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3.

이후로 보답을 하겠다는 남자의 막무가내에 따라 사보는 오색 빛무리에 끼어들었다. 본인은 보답이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사내는 저 좋을 대로 돌아다니기 바쁜 것 같았다. 지나가다가도 음식만 보면 달려가서 입 안에 한가득 쑤셔 넣기 일쑤였다. , 이 녀석이겠구나. 아까 제가 지나갈 적에 벌써 재료가 동이 났다던 닭꼬치집의 범인이 누군지 절로 짐작 가능할 정도였다.


어이, 이거 맛있어.”


남자가 해수고기 다섯 개를 내밀었다. 그래도 열 개 주문해서 하나만 나눠주지는 않네. 사보는 그 부분을 높이 평가하며 한꺼번에 세 개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 역시 먹는 양으로는 지지 않았다. 덕분에 전투적으로 배를 채운 두 사람이 여유를 가진 것은 마지막 후식으로 산 파일애플 꼬치를 하나씩 손에 쥘 즈음이었다.


으아, 잘 먹었다!”

그러게. 덕분에 포식했어.”


사실 종반부에 이르러서는 에이스가 돈이 없어 사보가 대신 냈지만, 둘 중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볼록 튀어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주근깨 사내가 파인애플을 한 입 먹는다.


이런 마을 축제는 처음인데, 꽤 괜찮네. 분위기도 신기하고.”

아아. 나쁘진 않아.”


사보가 동의했다. 시야 너머에서는 아이들이 종이 뜰채로 금붕어를 잡고 있었고, 바로 옆에서는 몇 사내 녀석들이 사격놀이를 하고 있었다. 우락부락한 체격에 맞지 않게 귀여운 분홍색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있던 남자 한 명이 에이스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선자앙! 이것 보슈!”

푸하하하, 뭐야. ! 갑자기 웬 토끼냐!”


내가 딴 거유! 앞으로 얜 나랑 잘 테니까, 건들지 마쇼! 서로 아는 사이인 듯 했다. 사보는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트리는 사내를 웃는 낯으로 응시했다. 역시 해적인 듯하다. 그것도 선장. 아까 전 당했던 놈이 현상금 사냥꾼이었겠군.


선장도 한 번 해 보는 게 어때? 이거 의외로 재미있다고. 잘 넘어가지도 않고.”

그래봤자 먹지도 못하잖아.”

, 이 놈의 선장은 뭐든 음식으로 치환 못해서 탈이야.”


동료들과 함께 있던 스페이드 선원 한 명이 다가왔다. 해적단의 간부기도 한 듀스였다. 그는 낄낄 웃으며 간이 사격장 쪽을 턱짓했다. 저거, 백발백중하면 가장 큰 인형도 주지만, 대신에 웨스트블루 산 술 한 통과도 교환 가능하다더라고. 아까 전에 우리 저격수는 다섯 통이나 들고 갔. 지금쯤이면 갑판에서 다 같이 술판 벌이고 있을 걸?


술판이라는 단어가 에이스의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래? 그럼 저기서 다섯 통 더 들고 가면 내가 영웅이 되는 건가? 아서라, 총도 제대로 못 쏘면서. 시끄러워, 두고 보라고. 남자는 제 동료들 사이를 비집고 사격판을 향해 척척 다가갔다. 사보는 그의 뒷모습 멀뚱하게 보다가 따랐다.


아저씨! 나 한 판 할래!”

오오!”


함성소리가 유난히 요란스러웠다. 경계 없이 마냥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조금은 낯설다. 그는 웃는 낯으로 한쪽에 몸을 피해준 간이상점의 주인장 곁에 몸을 약간 기대고 섰다. 한 가운데에 선 사내는 상체를 굽히고 신중한 낯으로 총을 겨눈 채였다. 꽤 어설픈 포즈다. 사보는 속으로 단정했다. 저 자는 사격에 있어서는 초심자다.


으악!”


보라. 첫 발이 훌륭하게 빗나갔지 않은가. , 하는 커다란 소리와 반동에 깜짝 놀라는 청년을 보여 모든 구경꾼들이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공교롭게도 그 웃음이 그를 자극했다. 분한 얼굴로 다시 총을 잡는다. 사보는 남자가 쏜 총이 전부 과녁을 빗나가는 모양을 지켜보며 힐끗 주인장을 곁눈질한다. 제 손님들이 해적임을 아는 데에도, 돈이 되기 때문인지 해적들이 선한 인상이기 때문인지 경계 없이 웃고 있다.


이렇게 성대하게 축제를 열고, 인형까지도 저렇게 가져다놓는 걸 보면 이 섬에는 상선이 자주 다니나 봐?”

? 아아, 그렇지.”


갑작스런 질문에도 주인은 선선히 대답했다. 에잇, 한 판 더! 저 앞에서 남자의 외침이 우렁차다.


축제가 아닐 때에도 그러는 걸 보면, 혹 섬에 특별히 유명한 음식이라도 있는 거야?”

특산품은 없지만, 경로상 꾸준히 이 섬 해역을 지나야하는 상선이 있거든. 잘못해서 배 하나가 침몰하면 큰 피해를 입게 되니까, 상사(商社)의 사람들이 꾸준히 이 섬에 들려 제를 지내지. 그들도 해신을 믿거든. 덕분에 상선이 자주 드나드는 거야. 가끔 물자도 지원해주고.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지.”

헤에, 그렇구나.”


팔짱을 낀 채 상황을 관조하던 사보가 입매를 빙그레 올렸다. 이거로군.


혹시 상사의 이름이 뭔지 알아?”

모를 수가 없지! ‘심층해류우미트가 운영하는 곳인걸.”

, 땡큐.”


해운왕인가. 그는 겉으로는 반듯한 해운업을 하지만 뒤쪽으로는 불법적인 물건들을 옮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름대로 어둠의 세계의 제왕 축에 끼는 사람이니까. 우미트가 이곳에서 경로를 세탁하나 보군. 이걸로 대부분의 퍼즐은 맞춰졌다. 사보는 손가락을 끝을 두드렸다. 코알라와 핵에게 연락할 일만 남았군.


으아! 한 판 더다!”

푸하하. 선장, 안된다니까? 포기하자! 주먹이면 또 몰라!”

게다가 지금 내는 돈들도 전부 내 돈이라고!”


이번이 마지막이야! 불행하게도 지금까지 단 한 발도 맞추지 못한 사내는 급기야 씩씩거리며 제 셔츠를 벗어젖혔다. 잘 짜인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오오오! 같은 선원들의 장난스러운 함성 소리가 윙윙 울려 퍼진다. 시선의 끝에는 장난기 모조리 버린 채 심호흡하며 총구 겨누는, 제 또래의 남자가 있다.


문신이 있었네. 사보는 단정한 글자의 나열을 읽어 내렸다. ASCE. 아스세? 아니, S 위에는 엑스 표지가 드려져 있는데. 잘못 쓴 건가? 하지만 문신을 잘못 새겼다면 그냥 지우면 되잖은가. 굳이 위에 엑스 자를 덧그릴 필요 없을 텐데.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엇보다 문신은 도안을 몇 번이고 확인한 이후에 새기므로 부러 저리했을 확률이 크다. 무슨 거창한 의미라도 있는 걸까. 세간에 떠도는 모양을 뒤적이지만 어떤 약자나 상징도 저것과 같지는 않았다. 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악! 아슬아슬했는데!”


. 소리가 울렸으나 이번에도 썩 좋은 결과는 낳지 못했다. 총을 놓고 양 손으로 제 머리를 쥐어뜯는 행동에 팔방에서 와르르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사보도 짧게 어깨를 들썩였다. 해적이라기보다 승부욕 넘치는 소년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 따지자면 그가 이제껏 만난 해적 중 첫손에 꼽힐 정도로 천진난만했다.


남자는 남은 3번의 기회를 신중하게 소진했다. 두 번은 빗나갔으나, 그의 노력이 빛을 냈는지 운이 좋았는지 마지막은 다행스럽게도 인형 하나를 맞추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였으니 전자로 인식해도 될 것 같다. 사내는 신사 모자를 쓴 파란 곰 인형이 뒤로 넘어가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우왁!” 소리를 지르며 제 동료를 얼싸안았다.


선장! 최고에요! 우와!”

크하하하, 곰 인형을 누구 코에 가져다 붙이려고 그래요?”

내버려 둬! 선장도 밤에 끌어안고 같이 자려나 보지!”

, 선장. 그건 못 먹는 거요!”


우습게도 마지막으로 외친, 톰이라는 해적의 말에 들뜬 낯으로 주인에게서 인형을 받아들던 에이스의 표정이 곧장 굳었다. 그의 눈이 어색하게 주인에게로 향했다.


. 이건 술로 못 바꾸는 거야?”

못 바꾸네.”


주인장이 씩 웃으며 단호하게 답했다. 조그마한 술 한 병은? 안 되네. 그럼 혹시 고기라도, 무리야. 재차 이어지는 확답에 인형을 든 남자의 어깨가 시무룩하니 내려앉는다. 제 선장이 우울해지는 게 어찌나 즐거운지, 주위의 선원들은 낄낄 웃음 터트리기 바쁘다. 그러게 누가 해본 적도 없는 사격에 도전하랬수? 위대한 항로-비록 낙원이라 해도-을 누비는 해적단 치고는 상당히 내부에 위계질서가 느슨한 편인 듯 보였다. 사보는 여전히 조금 떨어진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낄 정도로 친한 것도 아니고, 저 역시 곧 일을 하러 가봐야 했으니까. 물끄러미 관조하던 시선이 돌연 낯선 것과 맞부딪친다. 눈이 둥글게 뜨인다.


, 잘됐네! 어이! 이거 가져, 선물이야!”

나보고 지금 이런 인형을 가지라고?”

뭐 어때. 들었겠지만, 이래봬도 내가 무려 해적단의 선장이거든? 그런데 이런 귀여운 인형 같은 걸 선실에 두고 다니면 선장으로서의 위엄이 서겠냐고. 먹을 것도 아니고, . 네가 가져.”


에이스가 씩 웃으며 저를 향해 곰 인형을 냉큼 던졌다. 둥글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자, 사보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붙잡았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다. 그는 떨떠름한 낯으로 인형을 둘러보았다. 혁명군 참모총장이 가지고 있기에도 지나치게 귀여운 물건인데. 더군다나 저건 어딜 보아도 귀찮아서 제게 떠넘기는 모양새다. 거절을 말하기 위해 고개를 올리려는 찰나, 어느새 다가온 남자가 사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툭툭 두드렸다.


오늘 즐거웠어! 고기도 맛있었고! 난 이만 이 녀석들이랑 돌아가 볼게. 같이 가서 술 마시자고 성화네.”

나 같은 사내놈이 가지기에도 인형이 지나치게 귀엽단 생각은 안 드나보지?”

뭐 어때. 똑같이 귀엽잖아. 나 인형 따는 거 구경한 값이라고 쳐.”


솔직히 지금 내가 저런 걸 가지고 있는 것도 우습고 말이야. 분명 나중에 만나면 욕할걸. 손을 흔든 사내가 금세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멀리 나아진다. 사보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한 번 인형을 보았다. 단순히 인형이 파랗다고 생각했으나 자세히 보니 이 봉제 곰은 까만색 실크 해트를 쓰고 있는 것도 모자라 겉에 파란색 코트를 입고 있었다.


잠깐만, 저는 분명 유카타를 입고 있었는데. 혹시 이미 제 정체를 알고 있었나? 분명 늘 입던 복장이 곰 인형이 입은 것과 비슷했다. 이름조차 한 번도 부르지 않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선장, 곰 인형을 줬던 놈은 누구요? 처음 보는데.”

? 나도 이름 모르는데.”

예에?”

선장은 이름도 모르는 사내자식에게 인형을 준답니까? , 고백이라도 했수?”

저녁에 같이 다녔거든. 어쩌다 보니. , 하지만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네.”


멀리서 어슴푸레한 목소리들이 잦아들었다. 잔뜩 패기까지 곤두세우던 사보의 기세가 금세 사그라진다. 그냥 제게 주었나 보다. 깜짝 놀랐네. 이미 받아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 사보는 수긍하고는 해적이 걸었던 방향과 정반대편으로 걸어간다. 코알라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함이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가던 차에 안쪽에 넣어둔 애기전보벌레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보는 곰인형을 제 오른쪽 옆구리에 낀 채, “나야.” 수화기를 얼굴에 붙였다.


사보, 큰일이네. 꽤 성가신 인물이 섬에 상륙한 것 같은데. 일이 잘못하면 수틀릴지도 모르겠어.”


핵이었다.


성가신 인물? 해군 대장이라도 왔대?”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그럼 사황?”

그건 아니고.”

아니면 상관없잖아.

, 말 좀 듣게! 불주먹 에이스를 모르나? 샤봉디까지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현상금 2억을 넘기는 해적이라네.”

불주먹 에이스?”


불빛 드문 골목의 한 가운데에서 사보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그는 잠깐 앞뒤로 고개를 돌려 인적이 느껴지는지 확인했다. 인기척은 없다. 그래. 수화기 너머로 핵이 고개를 주억이는 듯 했다. 그러나 사보의 대답은 냉담했다.


그게 누군데?”

? 사보, 정녕 스페이드 해적단을 모르는가? 최근 바다에서 대형 루키라고 명성이 자자하다고. 혁명군 내부에서도 몇 번 이름이 올랐던 걸로 알건만.”

그런 거 몰라.”

부디 관심 없는 이야기는 금세 잊어버리는 버릇 좀 고침이 어떤가?”

어쨌든 이 섬에 해적들도 현상금 사냥꾼도 상당한 건 사실인 것 같아. 나도 해적들을 만났거든. 그리고 좋은 사실도 알아냈어. 아마도 우미트가 여기서 한 번 경로 세탁을 거치는 것 같아.”

, 우미트가 말인가?”

방법도 대충 짐작이 가. 그렇다면 따로 무기들을 숨길 은신처는 없을 거야. 코알라 쪽으로 합류해. 나도 그쪽으로 갈게.”

하지만 사보, 여기서 수상한,”


. 혁명군 참모총장이 전보벌레를 끊었다. 그리고 핵에게 말했던 대로 코알라가 있을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핵이야 불주먹이니 스페이드니 하는 해적을 거론했으나 큰 상관은 없을 테다. 코알라나 핵이 겨우 신생 해적단에게 당할 정도로 못 미덥지는 않으니까. 그냥 스친다면 좋고, 만약 그들이 우미트와 연관되어 있다면 쳐부수면 그만이다. 곰 인형을 품에 안은 채 걸음 옮기는 사보의 왼쪽으로 아릿하게 아쉬움이 스치운다.


불주먹이니 뭐니 하는 이름은 관심 없지, 제게 인형을 쥐어준 녀석의 이름은 알아둬도 나쁘지 않았을 거라는 이유 없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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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잠시만. 우리 저거 하나만 먹고 가자!”

하나가 아니라 다섯 개겠지.”

어쨌든!”


고소한 냄새가 풀풀 풍겨 나왔. 사보는 헛웃음 치면서도 무작정 제 손목을 잡고 끌고 가는 사내의 뒤를 따랐다. 매콤한 양념이 벤 해수고기의 냄새는 그로서도 꽤 입맛이 당겼기 때문이다. 노점상 앞에 도착하자마자 얼결에 동반하게 된 남자가 이거 열 개만 줘!’를 외쳤다.


주황색의 독특한 모자 아래 뺨 점점이 박힌 주근깨가 썩 매력적인 사내였다. 사보는 미간을 좁혔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외는 데에도,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에도 썩 좋은 실력이 되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그는 대부분의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가 해적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는 불과 반 시진 전으로 시계바늘을 역행시킨다.


사보가 이 섬을 방문하게 된 것은 전쟁 중인 나라에서 자금과 무기가 들어오는 경로를 조사하던 중, 이 섬을 마지막으로 끊겼기 때문이다. 아마 이곳에서 누군가가 돈과 무기를 세탁하리라. 짐작하고 코알라, 핵과 함께 이 섬에 당도한 차였다. 섬에는 특이한 점이 없었다. 무기의 제조공장도, 해군이나 해적의 보호 아래 있지도 않았다. 다만 매해, 섬의 해역 근처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치는 것을 해신(海神)이 분노하였다고 생각하며 제를 올린다고 했다. 상자 안에 돈을 넣어 해신에게 바친다나, 뭐라나. 축제를 위해 해군 해적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자주 이 섬을 방문한다고.


아무리 뒤져도 찝찝한 부분이 그 부분 밖에 없어 코알라는 섬의 축제진행위원회 측에 숨어들기로 했다. 핵은 만일을 대비해 마을 근처의 동굴이나 은밀한 장소를 찾으러 떠났고. 사보는 전반적인 축제의 동태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과정에서 사보는 코알라에게서 연락을 받게 되었다. 하필이면 과일사탕 두 개를 사들고 가던 중이었다. 다급히 불빛 화사한 대로에서부터 벗어나, 사탕 두 개를 한꺼번에 쥐고 전보벌레의 수화기를 잡아 어깨에 올렸다. 입 안에 씹고 있던 계란 센베를 급하게 꿀꺽, 삼키니 코알라과 같은 이목구비의 전보벌레가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사보 군, 설마 조사는 안하고 실컷 놀고 있던 것 아니지?”

, 아니야!”


맹세코 아니었다. 조사도 약간은 하고 있었다. 일부러 의심받지 않기 위해 축제를 즐기는 꼴을 보인답시고 유카타까지 입지 않았던가! 그냥 도중에 배가 고팠을 뿐이다. 헌데 제 표정은 뻔뻔하지 못했는지, 전보벌레가 잔뜩 험악한 표정으로 사, , ? 제 이름 한 자 뚝뚝 힘주어 부른다. 저 반응이면 이미 들킨 것과 다름없다. 그는 재빨리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갑자기 전화는 왜 한 거야?”

, 그래.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어. 이 섬 말이야, 축제는 일 년에 한 번 열리지만 제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게 아니래.”

그래?”


. 다만 일 년에 한 번 축제가 열리는 지금이 가장 유명하고 성대할 뿐이라 하더라고. 제는 매 달마다 해신을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섬 끝에서 열린다는 거야. 제가 끝나면 사람들은 수익의 일부와 음식을 담은 보물상자들을 작은 배에 실어서 떠나보낸대. 소용돌이가 자주 친다는 그 해역으로 말이야. 사보는 사과사탕과 딸기사탕이 찐득하게 붙으려는 모양을 발견했다. 싱거운 이야기였다. 그는 충분히 전말을 추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에게 바친답시고 모아놓은 보물 상자가 한 두 상자 더 늘어있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확률이 커.”

혹은 중간에 바꿔치기 했을 확률도 있지.”

그렇다면 범인은 축제 위원회보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일거야.”


이 바다에 신 같은 건 없어. 이 섬 사람들이 데비 존스를 신으로 모시지 않는 한 말이야. 무심하게 중얼거리면, 건너편에서는 긍정의 화답이다. 원래 신이라 믿는 것들도 전부 인간일 뿐이잖아. 레드라인 위 성지에 거주하는 누군가를 겨냥한 말이었다. 사보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럼 넌 축제위원회 말고 제사장 쪽을 염탐해줘.”

알았어. . 그리,”


. 제 할 말 마친 사보는 전보벌레를 끊어버렸다. 애기전보벌레가 동그랗게 뜬 눈을 다시 감는다. 그는 벌레를 제 주머니에 넣은 후 다시 사탕을 각각 한 손으로 옮겨 쥐었다. 그 사이 사탕들이 붙어 떼어내는 데에 힘이 짧게 든다.


약간의 진척도 있겠다, 걸음 옮기는 소리가 다소 가볍다. 이제 무기가 이쪽으로 들어오는 경로를 찾으면 될 텐데. 핵이 제조 공장을 찾지 못한다면 분명 어디선가 들여오는 것일 터다. 해적을 포함한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편이니 밀수입 자체도 쉬운 편일 테고.


그 때였다. 좁은 골목을 벗어나 다시 축제가 성행하는 장소로 향하는 사보에게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뭐지? 혹시 제 이야기를 들었나? 수상한 행동을 보인다면 금방 해치울 수 있게끔 다리에 무장색을 살짝 실어 들어 올리려는 찰나.


화건.”


멀리서 난데없이 불덩어리가 쏘아져 나와 낯선 사내의 등에 직격한다. . 그는 나지막이 감탄하며 코앞에서 남자가 대자로 엎어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범인이라 추정되는 사내는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한 번 돌더니 멋들어지게 남자의 등을 밟고 땅 위에 착지한다. 점 만점에 . 양 손을 쓸 수 없어 박수를 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둘 중 누구도 바닥에 깔려 신음을 뱉는 패배자에게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사보는 모자를 고쳐 쓰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때마침 축제의 등불이 자신의 뒤로 펼쳐져 있어, 그의 이목구비를 관찰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남자였다. 해군은 아닌 것 같고, 현상금 사냥꾼이나 해적 쯤 되겠지. 제 얼굴 알아보면 곤란한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고를 친 터라, 혁명군의 어린 수뇌부라며 알아보는 이가 소수 있었다. 그는 남자의 시선을 가만히 맞부딪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주근깨 사내가 보는 방향이 미묘하게 제 얼굴과 다소 빗겨간 듯하다.


제 손에 들고 있던 딸기사탕을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나서야 사보는 이 낯선 사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아하.


먹을래?”

역시! 너 좋은 녀석이었구나!”


그냥 사탕이 먹고 싶은 거였군. 그는 흡족하게 고개를 주억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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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사보 전력 120분 : AU


 

엎어져 잠든 사내의 위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이, 에이스! 당장 준비 안하냐!”


외침에도 꿈쩍 않던 사내는 기어코 노인이 그의 등을 힘껏 밟은 후에야 으악!” 비명 질렀다. 노인의 힘이 어지간한지, 에이스는 좀체 일어나지 못하며 갑판 위에서 끙끙거렸다. 갑판 위를 오가던 선원들은 결국. 한탄하며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이다. 오직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던 한 해군만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에이스의 어깨에 코트를 둘러주었다. 백색의 바탕 위로 정의(正義) 두 글자가 도드라진다.


, 땡큐.”


제 부관에게 눈짓한 에이스는 잔뜩 울상 진 얼굴로 제 노인을 바라보았다. , 할부지! 말로 하면 될 것을 왜 때려요! 말로 해도 안 일어났잖아, 네 녀석! 늙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정해 보이는 그는 해군 영웅이자 에이스의 양조부인 몽키 D. 가프 중장이다. 센고쿠 원수를 제하면 아무리 대장이라 한들 쉬이 대할 수 없는 인물이건만, 에이스는 무어라 당당한지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러고도 할부지가 해군 영웅이에요?! 누가 보면 아주 모거니아인 줄로만 알겠네! 뭐라고?! 네 녀석 지금 나를 해적 취급하는 거냐!


두 장교의 다툼은 익숙하다 못해 질릴 지경이었다. 해군 본부에서, 그리고 이 함선을 타고 이스트 블루로 건너오는 내도록 겪은 일이라 쾅, 갑판 부서지는 소리가 울리고 열기가 자신들의 팔뚝을 간지럽혀도 해병들은 무시하고 저희 알아서 하선 준비를 했다. 어떻게든 싸움을 말리려 드는 에이스의 부관, 글러브와 달리 가프의 부관인 보가드는 익숙하게 두 상사를 대신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갑판의 중앙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으로도 모자라 온 나무 바닥이 그을리고 난간은 녹아 흐물흐물해질 무렵에야 보가드가 말리려다 멀찍이 떨어져 소리만 지르는 글러브를 대신해 두 사람에게 알렸다.


하선 준비가 끝났습니다. 내려가시지요.”

오오, 그래!”


한 마디에 싸움이 종결 났다. 에이스의 멱살을 잡고 막 주먹을 휘두르려던 가프가 그대로 얼굴을 돌린 채 씨익 웃었다. 에이스는 그 틈에 냉큼 잡힌 손에서 벗어나 반쯤 흘러내린 코트를 다시 여민다.


잠 다 깨버렸네.”


쩍하니 입을 벌려 하품하는 에이스의 뒤를 글러브가 한숨을 쉬며 달라붙었다. 이쯤 되면 깨는 게 정상입니다, 준장님. 물론 에이스는 듣는 척도 않았다. 이렬로 길을 만든 해병들을 가로질러 타박타박 걸음을 옮긴다. 경례를 표한 해군들을 전부 지나면 이후부터는 사열한 왕국의 병사들이 보인다. 에이스는 역시 다소 익숙한 병사들을 지났다. 뒤통수에서 수군거림이 들린다.


저 뒤에 있는 젊은 해군이 바로 골 D. 에이스라고?”

그래, 무려 해적왕의 아들이라잖아.”

게다가 자연계 능력자라며?”

얼마나 능력이 좋으면 저 나이에 벌써 준장이 되었겠어?”


에이스는 그들이 어떤 말을 지껄이던 간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쩌억, 한 번 더 입 가릴 생각도 없이 하품을 했다. 5년 전 입대한 이후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전부 사실이니까.


D. 에이스는 바로 바다를 재패한 해적왕, D. 로저의 친아들이며 해군이다. 제 아비가 지금도 당장 신세계에서 신신장구하며 제 멋대로 바다를 휘젓는 범죄자라는 점이 그렇게 원망스럽지는 않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아버지인데. 물론 일 년에 얼굴 한 번 볼까말까 하지만 말이다.


먼 옛날을 거슬러간다.


남자에게 자식이 생기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다. 바다를 재패한 해적왕에게도 그랬다. 다만 선상은 결코 갓난아이를 기르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었다. 해군의 함선이라도 그럴진대 해적선은 오죽할까. 로저는 제 영역의 섬에 아내와 아이를 숨겼다. 그러나 2년이 못되어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떴다. 감히 해적왕의 영역을 넘봤던 간 큰 해적단의 짓이었다. 물론 그들은 로저가 애지중지하는 두 보물이 그곳에 있다고는 전혀 상상치 못했지만, 어쨌든 이 사건은 로저 해적단에게도 건방진 해적단에게도 비극이었다. 그 해적단은 전멸하고 해적왕은 간신히 제 아들만을 구할 수 있었다.


로저는 불안에 제 아이를 오로 잭슨 호에 두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는 지나치게 어렸다. 더군다나 이 투박한 뱃사람들은 전투하는 법은 알아도 아이를 어루는 법은 몰랐다. 결국 그는 믿을만한 사람에게 제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할 때까지 맡기기로 했다.


그는 해군 영웅이자 영원한 자신의 적 몽키 D. 가프를 선택했다.


가프는 어처구니없었으나 결국에는 받아들였다. 마침 제 손주 녀석도 생겼을 무렵이었다. 그는 두 아이를 이스트 블루의 후샤 마을에 두 아이를 맡겼다.


에이스는 그곳에서 자랐다. 루피와 함께 다정한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다 보면, 일이 년에 한 번씩 아비가 거대한 배에 선물을 한가득 싣고 마을을 찾아왔다. 그는 세계를 떠돌며 자식이 생각날 때마다 산-그리고 때때로 강탈한 물건들을 내놓았다. 오로 잭슨 호가 정착할 때면 늘 마을은 활기로 넘쳤다. 마을 사람들은 해적들을 싫어했지만 미워하지는 않았던 탓이다. 함께 자란 의동생, 루피는 로저 해적단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모험 이야기가 어찌나 즐거웠는지 해적이 되겠다며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로저의 앞에서 당신의 뒤를 이어 해적왕이 되겠다며 선전포고하기도 했다. 되새겨보면 재미있는 추억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사랑을 받으며 제멋대로 자란 소년은 어느 날 해병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비를 나름대로 좋아했지만 단 한 번도 골 D. 로저가 해적왕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제 아비는 세상에서 혁명군 수장과 나란히 놓일 정도로 최흉의 범죄자다. D. 에이스라는 정체성 뒤에는 늘 해적왕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꼬리표처럼 달라붙었다. 자신이 해적왕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내가 그를 체포할 수밖에 없다. 고 에이스는 깨달았다.


의형제인 루피가 기어코 로저의 뒤를 이어 해적왕이 되겠다며 항해를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상당히 우습다. 해군 영웅의 손자는 해적왕을 동경하고 해적왕의 아들은 해군 영웅을 따라 입대하다니. 실제, 가프의 아래에서 훈련한 에이스가 처음으로 해군 대 해적으로써 아비와 마주쳤을 때 로저는 길길이 날뛰었다. 제 아들 곱게 키워달라고 기껏 부탁했더니 자기편으로 완전히 꾀어버렸다면서. (물론 가프는 네 놈이 우리 손주에게 이상한 물을 들였다며 날뛰었다.) 그러나 동시에 에이스를 보고 경쾌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래, 아들아. 네가 나를 잡아넣겠다고? 그게 네 꿈이라면 어디 한 번 도전해 봐라!


…….”


걸음이 멈춤과 동시에 회상도 맺는다. 에이스는 눈앞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부부의 뒤로 몇 명의 신하가 서 있다. 가프와 에이스가 가볍게 목례했다.


안녕하십니까. 마리조아까지 귀빈들을 호위할 골 D. 에이스입니다.”

몽키 D. 가프요.”


가장 앞에 선 이가 짐짓 턱을 치켜든 채 뻐겼다. 짐은 이 고아 왕국의 국왕 스태리라고 하오. 그 자세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이스는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첫만남부터 당장 문제를 일으켜선 곤란하기에 애써 참았다. 5년 동안의 해군 생활은 그에게 상당한 인내심을 키워주었다.


해군 본부의 장교인 두 사람이 이스트 블루까지 오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올해 열리는 세계회의 때문이었다. 그들은 고아 왕국의 왕족들을 마리조아까지 무사히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고아 왕국에서 자랐다던 에이스가 고아 왕국의 왕족들을, 가프가 이스트 블루의 다른 가맹국의 왕족을 맡았지만 말이다.


뭐어, 문제없이 호위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다만 가는 길에 시바르 왕국의 왕족들과 동행할 예정이니 그것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물론 배를 다를 테니 걱정 말고요.”


간단한 설명을 마치자 왕족들이 먼저 왕국의 기가 새겨진 배에 오른다. 이미 물자는 전부 실어두었다고 했다. 준비가 빨라서 좋군. 이대로라면 바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함선으로 돌아간 가프와 달리 고아 왕국 담당인 에이스는 만약을 대비해 왕족과 함께 동행 하는 모든 선원들을 살펴보았다. 시종들과 요리사, 일부 사병들. ?


저 놈은 누구십니까?”


명단을 점검하던 중 에이스가 한 사내를 향해 턱짓했다. ? 명단을 건네준 기사가 눈을 꿈벅이며 해군 준장이 가리킨 방향을 찾았다. 탐탁찮은 기색을 한껏 흩뿌리고 있는 금발의 사내가 보였다. 상당히 화려한 정장 차림에 등 뒤에 맨 쇠파이프가 썩 이질적이다. 아아. 사보님 말씀이시군요. 사내가 고개를 주억인다. 사보? 그 이름은 명단에 없는데? 에이스가 명단을 뒤적였다. 역시 사보라는 이름은 보이질 않는다.


“이런, 죄송합니다. 사보님의 출발은 어제 급하게 출발이 정해져서 미처 정정하지 못했습니다. 스태리 국왕님의 형제 분 되시니 신변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아.”


에이스는 수긍했다. 왕의 형제라는데 별 다를 일이 있겠는가, 싶었던 탓이다. 최종적으로 사보라는 이름의 남자까지 탑선하고 계단을 올리자 에이스의 함선도 출발을 곧장 준비했다.


바닷바람에 코트가 펄럭인다.


에이스는 제 몸뚱이를 덮고 있던 코트가 날아가자 슬쩍 눈을 떴다. 새벽이었다. 갑판에 설치된 선베드에서(그가 갑판 바닥에 너무 드러누우면 옷이 더러워지거니와 왕족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이유로 글러브가 설치해주었다.) 낮에 깜박 잠든다는 것이, 그만 새벽까지 잤나 보다. 아마도 제 부관이 깨우려다 포기하고 코트만 덮어주었겠지. 충분히 짐작한다. 그는 으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화의 바다 혹은 최약체의 바다라는 명성의 이스트 블루답게 가는 길은 몹시도 순조로웠다. 시바르 왕족들을 태워 캄벨트로 향하는 과정은 기실 에이스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순조롭다 못해 지루할 지경이었다. 해왕류나 해적선의 등장을 기대할 정도로. 덕분에 에이스는 낮잠만 늘어난 상태였다.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코트는 금방이라도 너머로 날아갈 것 같았다. 잃어버리면 글러브에게 분명 한 소리 들을 텐데. 다른 것도 아니고 장교 코트를 날아가게 내버려 두면,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줍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고. 에이스는 귀찮음을 무릅쓰고 발걸음을 빨리 했다. 다섯, . 이대로 손을 뻗으면.


으악.”


그 때였다. 공교롭게도 새벽바람이 강타했다. 에이스의 손끝을 아슬아슬하게 스친 코트가 휘날리며 날아간다. , 진짜……. 어느새 고아왕국의 배 위를 뒹구는 백색 코트를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이럴 땐 루피의 고무고무 열매가 부럽다니까. 제발 중간에서 멈추길 빌며 에이스는 고아왕국의 배로 뛰어 넘어갈 준비를 했다. 난간에 막 발을 올리는데,


어이쿠.”


휘말리던 코트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 에이스는 한 발만 여전히 간단에 올린 채 멈칫했다. 한 인영이 있었다. 그림자가 자신의 코트를 쥐고 다가온다. 새벽 탓에 여전히 얼굴은 보이지 않아 에이스는 작은 불덩이를 허공에 만들어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흘러내리는 금발이었다. 이어서 크고 동그란 눈이, 다음으로 왼쪽 눈가의 화상이 보인다. , 그러니까 누구더라.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미간을 좁히는 에이스의 위로 어느새 난간까지 다가온 사내가 코트를 흔들어보였다.


이거 네 거지?”

어어.”


, 그래. 왕의 가족이랬지. 고아 왕국의 귀족이라던. 에이스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름이, 남자가 백색 코트를 아무렇게나 뭉쳐서 휙 던진다. 에이스는 쉽게 받아냈다.


고마워.”

뭘 이정도로.”


시옷으로 시작했… 아.


사보.”


구겨진 코트를 아무렇게나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눈을 두어 끔뻑거리던 사보는 이내 씩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

그래,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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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이사보 전력 120분 참가글. 주제 : "우리 언제 만났었나?"




있잖아, 에이스. 바람결 사이로 나직한 물음이 터졌다. 에이스는 여전히 제 손을 열심히 움직여 수전으로 상대의 긴 머리를 털어주면서 고개만 힐끔 위로 들었다. 방 한 켠에 놓인 거대한 거울 너머로 상대와 눈이 마주친다.


우리, 역시 어디서 만나지 않았었나?”


그의 눈동자는 까만색이었다, 의동생과 똑같은. 물음에는 에이스조차 손을 멈추고 말았다. 그러자 이리저리 나부끼던 남자의 젖은 머리카락도 내려앉는다. 머리카락은 금빛이다. 에이스와도, 루피와도 닮지 않은 색이다.


짧은 침묵이었다. 거리에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두 사람의 뿌리까지 파고들었고 벽면의 커다란 창문 너머에서 내려온 햇살이 길게 에이스의 등까지 뻗어 아버지 같은 선장의 문신을 반짝거리게끔 만들었다. 제 등에 닿은 온기를 자각하는 수 초 동안 에이스의 머릿속으로 온갖 종류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그치곤 꽤 답지 않은 고민거리였으나, 결국 남자가 선택한 답은 아래다.


뜬금없이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저가 침대 아래 바닥에, 에이스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있던 터라 그를 보기 위에서는 고개를 들어야만 했다. 아무리 제 시력 좋다 해도 거울 너머로 보이는 낯은 상당히 작았다. 하며 그는 차라리 고개를 위로 꺾기로 했다. 길쭉하게 늘어난 목울대 위로 목젖이 도드라지고 물기 뚝뚝 떨어지는 곱슬머리는 본래 길이를 넘어 등까지 닿는다. 완전히 고개를 꺾으면 어제 종일 보았어도 지루하지 않는 얼굴이다. 눈동자 색을 제하면 하나도 저와 비슷하지 않았다. 아니, 머리길이도 얼추 비슷한가? . 하지만 머리 길이는 자라면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 데구르르 굴러가는 동공은 과거를 상기한다. 멀지 않다.


임무를 마치고 혁명군 본부인 바르티고로 귀환하던 중, 불가피하게 식재료가 떨어져 도중 보이는 섬에 잠깐 정착했다. 흰수염 해적단의 기가 커다랗게 펄럭거리는 곳이었다. 위대한 항로는 물론이고 신세계에 넘어가면 사황의 보호를 받는 섬은 흔했다. 흰수염의 본선이 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가 소란을 피울 것도 아니고. 사보는 가까이에 배를 대 물자를 보충했지만, 떠나기 전 곧 경계 해역에 커다란 태풍이 불 테니 잠잠해진 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주민의 충고를 얻었다. 예상대로 공기가 심상치 않아, 그는 흔쾌히 수긍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마침 해역을 지나던 흰수염의 본선 역시 태풍을 피하기 위해 이 섬에 잠깐 정착했다.


이미 대단하신 몇 분들은 혁명군 참모총장의 이름을 알고 있을 즈음이었다. 얼굴 팔렸다간 큰일이 날 게 뻔해 그는 급히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섰다. 늘 먹던 대로 식사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운이 나쁘게도 저가 있던 식당에 흰수염의 대장나리들이 몇 명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서 이 남자를 보았다.


머리에 얹은 주황색 모자와 등에는 흰수염. 팔뚝에는 자신의 이름인 듯 보이지만 이름이라기에 뭔가 이상한 문신. 동료에게 건네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기이하게도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희한한 사내였다. 주근깨 콕콕 박힌 얼굴 한 번도 본적이 없었는데 낯설지 않았다. , 그러고 보니 언젠가 현상수배지로 보았던가? 그 때문인가? 그의 움직임을 따라 눈이 따라갔다. 어느 샌가 저는 남자의 앞에 서 있었다. 이름도 알고 있었다. 포트거스 D. 에이스. 언제부터 알고 있던 이름인지는 모른다. 칠무해 제안을 걷어찬 대단한 루키라고 동료들이 떠들던 무렵이겠지. 간 큰 신인은 처음이라고 꽤 자주 소식을 지껄였으니 알게 모르게 뇌리에 박혔을지도. 어떻게든 적절한 개연성을 찾아내려는 이성과 별개로 몸이 움직였다. 겁 없게도 그는 흰수염의 섬, 모비딕 본선이 연안이 닻을 내리고 있으며 흰수염의 대장이 4명이나 있는 그 공간에서 무작정 그리운 냄새 풍기는 사내의 팔을 잡았다. 뭐야? 날 선 시선 몇 쌍이 동시에 제게 내리꽂혔더란다. 그러나 사보는 아랑곳 않고 물었다.


저기, 우리 어디서 만나지 않았었나?


그 때 에이스의 표정이 지금과 같았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릴 적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로 기억력이 나날이 나빠져만 가는 듯하다. 지금처럼 울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그건 왜?”


현실로 돌아온다. 사보는 눈을 두 번 깜박인다. 앗차, 생각에 빠져있느라 대답을 안 해줬었구. 하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말이지.


그냥 느낌이.”

느낌이?”

옛날에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옛날 어디?”

그건 나도 모르지.”


사보를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알고 있으면 물어 볼 필요도 없었겠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낯선 것에서부터 그리운 냄새를 맡을 때가. 길 잃은 적도 없는데 제자리를 찾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전투 연습 중 돌연 잡게 된 쇠파이프가 그랬고, 식량 없이 바다에 조난당했을 때 해왕류를 잡으며 연명했던 언젠가가 그랬다. 에이스를 만난 순간도 그랬다. 이제껏 해가 서쪽에서 기상해왔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어서,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햇살 맞은 순간 , 사실은 그랬지.’ 깨달았다. 정체 모를 안도가 페부를 가득 수놓았다.


사실은 우리가 형제였을 수도 있잖아.”

하아? 내가 어릴 적 기억이 없다는 핑계로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늘어놓는 거 아냐?”


에이스는 어설프게 웃었다. 입매가 빙그레 호선을 그렸다가 어정쩡하게 멎는다. 사보는 인상을 찡그리며 에이스의 낯짝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백 번 다시 봐도 눈동자 색을 제하면 하나도 닮지 않았다. 형제라니. 헛소리도 가지가지다. 내가 그런 농담에 속을 것 같아?


무엇보다 가족이면 연애는 못하잖아?”

, 그렇지.”


결국 거짓말이 맞다는 거네! 에이스가 들고 있던 수건을 냉큼 빼앗아 후려친다. 그러나 진심 반 섞은 보람도 없이 자연계 능력자답게 불꽃이 물리적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하하. 그가 짧게 웃음을 터트린다. 뭐 이런 장난 가지고, 하하. . 팔랑이는 수건 사이로 잔웃음소리가 섞인다. . 결국 에이스가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보의 허리를 잡아 저가 몸 뉘인 침대 옆으로 슬쩍 던졌다. ! 갑작스런 반격에 그가 탄성을 뱉었다. 에이스는 능숙하게 몸을 굴려 사내의 양 팔을 붙잡고 위에 자리 잡는다.


그치? 보통 형제는 이런 짓은 안하잖아.”

무슨 소리야. 형제도 아니라며?”


아래 깔린 사내가 고개를 슬 기울인다. 그보다 무장색 쓰기 전에 얼른 비키지? 무겁다? 껄렁껄렁하니 이어지는 말은 과연 혁명군 2인자답게 협박조다. 하하. 에이스는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리며 사내의 어깨 위로 얼굴을 묻었다. 작위적이었다.


그렇지. 아니지.”


읊조리는 목소리는 쓸쓸했다. 이 녀석, 갑자기 왜 이래? 사보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사내의 등 위에 손바닥을 얹는다. 그는 자신과 만날 때면 종종 급작스레 기분이 전환되는 경향이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제대로 닿아, 그는 제대로 덩치만 큰 어린애를 위로해 줄 수 있었다.


하긴, 이런 놈을 제가 잊었을 리 없지.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남자의 존재는 상당히 강렬했다. 감정도. 에이스 정도라면 옛날 어디선가 만났더라도 보는 순간 기억했겠지. 사보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리 매듭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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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간만에 닿은 섬은 돛을 내린 만에서부터 활기가 밀려왔다. 정박할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먼저 내렸던 선원이 들뜬 얼굴로 하선하기 시작하는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이봐! 오늘 밤에 이 섬에서 축제가 열린대!”


? , 운 좋은데! 축제라 함은 종류가 무엇이든지 즐겁기 마련이다. 특히 자극을 쫓아 살아가는 해적들에겐 더 했다. 어떤 축제인지도 모르면서 들뜬 얼굴을 한 해적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내리는 사람을 동시에 응시했다.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채 주황색 짧은 셔츠를 입고 패션센스 따윈 전혀 없는 모자를 쓰며 계단을 털레털레 내려오고 있던 사내가, “?” 의아한 얼굴로 선원들을 응시했다.


에이스 선장! 오늘 여기서 축제가 열린다는데!!”

축제래요! 술이랑 음식이 잔뜩 있대요!”


오오, 축제? 희소식이었다. 스페이드 해적단 선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고로 축제라면 술과 음식이지! 음악도 빼놓지 못한다! 물자 보충을 위해 항해 중 우연히 보인 섬에 정착한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는 씩 웃으며 유일하게 어두운 낯의 항해사를 향해 말했다.


좋아! 피터, 이 섬에 기록지침이 뺏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봐! 만약 하루 이상이라면 오늘 밤은 축제다!”


우와아아! 사내자식들의 톤 낮은 함성이 대단했다. 에이스는 씩 웃으며 계단의 중간 즈음에서 단숨에 뛰어내려 땅 위에 착지한다. , 2주 만에 만나는 대지다. , 그리고 지난 섬에서 가져왔던 보물들도 처분하고. 늘 그랬듯이 다른 건 몰라도 억지로 물건을 뺏거나 폭력을 휘두르면 안 돼. 그의 엄한 말에는 유치원생마냥 예에, 동시에 답한다. 선장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뿌듯했다. 좋아, 좋아. 그럼 가자!


에이스는 가장 먼저 항해사인 피터를 비롯한 제 배의 주요 간부들과 환금소를 찾았다. 얼마 전 저희 배를 공격한 해적선과 한바탕 하고 얻어낸 전리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전감각 예민한 한 간부 덕분에 꽤 값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에이스는 배의 총무를 겸하는 그에게서 약간의 용돈을 받아 제 길을 갔다. 가장 먼저 음식이 고팠다.


거리는 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저녁부터인가 보다. 음식 외에는 관심이 없는 에이스는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배부터 한가득 채우며 부족했던 잠도 보충했다. 오랜만에 음식에 제값을 치룬 에이스는 저를 불그스름한 얼굴로 힐끔거리는 웨이트리스에게서 축제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바다에 제를 올리며 여는 축제라고 했다. 매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시기가 되면 섬의 주변 해역에서 대형 소용돌이가 나타나는데, 섬의 주민들은 이것이 바다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노여움을 풀기 위해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낮에는 해안가에서 제를 올리고, 이틀 안 섬 전역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축제를 연다. 그리고 그 이틀간의 축제로 번 돈들은 상자에 전부 넣어 해신(海神)에게 바친다.


히익, 번 돈들을 전부 바다에 수장한다는 소리야? 아깝잖아!”

하지만 그래야 신께서 화를 푸실 테니까요.”


애초에 바다의 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이야기다. 에이스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바다라는 것이 신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항해사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악귀의 자식인 저는 바다에 나오자마자 죽었을 터다.


그래도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오게 되었어요. 야타이 중심의 축제가 꽤 유명하거든요.”

야타이?”

노점상이라고 해야 할까, 간이마차상점 같은 거예요.”


저녁부터 저희 섬의 가장 큰 길의 양 옆으로 온갖 종류의 즉석상점들이 들어서거든요. 제를 올렸던 해안가 무대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을 연주하면서 경품을 건 행사도 주최해요.


그건 상당히 괜찮았다. 게다가 들어보니 해신에게 바치는 돈은 야타이로 번 수익만으로 한정되어 있다던가. 뭔가 복잡했지만 외지인인데다가 축제만 하루 즐기다 갈 저희 해적단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고마워. 씩 웃은 에이스가 식당을 나섰다. 저녁까진 아직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있으니 잠깐 배에 돌아갔다가 올 요랑이었다.


옷깃을 팔랑거리며 해적선에 남아있던 동료들에게도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대부분은 "해신? 푸하하! 그게 뭐에요!" 라고 비웃었다. 그렇다면 이참에 축제가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가, 그들이 바다에 버릴 상자들을 빼돌리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애석하게도 이 섬에서 기록지침이 덧씌워지는 시간이 18시간이기 때문에 훌륭한 생각은 실제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하늘과 바다의 색이 달라지는 때가 왔다. 수평선 위로 화마가 번짐과 동시에 섬에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소리가 파도 모양으로 굽이친다. 축제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는 전부 배에 돌아오자고. 혹시 섬에서 다른 녀석들을 보면 모두 전달해줘! ! 해적들의 우렁찬 소리도 선율에 묻힌다.


여름섬의 여름이라 그런지, 어둠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바람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다행스럽게도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에이스는 선원들 모두가 시원한 맥주부터 찾으러 가는 사이 홀로 따끈따끈한 닭꼬치를 열 개 해치웠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있었다.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했고, 귓가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연신 이어졌다. 이틀 동안 번 돈을 바다에 버려야 할 마을 사람들 역시 음식을 팔면서도 활기찬 낯이었다. 꽤 신기했다. 시럽이 잔뜩 부려진 빙수를 구입한 에이스는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정확하게는 무슨 음식이 있는지 알아두기 위해 느긋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섬의 사람들은 각 건물의 꼭대기끼리 줄로 연결해 줄 위에 오색 종이등들을 매달아 땅 위를 낮처럼 환하게 만들었다. 예술에 조악한 그조차 예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야타이라고 하는 상점에서는 음식만이 아닌 금붕어 잡기나 사격으로 인형 맞추기 따위의 놀이도 했고, 가면이나 의류부터 시작해 온갖 잡동사니와 각종 섬으로의 영구지침을 파는 곳도 더러 있었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약 절반은 천으로 몸을 두르고 허리에 띠를 맨 옷을 입었는데, 유카타라고 부르는 이 옷은 신세계의 와노쿠니에서 시작된 의상으로 여름에 입기 적당해 섬의 사람들이 자주 입는다고 하였다. 굳이 더위를 타지 않는 에이스는 욕심이 없었지만, 지나가면서 마주친 제 선원 몇몇은 어느새 유카타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더라. 그걸 보면 저도 한 벌 살까? 생각했지만양념을 발라 구운 문어꼬치를 발견한 순간 역시 옷에 돈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결심했다.


어느 정도 적당히 구경을 마쳤다고 생각한 그는 곧장 문어꼬치부터 거덜 내기 시작했다. 저렴한 축에 심지어 맛있었다! 이 가게를 오늘 아주 아작 내버려야, 다짐하다가도 에이스는 아! 아직 먹을 음식은 많지! 상기하며 바로 옆 부스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계란빵 다섯 개를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도 꾸준히 양 손에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기적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짧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에이스가 막 구입한 볶음우동을 한 입에 넣을 적이었다.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로 문득 어떤 말소리가 들렸다. 화권의 에이스라고? 자신의 이름이었다. 지금 현상금이 2억을 넘어섰댔지. 저렇게 음식에 정신 팔린 놈이 정말 2억짜리야? 해군이 이상하게 현상금을 매긴 게 아니라? 아무렴 어때. 멍청한 놈이면 우리야 좋지. 해적주제에 한가하게 축제를 즐기러 오다니……. 애석하게도 목소리가 잘 들렸다. 우물우물 씹던 것을 삼켰다. 뻔했다. 마찬가지로 놀러온 현상금 사냥꾼이라도 되나보다.


그는 가볍게 주위를 살폈다. 딱히 싸움에 장소를 가리진 않지만, 가게가 많은 이곳에서 싸우기에는 곤란했다. 아직 먹어야 할 음식이 많았다. 다음에는 망고 가게 옆에 있는 사과사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역시 거리에서 벗어나는 편이 좋겠지. 뒤로 기울어진 모자를 꾹 누른 사내가 골목으로 걸음을 틀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현상금 사냥꾼들은 착실히 자신을 따라온다. 저희 나름대로는 기척을 숨긴다고 하지만 전부 느껴진다. 4. 잡졸이다. 금방 끝나겠네.


어느 정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왔다 싶은 에이스가 휙 몸을 틀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유쾌하다.


나는 오늘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서 기분이 좋거든? 빨리 끝내줄 테니 얼른 나와.”


가볍게 주먹 쥔 손을 손목의 스냅으로 한 바퀴 돌리니 불꽃이 휘익 터진다. 구석진 골목이 짧게 환해진다. 그러나 슬프게도 저를 잡아가려 한 놈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과 다른 전개에 겁을 먹었나? 자연계라서? 어느 쪽이든 귀찮다. 현상금 사냥꾼인 이상 제 동료들에게도 손을 뻗을 수 있으니 지금 바로 해치우는 편이 최상인데.


안 오면, 내가 간다?”


하여 성가시지만 에이스는 본인이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도착한다. 건물의 왼쪽 그림자에 한 명. 주먹에 불꽃을 일으켜 급소를 때리자 으아악!” 비명이 울린다. ? 아니, 뒤다. 에이스는 제자리에서 거꾸로 뛰어올라 발에도 불꽃을 일으켰다. 그대로 검을 들고 달려오는 사내의 머리를 명중한다. ! 울리는 소리와 발에 맞는 타격감이 훌륭했다. , 좋았어. 흡족했다. 거꾸로 몸을 도는 중에 떨어질 뻔한 모자를 잡아 다시 머리 위에 쓰는 도중이었다. 타앙! 총 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문신 새겨진 제 팔을 관통해 지나갔다.


? 서두르지 말라고.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자연계에게는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니까. 저가 화권의 에이스란 걸 알고 있음에도 왜 그건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거지. 크게 도약한 에이스가 건물 2층의 난간을 밟고, 다시 이중으로 뛰어올라 건너편 건물 옥상 난간에 도착했다. 총으로 저를 겨눈 채 달달 떨고 있는 사내가 보인다. 빙고. 그는 가볍게 제 자리에서 화권을 쏘았다. 굳이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고스란히 불길을 맞은 남자를 뒤로하고 옥상 난간에 쭈그려 앉아 등을 보인 채 도망가는 마지막 적을 보았다. 


. 저기다.”


그는 스페이드 해적단의 선장으로부터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무기까지 버리며 사람들이 많은 축제의 현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인파와 섞이면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무릎을 한 번 굽혔다가, 난간에서 크게 뛰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앗차, 모자. 급히 왼손으로 모자를 잡으며 오른손을 뻗어 도망치는 사내의 등을 겨눈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조준한 채 엄지와 검지로,


화건.”


빵야. 불이 총알처럼 사내에게로 쏘아져나갔다. 등 정중앙을 맞은 사내가 고꾸라진다. 에이스는 쓰러진 사내의 등을 밟고 섰다. 후큭. 짧게 몸을 들썩인 현상금 사냥꾼은 완전히 정신을 놓은 듯 했다.


이런 연약한 놈들이 그랜드 라인에서 현상금 사냥꾼 노릇을 한다고?”


생각보다 훨씬 약했잖아. 몸풀기 축에도 못 끼게. 에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자의 등에서 내려왔다. , 이게 그럼 다시 사과사탕을 먹으러 가보실까! 직후 상쾌한 낯으로 노점상들이 있는 방향을 항해 고개를 돌린 순간이다.


.”


붉고 노란 등 아래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남색의 유카타를 입은 채 양손에 사탕을 든 남자였다. , 이런. 들켰나? 민간인 같은데. 그는 곤란한 듯 눈을 찡그리며 낯선 이의 얼굴을 보았고, 아주 잠깐 멈칫했다.


어딘가 낯익은 생김새였다. 아주 오랜 지층에서부터 불쑥 거대한 송곳이 솟아오른다. 제 오랜 형제가 제대로 나이를 먹고 성장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루피처럼 크고 동그란 눈이 특히 닮았다. 물론 사보는 머리도 짧았고, 다소 꼬질꼬질 할지언정 한쪽 얼굴에 커다란 흉터도 없었지만. 아그작. 사내가 딸기사탕을 큼직하게 베어 물었다. 단내가 풍긴다. 제가 이 자를 쓰러트린 걸 보았으니, 해군에 신고할까? 눈 딱 감고 기절만 시켜? 하지만 아주 잠깐 동갑내기 형제를 떠올린 탓인지 공격하기가 꺼려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금발의 목격자를 한참 응시하던 짧은 침묵, 찰나의 끄트머리에서. 남자가 다른 손으로 쥐고 있던 사과 사탕을 제게 건넨다.


먹을래?”

역시! 너 좋은 녀석이었구나!”


……바로 여기까지가 칠무해 제의를 걷어찬 해적이 이름 모르는 남자와 낯선 섬에서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된 경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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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 위로 가느다란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A, S위에는 X, C, E. 뻘뻘 땀 흘리는 종자가 근육 불거진 팔에 찰싹 매달린 채 도안을 완성했다. 그는 땀을 슥 닦고 사내 티 풍기는 청년에게 물었다.


원하는 대로 다 그렸습니다. 이대로 새기면되는 건가요?”


에이스는 고개를 거울 너머로 비치는 모양을 보았다. 제 몸에 영원히 새겨질 상처일 텐데도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좋네! X가 해적기처럼 보여야 하지만이것도 나쁘지 않아.”

, 바꿔드릴까요?”

아냐. 그냥 해. 얼른 하고 끝내자.”


씩 웃으며 하는 말에도 문신사는 어쩐지 겁을 먹은 듯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이 남자가 근래 위대한 항로를 들썩이는 스페이드 해적단의 선장임을 안 이상 어떤 민간인이라도 두려워 할 밖에. , 그럼 소독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냉큼 서둘러 소독을 한 후 기계를 손에 쥐었다. 저를 해치려는 기색은 아직까지 보이지만, 상대는 해적이다. 어찌될 줄 모른다. 그는 어떻게든 빠르고 완벽하게 일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가실 줄을 몰라, 손이 가늘게 떨린다.


첫 잉크가 A의 꼭짓점에 박힌다. 에이스는 자리에 앉은 채 미동 않았다. 조금 따끔한 정도였다. 견딜 만 했다. 그는 얼마간 맞은편의 거울만 응시했다. 꽤 집중하는지, 옆의 문신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감각만으로는 우둔한 통증만 있을 뿐, 정작 지금 그가 A를 그리고 있는지 Z를 그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에이스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문신을 새기기로 한 계기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해적이니 해적다운 겉모양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린 혈기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문신이란 게 떠올랐다. 아프다는 동료들의 엄살이 있었지만 해적이 그 정도도 못 견뎌서야 쓰나. 어떤 것을 새기지?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평생 한 자리에 박혀 있어도 질리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만하기도 했다. 그는 흔쾌히 결정했다. 곱씹을수록 그럴듯하다 여겼다. 팔뚝에 이름을 새기면 쉽게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기도 했다. 이미 현상수배자가 되었고 값은 오르고 있다. 이따금 누가 어디서 찍는지, 사진도 최근 사진으로 바뀌곤 했다. 그렇다면 팔뚝에 제 이름자 새겨도 좋으리라. 사진을 보는 모두가 자신이 에이스임을 알 수 있도록.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이 바다를 재패할 것임을, 다른 어떤 수식어도 아닌 그저 에이스(ACE) 석 자로 박아두라고.


한데 결심하고 나니 돌연 제 벗, 아니, 형제가 떠올랐다. 먼저 바다로 떠난 이였다. 어쩌면 벗도 형제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에이스는 어렴풋이 상기한다. 그를 향한 감정은 루피를 향한 것과 약간 달랐던 탓이다. 제 해적단의 동료를 대하는 것과도 달랐다. 첫 친구라서 그럴까. 우정, 처음, 배 다른 형제. 여러 가지 거창한 단어들을 나열해 보아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표현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만나지 못한 세월이 오래되어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억은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


한 가지 말해볼까. 기실 그는 자신이 제 첫 사람을 잊는 것이 겁이 났다.


가장 먼저 바다로 나가 자유로워지자고 말한 것도 그 아이였건만 형제 없는 바다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무수한 경험들이 포개어져 아이를 묻어버릴까 두려웠다. 내 기억 속의 영원할 열 살짜리 동갑내기. 남자는 제 존재를 온전히 신뢰치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먼저 떠난 형제를 팔에 새기기로 한 것이다. 피부에 박음질한다. 멀리 멀리, 혹은 그만치 깊숙한 아래로 떠났을 촌스러운 졸리 로저를. 어린 시절 종종 심장이 울컥이곤 했던 아이의 이 빠진 못난 웃음을. 때 묻은 태양빛 머리카락을. 아직까지 이름 모르는 감정을.


사보를.


에이스는 눈을 뜬다. 문신사는 어느덧 형제의 이니셜 위로 X자를 덧그리는 중이. 아프지 않았다. 충분히 견딜 만 했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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