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오늘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침 연습 때에는 답지 않게 리시브를 하나 놓쳤다. 오이카와, 너 이 자식 잠 덜 깼냐? 미조구치가 빽 외치는 것에 늘 그랬듯이 웃으며 넘겼다. 서브도 실수를 하는데 리비스도 한 번 쯤 실수할 수도 있죠. 뺀질거리는 낯이 싫었는지 바로 다음에 넘어오는 공은 위력이 훨씬 강했다. 읏챠. 다행히 이번 공은 무사히 쳐낸다. 미조구치는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다음을 외쳤다.


 점심시간 이전까지는 두 수업이나 졸았다. 아무리 배구부라고 해도, 아오바죠사이는 문무양도를 지향하기에 오이카와는 꼬박꼬박 제 성적을 챙기는 편이었고 마땅히 수업 시간에도 조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점심 후 5교시나 고문 수업은 그조차 견딜 수 없는 영역이지만, 그래도 영어라던가 타 과목은 그럭저럭 챙기는 편이었던 것이다. 꽤 피곤했나. 쉬는 시간이 되기 무섭게 몰려드는 여학생들에게 일일이 챙겨주며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늦게 자긴 했다. 봄고 예선이 다음 주로 다가왔는데 주장인 그가 손 놓고 있을 순 없었으므로. 인터하이 당시 아슬하게 저희에게 패배한 카라스노도 무사히 1차 예선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번 대회는 오이카와의 학창 시절에 있어 마지막 대회다. 이번에는 꼭 시라토리자와를…. 생각하니 초조해져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친구들과 식사를 하러 가는 대신 홀로 체육관으로 가 서브를 연습했다.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 괜히 더 무리하는 바람에 5교시에는 결국 엎어져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에는 쉬는 시간이었다. 눈앞에는 이와이즈미가 있었다. 너. 그는 꽤 무서운 얼굴이다. 앗차. 이와쨩에게 점심 안 먹겠다고 말하지 않았었구나. 오이카와는 찔끔하며 지레 어설프게 웃었다. 이와이즈미는 팔을 들어올렸다. 당연히 맞겠지 싶어 눈을 질끈 감는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응?”

 “아픈 주제에 어딜 빌빌 싸돌아다니는 거야, 망할 오이카와.”


 내려앉은 것은 주먹이 아니라 굳은살 있는 엉성한 손바닥이다. 어. 오이카와는 제 이마를 감싼 것에 멀거니 눈만 깜박였다. 그렇구나. 기분이 좋지 않은 것도, 다가오는 대회에 강박을 느낀 것도 아니었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기이하게도 히죽 웃음이 튀어나왔다.


 “이와쨩, 손 차가워.”

 “네 이마가 뜨거운 거야, 멍청아.”


 알고 있다. 자주 맞잡곤 했던 이와이즈미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었으니까.


 “일어나. 양호실 가자.”

 “이와쨔앙, 환자를 이렇게 다뤄도 되는 거야?”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멱살을 끌어 올렸다. 과격하다. 오이카와는 그러나 얄미운 어투로 말하면서도 순순히 일어났다. 그가 가는 방향으로 끌려간다. 그 얄미운 주둥이는 얼마나 아파야 닥쳐줄 거냐. 이와이즈미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멱살 쥔 손을 풀었다. 종이 울리고, 그는 손을 내려 오이카와의 다른 손을 잡아주었다. 이상하게 이번에는 이와이즈미의 손이 뜨겁다. 아픈 건 내가 아니라 이와쨩이 아닐까, 오이카와는 멍하니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뭐야, 이와이즈미. 건장한 남고생 둘이 손을 잡고 있는 광경을 때마침 목도한 하나마키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린다. 얏호. 안녕, 맛키. 오이카와가 잡히지 않은 손을 흔들며 웃었다. 멀쩡해 보인다. 이 녀석 아파서, 양호실에 던져주고 올게. 이와이즈미는 잡은 손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지극히 당연한 어조로 답했다. 영어에게 좀 말해줘. 하나마키는 이와이즈미의 태도에서 과연 한 마디 해야 할지를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역시 주장 챙기는 건 부주장 밖에 없네.”


 애초에 겉보기에는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겠는데.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의 낯을 훑더니 교실로 먼저 들어갔다. 두 사람은 다소 적막해진 복도를 걸었다. 이와쨩, 정말로 나 던져놓을 거야? 밥은. 이와이즈미는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삐죽였다. 먹었어. 거짓말이다. 이와이즈미는 예리하게 꿰뚫었다. 뭐 먹었는데?


 “음….”


 이와쨩의 사랑? 결국 안 먹었다는 소리다.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구겼다. 비록 제 앞선 걸음에 있더라도 오이카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급하게 변명했다. 아니, 오이카와 씨도 먹으려고 했는데…. 되도 않게 말하다보니 억울해진다. 나 환자라며. 유리처럼 대해줘도 모자란 판에 왜 화를 내. 이와이즈미가 말해주기 전 까지는 아픈 줄도 몰랐던 주제에 말은 잘 한다. 마땅히 이와이즈미는 코웃음 쳤다.


 양호실에 도착하자마자 이와이즈미는 제 보모마냥 대신 보건 교사에게 오이카와의 증상을 설명했다.


 “선생님, 이 녀석 감기에요. 열 있고 몸도 무거워요. 아직 기침이나 콧물은 없는 것 같은데 두통은 있을 지도 몰라요.”

 “역시 이와쨩은 우리 엄마에요?”

 “닥치고 넌 약 먹고 자.”


 보건 교사가 건네주는 약을 오이카와의 손에 쥐어주며 이와이즈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 물은? 오이카와는 투정부렸다. 네가 애냐, 말하면서도 그는 순순히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건넸다. 헤실거리며 얌전히 약을 넘기자, 이와이즈미는 직접 오이카와를 한쪽에 마련된 침대로 끌고 갔다. 오이카와로선 다행스럽게도 던져두지는 않는다. 오이카와는 얌전히 누웠다. 5교시에도 열심히 잤는데, 놀랍게도 또 수마가 몰려들었다.


 “이와쨩.”

 “오냐.”

 “나 잘 때까지 가면 안돼.”


 하? 이와이즈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너 내 성적 말아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오이카와 씨 환자잖아. 이 녀석은 환자라는 명목으로 살인도 용서해 달라고 할 놈이다. 이와이즈미는 한 소리 하는 대신 오이카와의 눈을 제 손바닥으로 덮었다. 얼굴만 뜨겁다.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얌전히 잠이나 쳐자.”


 너무해. 오이카와는 쫑알거렸다. 이와이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무응답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몇 마디 더 지껄였다. 그러다 잠든다. 고른 숨소리가 퍼졌다.


 이와이즈미는 그제서야 그의 눈을 덮고 있던 손을 뗐다.





'HQ > 단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와오이] 시험기간  (0) 2015.12.23
[카게오이] 실족과 실명의 교차점에 대한  (0) 2015.12.21
[우시오이] 무연고자  (0) 2015.11.29
[이와오이] Z  (1) 2015.11.12
어떤 문장  (0)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