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바퀴가 미끄러진다. 고무가 둥글게 바닥에 마찰하는 소리는 미묘하게 다르다. 마치 뱀이 미끄러지듯 가느다란 침음을 흘리며 다가온다. 바퀴의 둥그런 원을 연결 짓는 단단한 쇠기둥이 서로 맞부딪쳤다. 기척은 앞에서 멈춘다. 아, 우스워라. 다만 그 삐걱임 만으로도 상대가 누군지 짐작이 갔다. 저절로 입가에 꽃이 돋는다.


 “오이카와 씨.”


 네가 말했다. 그런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요 없이 단정한 목소리다. 물론 멀쩡한 것은 목소리뿐이겠지만. 네가 있을 곳을 지그시 응시한다. 그림자(影)는 발치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은 채 가끔은 나의 뒤에서 길게 늘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목전에서 나를 추월하기도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눈꺼풀 아래는 전부 검다.


 “이야, 토비오쨩. 소식 들었어.”


 나는 한껏 발랄한 어투와 표정을 지어냈다. 배구 못하게 되었다며? 괜찮아? 며칠 전 세상은 그의 앞에 있을 사내에게 추락한 천재라는 오명을 붙여주었다. 아, 그러니까. 토비오의 다리가 영영 망가졌단 말이지. 소식을 들은 저는 한참을 파안했더란다. 그 꼴을 내가 두 눈으로 봐야 하는데. 이 내가 보았어야 했는데.


 카게야마는 잠시간 침묵했다. 날카롭게 뚫린 귀는 언제까지고 소년이었을 이가 한참 입술을 머뭇거리는 것을 알았다. 물기 찬 입술이 붙었다 떨어질 때면 생기는 기포 터지는 울림이 수 번 고막에 닿았다. 오이카와 씨는, 처음에 어떤 심정이었나요? 어떻게 버텼나요? 언제나 저 소년의 인생에서 표지는 나였다. 이번에도 다른 점 없다.


 “토비오쨩, 오이카와 씨에게 그런 질문도 할 줄 알고. 많이 컸다?”


 눈을 접어 웃는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기울이고 카게야마 쪽을 그대로 직시한다. 문드러진 열등은 꽤 신선한 즐거움을 야기한다. 뭐, 적어도 지금은 아주 괜찮아. 노래하는 것처럼 심정을 흥얼거린다. 진실이었다. 저가 카게야마 앞에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을 보면 모르겠는가. 그가 분해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상당히 아쉬웠지만 줄곧 저를 괴롭혀온 그림자는 사라졌다. 본디 모든 그늘은 어둠에 묻히기 마련이므로. 자신과 같은 지옥에 떨어진 자에게 기꺼이 양 팔을 벌린다. 이대로라면, 토비오쨩을 사랑할 수 있을 것도 같은 걸?


 “…….”


 카게야마는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본다. 몇 년 동안 줄곧 바란 문장이 튀어나오는 시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가요, 다행이네요. 참혹한 낯으로 뇌까린다. 손을 뻗지만 오이카와의 손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가 앉은 휠체어의 바퀴가 컸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고.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척 손을 다시 내렸다.


 “토비오쨩, 뭐했어?”


 옷깃이 스쳐간 소리를 듣기라도 했는지 오이카와가 묻는다. 그의 불투명한 시선은 제가 앉은 방향이었으나 정확하게 자신을 빗겨가고 있다. 아뇨, 옷이 구겨져서. 여상스러운 척 말한다. 시력을 상실한 남자를 속이는 일은 몹시 쉽다. 예전이었다면 감히 시도조차 못했을 협작이 이렇게나 단초에.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들썩여보다가 다시 오이카와를 바라본다. 시선의 화살을 맞은 오이카와는 재차 빙긋 웃으며 저를 응시해온다. 두 눈은 여전히 이물질 낀 회색이다. 그 너머에 비치는 음영에는 이목구비가 없다. 평생 저 남자가 나를 보는 날은 오지 않으리라. 기어코 카게야마의 얼굴이 무너진다.


 당신, 내가 보이지 않아야만 나를 사랑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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