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밤이 되어야 피는 꽃이 있다. 요시와라에 사는 꽃들이 그랬다. 계집 혹은 계집 빼닮은 사내 놈들이 거주하는 그 골목은 낮이면 어둑했고 밤이면 진정 붉은 등을 걸었다. 운명처럼 벌들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변두리 골목에서는 요타카[각주:1]가 주정꾼들을 향해 다리를 벌렸고 조금 더 밝은 빛 붉은 빛을 이끌려 홍등 따라가면 여느 성 못잖게 화려한 고급 유곽이 있다. 평민들은 감히 보기조차 어렵고 귀족들마저 쉬이 하룻밤 보내기 어려운 타유나 코우시 따위가 있는 곳이었다.


 오늘도 그 유곽 몇 층 위 창가에서 흰 다리가 달랑거린다. 타유들은 그 고운 얼굴 한 번 내비치는 것조차 꺼려하거늘 이상한 일이었다. 익숙한 요시와라의 주민들은 무시하거나 혹은 저 아래 바닥에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토오루 씨, 또 그러시는 거예요? 그럼 다리의 주인은 화장하여 붉은 눈가를 살풋 접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토오루(徹). 유녀에게 붙이기엔 어색한 이름이나 계집이라기엔 지나치게 큰 키, 그리고 판판한 가슴을 보면 납득했다. 요시와라에는 남창도 극소수지만 더러 있었다. 검은 바탕에 꽃이 화려하게 수놓인 여성용 유카타를 헐렁하게 차려입고 담뱃대를 흔들거리는 꼴이 퍽 요사스러웠다. 분명 저 바닥에서는 살랑거리는 다리 안쪽까지 은근히 비치리라.


 사내는 제게 인사하는 카무로[각주:2]가 막 한 남자에게 붙잡히는 것을 보았다. 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는 모양이, 아마 저와 자려면 얼마가 필요하느냐 묻는 것 같아보였다. 저 아이는 얼마냐고 말했을까? 잘은 몰라도, 그가 우울한 기생으로 뒤 도는 꼴을 보아하니 중년 치의 재산을 한참 웃도는 금액이었을 것이다.


 가느다랗게 웃으며 창틀에 여유롭게 걸터앉아 담배를 태웠다. 힐끔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지만 저를 찾으러 오는 손님은 보이질 않는다. 아, 가게를 들어오는 미부의 다이묘와 눈이 마주쳤다. 토오루는 경박스럽게 손을 크게 흔들며 아는 척을 했다. 맛층! 저 아래에서 다이묘의 헛웃음이 눈에 훤하다. 그는 소매에 넣고 있던 손 하나를 빼어내어 작게 흔들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어느 괜찮은 계집 하나를 물고 하룻밤을 즐기겠지. 토오루는 그리 생각하며 멋대로 콧노래를 불렀다.


 자정이 가까워지면 요시와라의 해가 기울기 시작한다. 손님이라 칭할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내에 있어 호객꾼들도 슬슬 자리를 뜨고 거리는 고요해진다. 본디 요시와라의 모든 가게는 자정에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이 유곽의 유일한 고급 남창의 방은 아직 고요하다. 음, 슬슬 이와쨩이 잔소리를 하러 들어올 시간인데. 제 집 앞마당의 모습을 보며 시간을 가늠한다. 오늘은 오질 않는가? 하며 다시 한 번 살피는데 때마침 익숙한 하카마 자락이 시야에 잡혔다. 그리고 그 머리통도. 오이카와는 입술 가늘게 벌린 채 담배 연기를 흘렸다. 눈이 마주친다.


 ‘위험하다.’


 라고 사내는 입을 벙긋거렸다. 시력 뛰어난 오이카와는 능숙하게 그 말뜻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 역시 입을 뻐끔거렸다. 그럼 내려줘. 회색이 음절마다 섞였다. 그는 저를 빤 응시하던 사내가 이내 유곽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오늘은 독수공방이 아니겠구나. 천진한 어린 아이마냥 다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등에서 낭랑한 계집아이의 말소리가 울린다. 토오루, 손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그래. 술상은…. 필요 없어. 오늘 손님껜 과분한 대접이잖아? 문소리, 발소리, 네 목소리.


 “위험하다고 말했었다.”

 “내려달라고 했잖아.”


 토오루는 저보다 큰 팔이 저를 감싸는 것을 보았다. 내 몸값이 얼만지 알면서, 이렇게 만져도 돼? 농담 삼아 지껄이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아무리 곱게 만들어졌다 한들 결국 장성한 사내를 안아 올린다.


 “항상 늦네, 와카사마(若さま)[각주:3]는.”

 “기다렸나?”

 “이 토오루 씨가? 설마.”


 그는 화사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1인용으로 깔린 침구 위로 꽃음절이 포개어진다. 사내는 입맞춤에 다시 한 번 잔웃음들을 터트렸다. 기다렸다는 말이랑은 있을 수 없었다. 물론 중간 쯤 되는 유녀들이나 아무렇지 않게 손님께 아양을 떨며 비위를 맞추나, 그 정도 되는 자면 달랐다. 타유를 하룻밤 가지는데 드는 비용은 수만, 수억을 호가했다. 심지어 그녀들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제멋대로 손님을 거절하기도 했다.


 “근래 나 말고 찾아온 사람이 있었나?”

 “토오루 씨야 원래 인기가 많지.”


 그는 농조 섞은 채 말했다. 기실 진실이라, 맞은 편 사내는 얼굴을 슬쩍 찡그렸다. 내가 아는 얼굴이 있었나? 글쎄…. 느긋하게 말을 흘리며 토오루는 다리를 올려 사내의 어깨에 발을 걸쳤다. 자연적으로 검은 천이 흘러올라갔다.


 “확인해 볼래?”


 자뭇 순진한 척 눈을 깜박였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대단한 사내라도 결국 제 다리 사이에서 짐승처럼 허덕일 것을 알았다. 예상대로 우시지마는 단단한 손으로 뼈 움푹 튀어나온 발목을 우악스레 잡아 벌렸다.



 자아낸 교성이 결국 애원 섞인 흐느낌으로 변모했다. 긴 밤이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사내가 알려준 것은 와카토시라는 이름이 다였지만 토오루는 그의 정체를 완벽하게 알았다. 천황마저 힘을 잃게 된 지금 일본을 발아래에 둔 남자. 우시지마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나, 고작 11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쇼군이 되었다.[각주:4] 꽤 선정(善政)을 펼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정도 되는 기녀라면 단순히 밤기술 뿐만이 아니라 기예, 문학, 정치 모든 방면에서 우수할 줄 알아야 한다. 토오루의 경우에는 이래뵈도 사내인 탓에 검까지 다뤘다. 그래서 더욱 우시지마의 이름을 빈번하게 들었다. 그 사내, 어린 나이부터 그토록 뛰어난 것도 모자라 무예까지 대단하더라고. 소꿉친구, 그러나 결국 유곽의 불침번에 불과한 이와이즈미와 함께 검을 배우면서 생각했다. 그러면 내 검이 더 나을까, 그의 검이 더 나을까? 이런 식으로 검을 받을 줄은 몰랐지만….


 “토오루.”


 실오라기 하나 없이 드러난 나신 위를 흰 천이 덮는다. 우시지마가 걸치곤 온 하카마였다. 토오루의 방에는 같은 하카마가 오십육 개나 있었다. 그와 정사를 치르기 시작한 날부터 우시지마는 매번 사정 후 그의 몸을 가려주기라도 하려는 양 제 하카마를 덮어주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닌, 소유욕의 일환일지도 모른다고 토오루는 종종 생각했다. 아니, 혹은 다른 놈들에게는 맨 몸 드러내지 말라는 무언의 협박일지도.


 “왜?”


 그는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 최근에는 성장에 따라 몸이 단단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역질은 피곤했다. 특히 저 사내는 퍽 집요한 구석이 있어 토오루가 지쳐서 울음을 터트릴 때까지 몰아붙이곤 했다. 그러면서 정작 끝에는 이렇게 다정한 척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나와 함께 가자.”


 고백하고.


 “하아?”

 “행복하게 해 주겠다.”

 “또 이러네.”


 그는 웃음을 흘렸다. 나 담배. 말하며 손을 내미는 것에 우시지마는 몸에 좋지 않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재촉하는 까딱거리는 손짓을 외면하곤 그는 여상스레 말을 이었다.


 “말은 않았지만, 너도 내가 누구인지 모를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알지.”

 “여기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러니 함께 가자.”


 으음. 토오루는 베개 위에 완전히 묻고 있던 얼굴을 조금 비틀었다. 눈덩이 위에 바른 붉은 가루가 엉망스로 흐트러져 뺨까지 내려왔지만, 그도 상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가늘게 한쪽 눈만 떴다. 남자의 허벅지와, 그가 깔고 앉은 제 옷을 보았다.


 몇 달 전에 제게 함께 가자기에 달라고 했던 비단이었다. 다이묘나 지어 입을 법한 귀한 천을 받아 저 옷을 지었더란다. 얼마 전에는 검을 달라고 했다. 우시지마는 제 직속 장인을 닦달해 누구보다 화려한 검을 주었다, 장식용에 불과해 대련으로는 전혀 쓸 수 없는 게 유감이었지만. 바로 직전에는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를 주었다. 그럼 이번에는….


 “성(城)을 주면 함께 갈게.”

 “성?”

 “이번에는 진짜야. 사실 내 고향은 아오바였거든.”


 희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라고 그는 지껄였다. 우시지마는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손길은 변치 않는다. 오이카와는 그가 보일 반응이 궁금하여 고개를 조금 더 사내를 향해 튼다. 창문 너머 어디선가 제 동지들의 신음과 샤미센 소리가 섞여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안색은 변함이 없다. 다만 그는 삼 초 뒤 그래,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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