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최근 이와이즈미의 귀에는 오이카와의 이름이 지나치게 잦다. 이번에 시작했다던 드라마가 동시간대 1위를 달리며 승승장구 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이카와의 연기가 장난 아니라며 뭇 여사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어제 본방 봤어요? 봤어, 봤어. 오이카와 정말 멋졌지? 내가 유카리라면, 세토 말고 이노우에를 선택할 거야. 솔직히 누가 봐도 저만 잘난 남자보다는 그런 순정파가 좋잖아? 맞아요. 게다가 잘생겼고, 돈도 많은데! 탕비실을 지나며 들리는 말에 이와이즈미의 입꼬리가 어설프게 내려간다.


 지난 밤, 이와이즈미 역시 그 드라마를 보았다. 애초에 그런 연극에는 흥미가 없어 간간히 인터뷰나 신문 기사 따위로 오이카와의 소식을 접한 게 전부였건만 어제는 퇴근 후 지나치게 할 일이 없어 텔레비전을 돌리다가 불현듯 채널이 멈춘 곳이 오이카와가 클로즈업 된 화면이었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생소한 이름을 달고 타인을 연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연기’를 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광경이 참으로 우스워 폭소를 금치 못했더란다.


 세간에서는 오이카와의 연기가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연기가 분명 극장에서 몇 년은 굴러먹은 배우일 것이다, 라던 일부의 추측이 무색하게 오이카와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다지 밝혀진 바가 없다. 본디 그가 속한 기획사가 연기자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다만 공인된 정보에 의하면 오이카와가 연기를 배운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고작 연기 학원 몇 달 다니며 죽어라 혼자 공부한 것이 전부라는 어떤 인터뷰에서의 발언이 또 약간의 화제가 되었다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팬 중 한 명인 여자 동기에게서 전해 들었다. 하지만, 글쎄.


 이와이즈미는 단 한 번도 오이카와의 연기가 뛰어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도 그럴게, 그의 눈에는 오이카와가 거짓부렁을 하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이는 것이다. 지나치게 가까우면 이 역시 문제가 되는 것임을 이와이즈미는 처음 알았다. 그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봐도 몰입이 불가능했다. 분명 이노우에가 부모와의 마찰로 인해 크게 다투는 심각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폭소 밖에 나오질 않았다. 저게 뛰어난 연기라고? 저렇게 과장하고 있는데?


 그러나 시야에 비치는 얼굴만은 반가웠다. 그가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줄곧 채널을 바꾸지 않았던 것은 그 탓이다. 간만에 보이는 얼굴이, 비록 우스운 몰골일지라도 네 목소리가 몹시 그리웠었다. 카메라는 종종 오이카와의 얼굴을 큼직하게 잡아주기도 해서, 이와이즈미는 그의 조금은 바뀐 얼굴을 훨씬 자세히 볼 수도 있었다. 그는 얼핏 찍히는 손이나 발자국 모양에도 단숨에 누구의 것인지 깨달을 수 있으므로.


 “이와이즈미. 오늘 퇴근하면 뭐해?”

 “왜?”

 “왜긴 왜겠어.”


 이거 하려고 그렇지. 잔을 들어 손목을 꺾는 시늉을 하며 영업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기, 후지와라가 씨익 웃어보였다. 그놈의 술, 지겹지도 않냐. 가벼운 타박에도 후지와라는 알콜이 바로 직장인의 힘이라며 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인다. 왜, 시마다 데리고 가지? 이와이즈미는 여자 동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그러나 후지와라는 과장스럽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하는 것이다.


 “시마다는 오늘 그 잘난 오이카와 나오는 드라마 때문에 안 된단다.”


 본방 사수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이와이즈미의 귀가 쫑긋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목요일이지. 오이카와의 드라마는 주 2회 방영된다. 음, 이와이즈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손을 내저었다. 그럼 나도 패스.


 “아, 왜!”

 “피곤해. 내일 마시자.”


 후지와라는 제 머리를 벅벅 긁다가 결국 알았어. 꼬리를 내렸다. 이와이즈미의 그의 등을 툭툭 치며 미안다고 가볍게 사과한다. 그가 자리에 돌아가는 것을 보곤 이와이즈미 역시 짧은 휴식을 마친다.

 

 이와이즈미가 오랜 소꿉친구이자 짝사랑 상대의 흔한 빠돌이가 되기까지 불과 일주일 남은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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