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세계가 한낮이라 그림자가 가장 길었다. 그늘의 첫점에는 여느 때보다 화려하게 증축하고 쌓아올린 에도가 있었고 끄트머리에는 붉은 등과 화려한 화장으로 속내 죄 가린 일본 최대의 홍등가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요시와라라 불렀다. 해와 달이 바뀐 곳을 들어서면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오롯이 저가 가진 재산만으로도 여자를 품고 하루를 호사할 수 있는 곳. 가난한 시정잡배는 뒷골목에서 선 채로 급하게 싸구려 창녀를 안았고 부유한 자는 금칠 된 방 안에서 우수한 게이샤들의 기예를 즐기며 술잔을 기울였다.


 요시와라에서는 유녀들 역시 능력과 나이, 외모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뉘어졌는데, 오이카와 토오루라 함은 중간, 혹은 그 조금 위였다. 손님을 받기 위한 용도의 개인 응접실과 저가 머무는 개인침실이 따로 나뉜 정도. 어미 역시 기녀였으나 출중한 외모로 인해 어릴 적부터 유녀로 교육받고 남창이 되었다. 춤, 노래, 화술, 밤기술 무엇 할 것 없이 괜찮으나 남창이라는 사실만으로 요시와라에서는 다소 천대받은 축이었다. 한때 막부의 높은 개들이 제 가신이나 견습 무사를 코쇼(小性)로 삼아 비역질을 했다곤 했지만 오래 전 전국 시대의 일이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그들도 가슴 몽글하고 부드러운 여성을 선호했고, 물론 여전히 동성을 끌어안는 자도 있지만 사회적인 시선 탓에 함부로 성향을 드러내지 못했다. 하여 그는 당연히 28살이 되어서도 평생 요시와라에 남아 있겠거니, 생각했다.


 헌데 그 어마어마한 낙적료를 지불하고 저를 요시와라에서 빼내겠다, 라?


 아침이 되었고 이제야 잘 시간이 되었지만 오이카와는 좀처럼 잠이 들 수 없었다. 얼룩덜룩한 몸을 씻고 유카타를 걸쳤다. 남성용임에도 불구하고 천 자체는 유녀들과 다름없이 천박하고 화려했다. 가게 앞을 지키던 시중 하나가 안자냐고 질문하기에 가볍게 산책만 하고 들어겠노라 답하고 나왔다. 자신의 가게는 매출의 반까지는 아니지만 반의 반 정도는 차지하는 좋은 상품에게 꽤 너그러웠다.


 매일 축제와 행사가 열리던 큰길은 손님이 전부 빠져나가고 쓰레기로 황량하다. 까마득하게 높은 가게들이 나무문 닫은 채 암전해 있다. 걸음마다 다리 근처에 수놓아진 붉은 매화가 살랑거렸다. 햇살이 오이카와가 선 길을 짠하게 비춘다. 편편한 흙길이 유리밭처럼 반짝였다. 지금은 싸늘한 이 도로도 봄이 오면 벛꽃놀이로 만연할 것이다. 본디 나카노쵸의 벚꽃놀이는 유명했다. 봄에만 옮겨와 심었다가 꽃이 지기 시작하면 나무 째로 뿌리 뽑아 버린다는 점이 흠이지만.


 요시와라의 가장 큰 길을 주욱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득하게 요시와라의 유일한 입출구가 보였다. 감히 보면서도 넘지 못하는 대문. 오이카와는 어귀에 선다. 대문의 오른쪽에는 2층짜리 단촐한 건물 한 채가 있었다. 그 앞에 선 한 사내가 오이카와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차림새는 화려한데 이제 막 태양이 핀 아침에 요시와라를 나가려는 간 큰 유녀는 누구도 없었다. 그렇다고 뒤늦게 나가는 손님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사내는 쉬이 눈앞에 선 자의 정체를 추측해냈다.


 “오이카와.”


 퉁명스럽게 이름을 불러보자, 오이카와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 이와쨩. 애초에 외출의 목적은 이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에게로 다가왔다. 소매가 덜렁거렸다.


 “문 앞에 번 안 서고 있어도 돼?”

 “유곽도 아니고, 여기에서 집회소 앞에서 왜 번을 서냐.”

 “흐흥. 그럼 계속 오이카와 씰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내가? 설마. 이와이즈미는 마땅히 코웃음 쳤다. 기실 의도야 빤히 보이지만, 오이카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고만 말았다. 만약에 여기서 확답을 바라고 캐묻는다면 도리어 왜 자야할 시간에 제 나와 있냐고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뭉툭한 신발에 쓰레기가 걸려 밀어낸다.


 “오늘은 왜 또 안자고 나왔냐.”

 “음, 새벽에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어서.”

 “뭔데.”

 “요즘 자주 오던 손님 있지? 자기 집안이 쿄랑 무역을 한다고 자랑을 하던 새파란 애송이.”

 “그래.”

 “걔가, 저가 낙적료를 지불할 테니 함께 요시와라를 나가지 않겠냐고 하는 거야.”

 “…….”

 “나한테 단단히 빠진 것 같지?”


 여상히 웃었다. 햇빛이 오이카와의 얼굴에도 내렸다. 한잠 자지 못해 퀭해야 마땅할 텐데도 반짝인다. 이와이즈미는 잠시 침묵했다.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줄 수는 없었다. 그에게 가장 가까운 제 왼팔이 비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대한 말을 골랐다.


 “잘됐네.”


 너, 요시와라 밖을 궁금해 했잖아. 그래서 돌아온 후로 계속 나한테 이야기 해달라 찾아왔던 게 아니었어? 오이카와는 눈을 깜박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와이즈미는 갓난아이 적 요시와라 외곽의 논에 버려진 것을 요시와라의 자경단인 시로베에 중 하나가 주워 이곳에 입성하게 되었다. 오이카와와 마찬가지로 붉은 홍등가가 고향이 되었으나 귀속된 처지는 아니었다. 그는 원한다면 충분히 자유롭게 요시와라를 빠져나갈 수 있었고, 실제로도 오년 전 검 하나 달랑 들고 빠져나갔었다. 당시 견습 유녀였던 오이카와는 가지 말아달라고 그의 옷깃을 붙잡고 울었더란다.


 “그건 핑계였고. 난 그냥 이와쨩이 보고 싶어서 찾아갔을 뿐이야.”


 그러나 결국 이와이즈미는 빠져나갔고, 이년 후 텅 빈 팔 한 짝과 함께 다시 요시와라로 돌아왔다. 왜 그가 돌아왔는지는 이유를 모른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시로베에가 되어 오른손에 창을 들고 순찰을 돌지만, 아직도 오이카와의 옷장 안에는 제 손과 함께 잘린 건조한 천자락이 남아 있다.


 “네가 없는 곳이면 요시와라 안이든 밖이든 하등 차이 없어. 어차피 섹스 없이 돈을 벌 방법도 잘 모르고.”


 오이카와는 말했다. 고백인 것조차 인식 못하고 깜박 넘어갈 정도로 무던한 투였다. 이와이즈미는 미간을 찡그렸으나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싸구려 검은 무명과 윤기가 흐르는 매화가 종종 부딪쳤다 떨어진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가 거절하든 말든 돈을 주고 날 빼낼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이를 테면 원래는 평범한 남창이었다가 이제는 전용 남창이 되는 거지. 꽃잎은 없다.


 “사실 어차피 박히는 거, 한명에게 박히든 여럿에게 박히든 상관은 없는데 나가면 다시는 이와쨩을 못 보잖아.”

 “…….”

 “그건 싫어.”

 “…….”

 “그래서 그런데, 이와쨩. 이와쨩은 요시와라 밖을 이미 알잖아. 어쩌면 내가 몸 팔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지도 모르고.”


 남자는 고운 눈으로 조심스레 오랜 소꿉친구이자 짝사랑을 흘겨보았다. 단단한 표정. 괜히 침을 꼴깍 삼키고, 아무렇지 않게.


 “우리 같이 나갈까?”


 제안했다. 이 말을 듣는 당사자가 자경단의 일원이라는 것도, 그리고 자경단의 가장 큰 임무가 바로 요시와라에서 도망치려는 기녀를 처리하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오이카와로서도 이 말은 도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사흘 내로 온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내일 밤이야. 오오히케(大引け)[각주:1]가 부딪칠 때. 나도 남자니까, 평범한 옷을 입으면 조금 반(番) 같아 보일 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오년 전, 가지 말라고 붙잡았을 때. 이와이즈미는 오 분 동안 침묵했으니까. 그리고 이년을 돌아, 제게 요시와라 밖이 그리도 활기차고 좋더라 투박하게 설명해주면서도 너는 다시 내가 있는 거리로 돌아와 주었으니까. 그는 5분의 침묵을 믿었다.


 “뭐, 같이 안 가주어도 상관없어. 어차피 도망이 들키면 죽어야 하니까, 이왕이면 네가 날 죽여주었으면 해서 말하는 거야.”


 네게 죽든, 너와 도망을 가든 오이카와 씨에게는 전부 썩 괜찮은 최후일 테니까. 오이카와는 빙긋 웃으며 가볍게 발을 디뎠다. 부러 그늘을 피해 땅따먹기 하듯 폴짝폴짝 뛴다. 그렇게 성큼 이와이즈미를 앞서가, 다시 돌아온 자신의 가게 앞에서 몸을 틀었다. 여기까지 다시 5분.


 “기다릴게.”


 낮이 가까워지고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오이카와의 머리칼이 이와이즈미의 발등을 덮는다. 이와이즈미는 다시 침묵했다.






  1. 나무토막. 부딪쳐서 울리는 소리로 요시와라 하루의 끝을 전한다. 새벽 2시에 울린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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