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네 올해 생일 선물.”

 “? 이게 전부 다요?”


 오이카와는 멍멍한 얼굴로 소속사 창고 안을 바라보았다. 보통은 청소 용구나 보관해두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 그 역시 처음 문 열어보는 칸이었다. 낡은 백열전구가 깜빡깜빡 거리며 마치 사이키마냥 빛을 내리면 그 아래로 마치 산 마냥 선물들이 쌓여있다. 단언컨대 한창 교내에서 인기를 누렸던 고등학교 시절에도 저런 양은 받지 못했다. 양 팔은커녕 밴 트렁크와 뒷좌석에 꾹꾹 눌러 담아도 2번은 왔다 갔다 해야 할 정도다. 그는 새삼스럽게 제 팔뚝을 문질렀다. 분명 작년에도 팬들로부터 선물을 받긴 했지만, 저 정도는 결코 아니었는데. 인기가 생겼다는 것이 몹시 기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하긴, 이제는 맨 얼굴로 밖을 돌아다니기도 힘들 지경이긴 하지.


 “네 팬카페나 팬사이트가 워낙 여기저기 있으니까, 각 팬사이트마다 다 돈 모아서 너한테 보내준 거야. 당연히 개인이 보내 준 선물들도 있고.”

 “진짜 고마운데, .”


 오이카와가 창고의 중심부에 자리한, 그 포장된 크기나 모양을 모아 가전제품이 틀림없을 가장 커다란 박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런 건 너무 비싸지 않아요? 호의를 받는 행위에는 무척 익숙한 저라도 교복을 입은 아이가 저가 마련하기엔 썩 비싼 선물을 건네던가, 지나치게 값이 나가는 선물을 줄 때에는 미약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곤 했다. 매니저가 침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미 받은 건 돌려보낼 수가 없어서,”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개인이 보내는 선물이 아니라, 여러 팬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준 선물이니까. 그 말에는 또 나름대로 수긍이 가는 것이다. 오이카와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전부 받을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물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저것들을 전부 제 집으로 옮기는 것에는 무리가 있어, 그는 먼저 음식을 비롯해 부피가 작아 보이는 종류의 선물부터 옮기기로 했다. 매니저와 지난달에 새로 들어온 코디가 많이 도와주었다. 그 결과 다행스럽게도 눈에 띄는 명품 브랜드 이름이 새겨진 가방 몇 개와 와인 냉장고를 제외하고는 전부 옮길 수 있었다.


 “저 냉장고는?”

 “일단 저걸 둘 자리부터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차라리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가는 건 어때?”

 “아직 계약도 안 끝났거든요.”


 꽉 채운 트렁크 문을 닫으며 오이카와가 샐쭉 웃었다. 매니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매니저가 운전해준 차를 타고, 또 그의 도움을 받아 짐을 다 옮기고 나서야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 그래. 오이카와. ? 이거. 비로소 가벼워진 손에 숨을 돌리려던 것도 잠시, 그는 저가 좋아하는 베이커리의 봉투를 또 받아야만 했다. 사내의 눈이 둥글게 커졌다.


 “뭐에요? 아잇치 형 주제에 선물?!”

 “죽는다.”


 주먹을 치켜 올리며 위협하는 모양이 썩 익숙하다. 오이카와는 과장스럽게 어깨를 움츠렸다. 얼굴에는 웃음이 만연하다. 어쩐지 이 안에 든 것이 우유빵 같다. 팬이 준 선물도 반갑고 기쁘지만, 아무래도 익숙한 사람이 주는 선물이 더 생생하게 감동적이긴 했다.


 “그래도 생일 어제였으니까, 줄지는 몰랐죠. 오이카와 씨 완전 감동!”

 “감동 같은 소리 하네. 그러니까 오늘은 허튼 짓 말고 올라가서 쉬어. 내일 2시에 데리러 온다.”


 오이카와가 오케이 사인을 그렸다. 그는 매니저가 떠나는 모양을 보고서야 맨션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슬쩍 열어본 봉투는 역시 우유빵이다. 이제 열도에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우유빵을 좋아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는 빙긋 웃었다.


 올 생일은 조촐하게 보냈다. 기실 밤늦도록 촬영이 이어졌던 터라, 생일이라는 사실에 계속 신경 쓸 틈도 없었다. 간간히 도착하는 생일 축하 메시지라던가, 단독 씬의 촬영 도중 깜짝 등장한 케이크가 아니었더라면 완전히 잊었을 것이다. 사실 그는 독일로 떠난 그 해부터 제 생일을 크게 의식하지 않으려 애썼다. 특별한 날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특별해지지 못했으니까. 자신을 누구보다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단 한 명이 없기 때문에. 올해도 이와이즈미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오른쪽에 심장이 없어 외로운 날이었다.


 대충 샤워를 마친 후 매니저인 쿠도 아이치가 준 우유빵을 입에 문 채 포장지 까기에 돌입했다. 피로가 쌓였지만 할 수 있는 한 포장을 끄르고 잘 예정이었다. 선물들도 참 여러 종류였는데, 다들 배송 기간 따위를 고려해 일부러 케이크 보다는 쿠키 따위의 제과를 보내주었다. 우유빵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겠다. 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알록달록한 포장지들이 바닥에 흩뿌려진다. 이어 책부터, 티셔츠, 신발, 악세사리나 사소한 장식품, 제 얼굴을 그린 액자 따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꼭 집 안에 걸어두어야지, 다짐할 정도로 감동적인 것도 있었고 장난스러운 장난감이나 무늬가 그려져 있어 폭소가 터진 것도 있었다. 조금 값비싼 물품이 보일 때면 기쁘면서도 염려스럽기도 했다. 잘 쓸 것 같지는 않은데, 버릴 순 없으니 다시 곱게 상자에 넣어 구석에 밀어두었다.


 대본을 볼 때 사용하라는 듯 선물해준 안경은 굉장히 제 취향이었다. 한 번 써봤는데, 약하게 들어간 도수가 딱 제게 적절했다. 내가 도수를 알린 적이 있던가? 무언가 조금 찝찝하기도 했지만, 극성팬들이라면 제가 종종 들르는 안경점을 알 수도 있었다. 그는 흔쾌히 선물을 받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선물을 준 팬사이트, 제 팬사이트 중 가장 큰 곳으로 알고 있다. 종종 주는 선물이나 간식들도 놀라울 정도로 제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 선물 역시 내심 기대하며 그는 같은 디자인으로 포장된 상자 하나를 풀었다. 제 손바닥보다 조금 더 길쭉한 크기였다. 무게를 감안하면, 악세사리 쯤 되려나? 반지는 영 익숙해지질 않아 별로인데. 이제는 맹랑한 생각까지 하며 검은색 상자를 열었다.


 상자의 내용물은 그의 예상대로 악세사리였다. 정확하게는 목걸이다. 그것도 몹시 단조로운 디자인이었는데, 가느다란 목걸이 줄에 직선 무늬가 하나 죽 그어진 것이 전부였다. 심심하다 보아도 무방했다. . 오이카와는 목걸이를 들어 제 눈높이까지 들어올렸다. 불빛에 반사되어 직선의 가장자리가 반짝반짝 거린다. 지나치게 단조로운 가로줄이 무언가를 연상케 했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제 취향도 아니고, 딱히 저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디자인도 아닌데 마음이 술렁거렸다. 가로줄. 그 한 획의 선()이 문제였다.


 “, 정말.”


 겨우 생일도 지났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 떠올리게 하기는. 그는 불투명한 누군가를 향해 투덜거렸다. 얼굴 한 번, 연락 한 번 없는 주제에 어떻게 매일 제 의식에서 숨 쉴 수 있냐고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부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오이카와는 머뭇거리다가 목걸이를 착용해보았다. 줄 길이가 딱 적당했다.


 나쁘진 않네. 거울을 보여 요리조리 재어보았다. 그때마다 금색의 선이 입체적으로 제 윤곽을 드러냈다. 애초에 무난한 디자인이기도 하고, 제 얼굴이 받쳐주니 잘 어울렸다. , 그래. 찍어서 인스타그램에나 올릴까. 그는 선물 받은 셔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걸친 뒤 미남이라는 단어가 정직하게 새겨진 모자를 쓰고, 아까 전 안경마저 착용한 후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개 중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골라 보았다. , 전부 다 잘난 얼굴이라 고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사진)


모두들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오이카와씨 완전 감동했어~

#너희들이최고야 #완전센스쟁이들#어제까지촬영해서피곤해흑흑

#하지만다크서클이있어도멋쟁이오이카와씨다! #오이카와씨인스타


 

 글을 올리자, 놀랄 정도로 피로가 몰려들어왔다. 아무래도 남은 선물은 내일 풀어보아야겠다. 그는 모자와 안경을 벗은 뒤 셔츠까지 벗어 다시 곱게 갰다. 목걸이도 벗어야 할 텐데. 그는 가운데의 짧은 한 줄을 조심스럽게 매만진다. 어쩐지 벗고 싶지 않았다. 고작해야 팬이 선물한 목걸이인데.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이와쨩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들고 다닌다면 조금은 그가 제 가까이에 있다고 위로할 수 있을 테니까.


 오이카와는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뉘였다. 느리게 눈을 내리감는다. 결국 목걸이는 빼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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