신을 새기기로 한 계기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해적이니 해적다운 겉모양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린 혈기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문신이란 게 떠올랐다. 아프다는 동료들의 엄살이 있었지만 해적이 그 정도도 못 견뎌서야 쓰나. 어떤 것을 새기지?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평생 한 자리에 박혀 있어도 질리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만하기도 했다. 그는 흔쾌히 결정했다. 곱씹을수록 그럴듯하다 여겼다. 팔뚝에 이름을 새기면 쉽게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기도 했다. 이미 현상수배자가 되었고 값은 오르고 있다. 이따금 누가 어디서 찍는지, 사진도 최근 사진으로 바뀌곤 했다. 그렇다면 팔뚝에 제 이름자 새겨도 좋으리라. 사진을 보는 모두가 자신이 에이스임을 알 수 있도록.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이 바다를 재패할 것임을, 다른 어떤 수식어도 아닌 그저 에이스(ACE) 석 자로 박아두라고.


한데 결심하고 나니 돌연 제 벗, 아니, 형제가 떠올랐다. 먼저 바다로 떠난 이였다. 어쩌면 벗도 형제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에이스는 어렴풋이 상기한다. 그를 향한 감정은 루피를 향한 것과 약간 달랐던 탓이다. 제 해적단의 동료를 대하는 것과도 달랐다. 첫 친구라서 그럴까. 우정, 처음, 배 다른 형제. 여러 가지 거창한 단어들을 나열해 보아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표현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만나지 못한 세월이 오래되어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억은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


한 가지 말해볼까. 기실 그는 자신이 제 첫 사람을 잊는 것이 겁이 났다.


가장 먼저 바다로 나가 자유로워지자고 말한 것도 그 아이였건만 형제 없는 바다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무수한 경험들이 포개어져 아이를 묻어버릴까 두려웠다. 내 기억 속의 영원할 열 살짜리 동갑내기. 남자는 제 존재를 온전히 신뢰치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먼저 떠난 형제를 팔에 새기기로 한 것이다. 피부에 박음질한다. 멀리 멀리, 혹은 그만치 깊숙한 아래로 떠났을 촌스러운 졸리 로저를. 어린 시절 종종 심장이 울컥이곤 했던 아이의 이 빠진 못난 웃음을. 때 묻은 태양빛 머리카락을. 아직까지 이름 모르는 감정을.


사보를.


에이스는 눈을 뜬다. 문신사는 어느덧 형제의 이니셜 위로 X자를 덧그리는 중이. 아프지 않았다. 충분히 견딜 만 했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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