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퀴디치 경기장으로 향하는 호그와트 성의 북쪽 문에는 마법으로 인해 밤낮 관계없이 따뜻한 기온을 이루는 온실이 이어진다. 기숙사 불문 한 학년의 학생들이 전부 들어가고도 넉넉할 법한 크기의 온실이 정확하게 열 개. 온실 사이의 틈새에서는 근본 없는 녹색 잔디 빼곡하게 방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약초학 교수인 포모나 스프라우트의 관할이지만, 기실 그 크기가 워낙 방대한지라 그녀가 직접 전부 돌보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각 학년의 온실 일곱 개는 교수가 늘 관리하지만 그 외의 세 온실은 그녀의 총애를 받는 소수의 아이들, 이를 테면 약초학 성적이 늘 O(특출함)를 차지하는 고학년 혹은 후플푸프 학생들이 추가점수를 대가로 돌보곤 했다.


 개 중 모든 온실 중 가장 깜깜하고 삭은 온도를 자랑하는 9번 온실은 약초학 성적이 학년 내에서 제일 우수한 후플푸프의 반장이 관리하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배우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섣불리 접하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식물들이 대다수라는 교수의 판단 하에 온실의 한쪽에서 은밀히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사내가 불리기에 미숙한 소년은 크게 발걸음을 옮겼다. 발자국 하나마다 짤랑거리는 금속의 마찰음이 망토 주머니에서 달랑거렸다. 스스로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카락이 나붓하게 흐트러진다. 호그와트 성에 설치된 거대한 시계탑이 댕댕 소리를 냈다. 4시를 가리키는 소리였다. 오후 수업이 30분 남았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치카라!”


 회랑을 지나자 뻥 뚫린 아치 무늬 칸칸이 망토의 끝자락이 박혔다. 예민하게 노란 안감을 포착한 소년이 쩌렁쩌렁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엔노시타 치카라는 걸음을 다소 늦추며 고개를 돌렸다. 햇발 짠하게 내리쬐는 분수의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소년이 손을 크게 흔들었다. 느슨하게 묶은 넥타이의 색은 명백하게 붉다.


 “유우.”


 엔노시타의 입가에 연한 미소가 떠올랐다. 너 변신술 수업 듣는 거 아니었어?! 니시노야의 물음이 한산한 회랑 사이 정원을 온통 적셨다. 그만한 울림이었다. 고개를 끄덕여 답한다. 그런l데 왜 벌써 나와? 엔노시타는 다시 한 번 웃었다. 같음 호선임에도 이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과제 제출일인데 내지도 않고 수업을 땡땡이 친 놈이 있어서.”


 맥고나걸 교수님의 특명이야. 잡아서 교무실로 대령하라셔. 니시노야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제 바로 위나 아래 학년과 달리 유난히 저희 동기들이 조용하다는 평을 듣곤 하지만 (그러나 명심해야 한다. 언제나 그리핀도르는 ‘고요’라는 단어의 예외로 적용이 되며, 저 말은 엄연히 비교급이다.) 그렇다고 사고치는 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능히 주인공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내가 도와줄까? 대신 나 어둠의 마법 방어술 리포트 작성하는 거 조금만 도와,”

 “됐어.”


 그는 무심하게 잘랐다. 어디 있는지 대충은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유우. 너도 이제 6학년이잖아. 숙제는 스스로 해야지. 니시노야의 어깨가 아래로 내려갔다. 아니, 네 걸 보고 베끼자는 게 절대 아니라…. 엔노시타는 제 친구를 향해 잔소리를 하는 대신 빙긋 웃는다. 소년의 입이 꾹 다물렸다. 명백한 패배였다. 승자는 저녁에 연회장에서 보자는 말과 함께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회장을 건너 익숙한 문으로 나오면 후덥지근한 온도와 함께 온실들이 있는 마당이 펼쳐졌다. 성 가장 가까이에 있는 2번 온실에서는 교수가 3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업 중인지 말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이곳이 온실이 아니었다면 초상화나 유령들의 대화로 착각할 성 싶었다. 반투명한 흰색 유리 너머로 머리 낮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는 전부를 가로질러 9번 온실로 향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말하자면, 엔노시타 치카라는 그 온실의 열쇠를 가진 유일한 학생이다. 문장에는 맹점이 있다. 말인즉슨, 9번 온실은 그 위험도와는 달리 굉장히 고전적인 출입문을 지니고 있으며 마법을 할 수 있다면 누구든 온실을 출입할 수 있었다. 증거로 막 당도한 온실의 문은 살짝 열려있다. 알로호모라는 1학년도 쓸 수 있는 간단한 마법이었다, 물론 올해 교수가 엄하게 출입을 제한한 장소에 함부로 발 딛을 1학년은 없지만. 이로써 예상은 확신으로 진화한다. 그는 한숨과 함께 완전히 문을 열었다. 지상에 있는 온실보다는 마치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에나 더욱 어울릴 법한 환경이다. 빛 한 점 없는 온실의 양쪽으로 송곳니 제라늄들이 있었고 안쪽은 길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흑색이다. 아니, 검어야만 했는데.


 그러나 줄기가 얽히고 틈을 메워 넝쿨을 이루는 거대한 온실의 끄트머리에서는 흐릿한 눈부심이 보였다. 마치 머글 역사의 첫 문장 같았다. : 태초에 빛이 있었다. 칠 년 전 읽었고 일 년 전 목도한 것이다. 엔노시타는 한숨을 내쉬며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검은 넝쿨들이 파동을 따르듯 꿀렁인다. 막대 끝에서 구석진 것과 전혀 다른 빛이 타올랐다.


 비로소 그는 제 기숙사 방만치나 익숙한 온실의 내부를 정확하게 보았다. 밝은 빛에 거대한 줄기들이 급하게 꾸물거리며 그의 주위를 피한다. 식물들이 움직이는 마찰음에 제라늄들이 입을 움직였고 날카로운 송곳니들이 따닥따닥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썩 위협적이었다. 지팡이로 바닥을 가리키자 악마의 덫들이 느릿하게 길을 만들어주었다. 자정의 금지된 숲을 고스란히 축소해 옮겨놓은 듯하다. 엔노시타는 익숙하게 그들이 도피하여 자아낸 길을 따라 걸었다. 팔뚝보다도 두꺼운 줄기들이 제 옆을 아슬하게 스친다.


 이윽고 그는 태초에 도착했다. 빛과 함께 소년이 있었다. 분명 필치가 순찰 중에나 사용하던, 비마법사식 전등을 제 위에 건 채 누워 있는. 삐딱하게 꼰 다리를 덮은 망토의 색은 기실 저보다 더욱 이 음습한 9번 온실에 어울렸다. 늪 마냥 늘어진 음울한 초록. 엔노시타는 소년이 눈을 뜨도록 종용했다.


 “후타쿠치.”

 “…….”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놀이 하지 마. 안 자는 거 알고 있어.”


 한 마디 덧붙여서야 소년이 눈을 떴다. 누런 전등 아래 갈색 눈동자가 주홍을 머금었다. 살풋 찡그린 얼굴마저 객관적으로 수려한 얼굴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그게 뭐야.”

 “머글 동화가 있어. 저주에 걸려 공주님이 영원히 잠에 들게 되는데, 왕자님의 키스로 깨어나지.”

 “그거 사랑고백으로 들어도 되는 부분?”

 “아니. 아직은.”


 그 단조로움이 애매했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어 그는 얼굴을 구겼다. 후플푸프 주제에. 읊조리자 선한 눈매가 저를 쫓아왔다.


 아무리 동기이고, 일부 수업은 함께 듣는다 하더라도 두 사람에게서 접점이 생기기는 쉽지 않다. 순혈과 혼혈. 슬리데린과 후플푸프. 슬리데린은 그리핀도르와 대척점이지만 그렇다고 타 기숙사와 관계가 원만한 것도 아니었고, 특히 오소리들은 모조리 얼간이 취급하며 무시하곤 했다. 후타쿠치의 일탈이 완전히 엔노시타의 장소가 아니었더라면 이렇듯 편하게 말 섞을 일은 칠년 내내 없었을 것이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화가 나셨어. 슬리데린 10점 감점에 당장 널 교무실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시던데. 정확하게는 ‘오늘까지 마감이었던 리포트를 들고 온 후타쿠치 켄지’를 교무실에 두라고 하셨지만.”

 “제길.”


 들켰나. 소년이 낮게 욕설을 지껄였다. 애초에 6학년 이후로는 O.W.L.s에서 E(우수함) 이상을 받은 학생들만 수업에 참가할 권리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과목당 수강생이 한 학년의 학생들을 죄 끌어 모아도 스무 명이 넘지 못했다.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한 쪽이 멍청이지.


 “그러게 땡땡이도 봐가면서 치지 그랬어?”

 “후플푸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놀라운데.”

 “성실은 후플푸프의 특성이지만, 후플푸프는 누구에게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지. 그것이 설사 같은 후플푸프라 해도 말이야.”


 엔노시타가 녹스, 말을 입 안으로 웅얼거리며 빛이 꺼진 지팡이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빛이 개체가 줄어들자 두 사람의 주변을 에우던 벽이 움직이지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신경 쓰지는 않았다. 머글식 전등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고, 이것이 있는 이상 악마의 덫은 두 사람 사이를 침범할 수 없다. 빈손을 앞으로 내민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성실은 강요하지 않는다며?”


 후타쿠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가장 눈에 띄는 세 개의 손금을 응시했다. 아직은 깨끗했다.


 “지금은 내가 받은 임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거고.”


 그래서 그는 손을 잡아 몸을 일으키는 대신 제 위의 랜턴을 내려 녹이 슨 손잡이를 쥐어주었다. 작은 심술이다. 흔들리는 빛을 피해 멀찍이 물러나 있던 마법 식물이 다시 천장을 장악해온다. 명암이 기이하게 뒤섞여 줄기의 매끄럽고 단단한 표면을 강조했다. 엔노시타는 묵묵하게 손전등을 든 채 동기를 내려다본다. 이제 눈동자로도 모자라 온 얼굴이 금싸라기 뒤덮은 몰골이다. 여전히 빛이었다.


 “정말 귀찮게 하네.”

 “하루 이틀이 아니잖아.”


 그리고 시라부도 꽤 화가 난 모양이던데. 슬리데린의 반장을 들먹이자 후타쿠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금세 얼굴 위로 그림자가 졌다. 망토를 두 번 털고 두른다. 넥타이도 셔츠도 꼴이 엉망이었지만, 엔노시타는 손을 뻗지 않았다. 옷매무새를 다듬기에 한손이 모자랐다. 대신 그는 등을 돌렸다. 숲의 길잡이, 어떤 사냥터지기처럼. 소년이 만든 그림자를 따라 걷는다. 등불이 깜박일 때면 식물들이 가까이 다가갔다 물러나길 반복했다.


 악마의 덫이 만들어낸 동굴 아래로 발소리만 타박타박 울렸다. 엔노시타는 불청객을 먼저 내보낸 후에야 전등의 불을 껐다. 유리벽과 바닥을 재차 기는 소리가 들렸다. 가을마냥 스산했다. 그는 전등을 온실 안쪽의 문에 걸어 놓은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누차 말하지만, 여기는 허가 받은 학생 외에는 출입금지 구역이야.”

 “스프라우트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되잖아?”

 “한 번 더 들어오면 이번에는 내가 감점 시킬 테니까.”


 아하, 이런 게 직권 남용이라는 거지? 후타쿠치가 빈정거리는 투로 말하며 엔노시타의 망토에 붙어진 반장 배지를 응시했다. 소년은 어깨만 단번 으쓱이고는 온실 문을 열쇠로 잠갔다. 쇠 부딪치며 내부의 잠금쇠 걸리는 소리가 귓속을 후볐다.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멍청하기는. 그러나 둘 중 누구도 제 속마음을 내뱉지 않았다.


 후타쿠치가 그 전등을 원래의 자리에 돌려 놓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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