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 에이사보 전력 120분 참가글. 주제 : "우리 언제 만났었나?"




있잖아, 에이스. 바람결 사이로 나직한 물음이 터졌다. 에이스는 여전히 제 손을 열심히 움직여 수전으로 상대의 긴 머리를 털어주면서 고개만 힐끔 위로 들었다. 방 한 켠에 놓인 거대한 거울 너머로 상대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 역시 어디서 만나지 않았었나?”


그의 눈동자는 까만색이었다, 의동생과 똑같은. 물음에는 에이스조차 손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이리저리 나부끼던 남자의 젖은 머리카락도 내려앉는다. 머리카락은 금빛이다. 에이스와도, 루피와도 닮지 않은 색이다.


짧은 침묵이었다. 거리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두 사람의 뿌리까지 파고들었고 벽면의 커다란 창문 너머에서 내려온 햇살이 길게 에이스의 등까지 뻗어 아버지 같은 선장의 문신을 반짝거리게끔 만들었다. 제 등에 닿은 온기를 자각하는 수 초 동안 에이스의 머릿속으로 온갖 종류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그치곤 꽤 답지 않은 고민거리였으나, 결국 남자가 선택한 답은 아래다.


뜬금없이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저가 침대 아래 바닥에, 에이스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터라 그를 보기 위에서는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아무리 제 시력 좋다 해도 거울 너머로 보이는 낯은 상당히 작았다. 하며 그는 차라리 고개를 위로 꺾기로 했다. 길쭉하게 늘어난 목울대 위로 목젖이 도드라지고 물기 뚝뚝 떨어지는 곱슬머리는 본래 길이를 넘어 등까지 닿는다. 완전히 고개를 꺾으면 어제 종일 보았어도 지루하지 않는 얼굴이다. 눈동자 색을 제하면 하나도 저와 비슷하지 않았다. 아니, 머리길이도 얼추 비슷한가? . 하지만 머리 길이는 자라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데구르르 굴러가는 동공은 과거를 상기한다. 멀지 않다.


임무를 마치고 혁명군 본부인 바르티고로 귀환하던 중, 불가피하게 식재료가 떨어져 도중 보이는 섬에 잠깐 정착했다. 흰수염 해적단의 기가 커다랗게 펄럭거리는 곳이었다. 위대한 항로는 물론이고 신세계에 넘어가면 사황의 보호를 받는 섬은 흔했다. 흰수염의 본선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가 소란을 피울 것도 아니고. 사보는 가까이에 배를 대 물자를 보충했지만, 떠나기 전 곧 경계 해역에 커다란 태풍이 불 테니 잠잠해진 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주민의 충고를 얻었다. 예상대로 공기가 심상치 않아, 그는 흔쾌히 수긍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마침 해역을 지나던 흰수염의 본선 역시 태풍을 피하기 위해 이 섬에 잠깐 정착했다.


이미 대단하신 몇 분들은 혁명군 참모총장의 이름을 알고 있을 즈음이었다. 얼굴 팔렸다간 큰일이 날 게 뻔해 그는 급히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늘 먹던 대로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운이 나쁘게도 저가 있던 식당에 흰수염의 대장나리들이 몇 명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서 이 남자를 보았다.


머리에 얹은 주황색 모자와 등에는 흰수염. 팔뚝에는 자신의 이름인 듯 보이지만 이름이라기에 뭔가 이상한 문신. 동료에게 건네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기이하게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희한한 사내였다. 주근깨 콕콕 박힌 얼굴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낯설지 않았다. , 그러고 보니 언젠가 현상수배지로 보았던가? 그 때문인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눈이 따라갔다. 어느 샌가 저는 남자의 앞에 서 있었다. 이름도 알고 있었다. 포트거스 D. 에이스. 언제부터 알고 있던 이름인지는 모른다. 칠무해 제안을 걷어찬 대단한 루키라고 동료들이 떠들던 무렵이겠지. 간 큰 신인은 처음이라고 꽤 자주 소식을 지껄였으니 알게 모르게 뇌리에 박혔을지도. 어떻게든 적절한 개연성을 찾아내려는 이성과 별개로 몸이 움직였다. 겁 없게도 그는 흰수염의 섬, 모비딕 본선이 연안이 닻을 내리고 있으며 흰수염의 대장이 4명이나 있는 그 공간에서 무작정 그리운 냄새 풍기는 사내의 팔을 잡았다. 뭐야? 날 선 시선 몇 쌍이 동시에 제게 내리꽂혔더란다. 그러나 사보는 아랑곳 않고 물었다.


저기,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었나?


그 때 에이스의 표정이 지금과 같았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릴 적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로 기억력이 나날이 나빠져만 가는 듯하다. 지금처럼 울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왜?”


현실로 돌아온다. 사보는 눈을 두 번 깜박인다. 앗차, 생각에 빠져있느라 대답을 안 해줬었구. 하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말이지.


그냥 느낌이.”

느낌이?”

옛날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옛날 어디?”

그건 나도 모르지.”


사보를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알고 있으면 물어 볼 필요도 없었겠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낯선 것에서부터 그리운 냄새를 맡을 때가. 길 잃은 적도 없는데 제자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전투 연습 중 돌연 잡게 된 쇠파이프가 그랬고, 식량 없이 바다에 조난당했을 때 해왕류를 잡으며 연명했던 언젠가가 그랬다. 에이스를 만난 순간도 그랬다. 이제껏 해가 서쪽에서 기상해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어서,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햇살 맞은 순간 , 사실은 그랬지.’ 깨달았다. 정체 모를 안도가 페부를 가득 수놓았다.


사실은 우리가 형제였을 수도 있잖아.”

하아? 내가 어릴 적 기억이 없다는 핑계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늘어놓는 거 아냐?”


에이스는 어설프게 웃었다. 입매가 빙그레 호선을 그렸다가 어정쩡하게 멎는다. 사보는 인상을 찡그리며 에이스의 낯짝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백 번 다시 봐도 눈동자 색을 제하면 하나도 닮지 않았다. 형제라니. 헛소리도 가지가지다. 내가 그런 농담에 속을 것 같아?


무엇보다 가족이면 연애는 못하잖아?”

, 그렇지.”


결국 거짓말이 맞다는 거네! 에이스가 들고 있던 수건을 냉큼 빼앗아 후려친다. 그러나 진심 반 섞은 보람도 없이 자연계 능력자답게 불꽃이 물리적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하하. 그가 짧게 웃음을 터트린다. 뭐 이런 장난 가지고, 하하. . 팔랑이는 수건 사이로 잔웃음소리가 섞인다. . 결국 에이스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보의 허리를 잡아 저가 몸 뉘인 침대 옆으로 슬쩍 던졌다. ! 갑작스런 반격에 그가 탄성을 뱉었다. 에이스는 능숙하게 몸을 굴려 사내의 양 팔을 붙잡고 위에 자리 잡는다.


그치? 보통 형제는 이런 짓은 안하잖아.”

무슨 소리야. 형제도 아니라며?”


아래 깔린 사내가 고개를 슬 기울인다. 그보다 무장색 쓰기 전에 얼른 비키지? 무겁다? 껄렁껄렁하니 이어지는 말은 과연 혁명군 2인자답게 협박조다. 하하. 에이스는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리며 사내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작위적이었다.


그렇지. 아니지.”


읊조리는 목소리는 쓸쓸했다.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사보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사내의 등 위에 손바닥을 얹는다. 그는 자신과 만날 때면 종종 급작스레 기분이 전환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닿아, 그는 제대로 덩치만 큰 어린애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하긴, 이런 놈을 제가 잊었을 리 없지.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남자의 존재는 상당히 강렬했다. 감정도. 에이스 정도라면 옛날 어디선가 만났더라도 보는 순간 기억했겠지. 사보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리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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