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사람으로 가득한 도서관에서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밭게 울렸다. 이따금 숨소리, 혹은 책장을 넘기는 소리. 혹시 모를 말소리는 서로 의식하며 최대한 죽인다. 중간고사 기간을 삼일 앞둔 대학의 중앙도서관은 낮부터 사람이 가득하다.


 오이카와 역시 그곳에 속한 일인이었다. 과가 사체과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하는 이론 과목도 있기 마련이다. 교양 역시 마찬가지고. 대학에 들어온 후 첫 시험기간, 이라는 타이틀은 그에게 충분한 의욕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는 호기롭게 중간고사보다 내일 있을 발표가 더 중요하다는 이와이즈미를 억지로 끌고 도서관 한 쪽에 당당히 자리 잡았다. 수업에 집중할 때나, 고등학교 시절 시험기간에나 쓰고 다닌 안경도 간만에 다시 꺼냈다. 하지만 그런 포부가 무색하게 지금 오이카와가 쥐고 있는 서머리는 이십 분 즈음 전부터 한 장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와쨩.”

 “시끄러워.”


 아무 말도 안했는데! 네 놈이 할 말이라곤 뻔하잖아. 주위 사람들을 의식해 잔뜩 낮춘 목소리는 휘파람보다 나직하다. 오이카와는 어이없음에 입만 뻐끔거리다가 다시 냉큼 고개를 내렸다.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라는 이름의 사뭇 흥미로워 보이던 교양은 사실 무자비한 언론정보과의 교수가 지배하는 폭정의 과목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들이 ‘이해’라는 단어가 붙는 모든 교양은 신청하는 게 아니랬지. 매체가 시사하는 바에 대해 두어 줄 읽던 그는 다시 힐끔 제 맞은편을 곁눈질한다.


 당연하게도 이와이즈미가 있었다. 발표 대본을 외는지, 혹은 중간고사 공부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인상을 쓰며 버럭 외쳤던 것이 무색하게 열렬하게 종이만 응시한다. 나보다 까만 필기로 가득한 종이가 더 좋은 거냐고, 질투어린 말조차 내뱉질 못한다. 이와이즈미의 콧등에 얹힌 안경이 오이카와의 오리 주둥이를 쑥 들어가게 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오이카와가 안경을 쓴 이와이즈미의 모습은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그가 안경을 가지고 있었는지조차 몰랐다. 설마 경영학과라서 상경계열 티라도 내보려고 그러는 걸까? 라기에 정작 이와이즈미의 패션센스는 여전히 상경대생이라기 보다 공대생이라는 단어에 어울려서 대학데뷔냐는 시시한 놀림조차 꺼내지 못했다. 차라리 어울리지도 않는다면 멋대로 벗겨버리는 둥 장난이나 칠 텐데….


 오이카와의 뜨거운 시선을 감지한 이와이즈미가 눈을 힐끔 올렸다. 히익. 오이카와는 화들짝 놀라 상체를 뒤로 뺀다. 이와이즈미의 입이 무심하게 뻐끔거린다. 왜. 간단한 말이라 이해하기 용이했다. 아, 아니 그게. 오이카와는 무어라 말 하려다 이곳이 도서관임을 상기한다. 어쩔 수 없이 빈 공책을 꺼내 한 켠에 급하게 글씨를 써내려간다. 앞으로 내민다.


 ‘이와쨩, 그 안경 언제 산 거야???’


 그 문장을 눈으로 훑어 내린 이와이즈미가 허? 한숨을 내쉬었다. 저가 도서관에 멋대로 사람을 끌고 와선 제대로 공부도 안하고 있기에 뭔가 했더니, 고작 이런 거 때문이었나. 이와이즈미는 샤프 끄트머리로 공책을 툭툭 건들이다가 써내렸다.


 ‘개강하고 얼마 안 지나서. 강의실이 커서 그런지 중간에만 앉아도 글씨가 잘 안보이기에 그냥 하나 장만했다. 됐냐? 이제 공부해.’

 ‘왜 오이카와 씨에겐 말 안 해줬어? 너무해!(*´Д`*)’


 시끄러워. 이와이즈미는 여기까지 적어내리다 말고 순간 왜 제가 일분일초가 중요한 시간에 오이카와 녀석과 어울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건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여 종이를 제 소꿉친구에게 건네는 대신 그냥 제 가방 안에 둥글게 구겨서 쑤셔 박았다. 바로 눈앞에 있던 이가 그 광경을 목도하곤 입을 쩍 벌린다.


 오이카와는 급하게 종이를 찢어 글씨를 썼다. 쪽지처럼 예쁘게 접어 이와이즈미가 들고 있던 필기를 가리게끔 던진다. 세터답게 토스는 훌륭했다.


 ‘이와쨩, 내 마음을 그렇게 구기면 어떡해!’


 무언가 싶어 바라보던 이와이즈미가 그 문장에 재차 단호하게 쪽지를 밀어낸다. 오이카와가 새 종이를 보낸다. 무시하지 마! 당연히 무시한다. 버리지 말라니까? 라고 말하기에 버렸다. 이와쨔아앙. 이와이즈미는 기어코 쪽지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여태까지 받은 모든 종이들을 한데 구겨 오이카와의 머리 위로 스파이크를 날렸다.


 “악!”


 단발의 비명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죄 오이카와에게로 향한다. 잔뜩 울상을 지은 채 항변하려다 학생들의 눈총에 꼬리를 말고 몸을 늘어뜨린다. 진짜 너무해. 입을 삐죽거리며 이와이즈미를 노려봐도 그는 묵묵부답으로 대본을 훑는다. 사랑이 식었어. 오이카와는 결국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제 필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필요한 건 매체를 통한 다중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닌 사람과 사람간의, 아니 이와쨩과의 커뮤니케이션인데. 괜히 그 페이지를 다 읽은 척 다른 장으로 종이를 넘기고, 습관으로 이와이즈미를 힐끔 쳐다본다. 렌즈 너머로 비치는 얼굴 윤곽이 반쯤 어그러진다. 진짜.


 체육만 잘할 것 같은 못생긴 얼굴로 안경이라니, 정말 반칙이잖아. 오이카와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하염없이 그 얼굴을 응시했다. 외우기가 힘든지 드러난 미간에 주름이 진다. 무감한 눈동자가 제가 아닌 다른 곳을 투사한다. 이와이즈미가 좀체 떨어지지 않는 시선이 거슬려 다시 눈을 치켜들 기색이면, 그는 황급히 안경을 벗어 가방을 뒤적거렸다. 제 셔츠의 무늬가 보일 만큼 고개를 푹 숙이고, 이미 반질거리는 렌즈임에도 불구하고 광이 날 만큼 안경닦이로 반 무테안경을 문지른다.


 말도 안 돼.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나에게 안경 패티쉬가 있었던가? 아닌데. 그럼 분명 내 안경이 잘못되었겠지. 끊임없이 합리화한다. 그도 그럴게,


 이와쨩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다니, 이건 정말로 정신 나간 생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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