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오이카와 씨 팬 분들께서 간식 보내주셨습니다! 먹으면서 잠시 쉬다가 다시 촬영 시작할게요!”


 소식을 전해온 매니저의 말을 들은 감독이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와아! 찰나에 온 스텝들이 함성을 지르고 몸을 긴장시키던 배우들이 몸을 늘어뜨렸다. 오이카와는 웃는 낯으로 제 이름으로 온 간식 상자를 하나하나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건강음료와 더불어 싱싱한 과일과 마카롱, 쿠키와 우유빵 따위가 포장된 아기자기한 상자가 모두에게 하나씩 배분됐다. 그에게서 상자와 음료를 전달받던 여배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이카와 선배와 계속 촬영하다간 살만 찔 것 같아요.”


 그의 팬들이 워낙 자주 음식 조공을 보내줘 덩달아 이번 촬영기간 동안 스텝과 배우들만 호사를 누리고 있다. 물론 타 배우 분들도 종종 밥차와 간식들을 보내주지만, 대개 드라마 전체 촬영기간 동안 한두 번이 전부였다. 한데 촬영이 막바지에 달하는 현재, 오이카와 측은 밥차를 제하고 간식만 벌써 다섯 번째다. 근래 그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과연 최근에는 일본에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대세라더니.”


 마찬가지로 줄을 서서 간식을 받았던 조명 감독 한 분이 지나가며 한쪽 눈을 찡긋했다. 덕분에 이번 촬영 내내 잘 얻어먹는다, . 아니에요. 맛있게 드세요. 지나가는 스텝들 모두가 한 마디씩 감사인사 하는 것을 받으며 오이카와는 생글생글 웃었다. 팬들이 신경써주는 마음도 좋았지만 늘 빠지지 않고 우유빵을 함께 넣어주는 것이 오늘따라 유난히 기꺼웠다.


 더군다나 금일 낮은 협찬을 받은 브랜드의 카페 내부를 통째로 빌려 촬영 중이라 앉을 곳이 많았다. 다른 스텝들과 마찬가지로 오이카와도 동료 몇과 볕이 잘 드는, 통유리로 된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의 옆에는 매니저가, 맞은편에는 상당히 친하게 지내는 남자배우와 함께 합을 맞추는 주연 여배우가 함께다.


 “너네 팬클럽 애들은 어느 팬페이지든 꼭 우유빵은 함께 보내주더라.”

 “하하.”

 “이러다간 나까지 우유빵에 중독되게 생겼네.”


 맛있지 않아요? 그래도 유명한 베이커리에서만 골라서 보내주던데. 그건 그래. 게다가 매번 넣어줘도 결국 텀 자체가 지나치게 짧지 않으니까 좋던데요. 오이카와는 간간히 제스쳐를 취하며 음료를 빨아마셨다. “오이카와 씨는 그럼 우유빵을 얼마나 자주 먹어요?” 이따금 질문이 넘어올 때면 입에 있던 것을 꿀꺽 삼킨 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정말 끌리는 날에는 하루에 세 개 씩도 해치워요.”


 와아. 정말 좋아하는구나. 맞아. 그래서 오이카와 씨, 모 유명 프렌차이즈 베이커리랑 계약도 했었잖아요. 거기 매출도 크게 뛰었다면서요? 아아, 나도 광고 계약 들어왔으면 좋겠다. 이것 봐. 나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랑 되게 잘 어울리지 않아? 부드러운 남자 느낌 들지 않아? 푸합. 빵이나 먹어요.


 자잘한 대화도 잠시, 음식이 하나 둘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잠깐 대화가 멎는다. 오이카와는 짧게 어깨를 으쓱인다. 아닌 척 해도 뿌듯한 것은 사실이다. 간식들을 날라줄 때마다 자주 얼굴을 보던 팬들과는 오늘도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망하지만 팬클럽의 간부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아이들이라 얕게나마 친분이 있다 해도 무방했다. 지난번에는 가지 못해 미안하다느니, 이 가게에서 우유빵을 주문했으니 혹시 맛이 괜찮다면 가보라느니 하는 소소한 대화였다. 친절한 오이카와 씨는 가끔 팬들의 직장상사 욕을 들어주며 상담을 해주기도 하는 터라,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이런 이야기도 들었지. 그는 짧게 상기한다.


 ‘, 맞아. 그리고 오빠! 우리 팬클럽에 새로운 간부님 들어왔어요! 오빠 진짜 완전 대박 헐 짱팬이래요!’

 ‘헤에, 그래?’

 ‘그런데 더 대박은 뭔 줄 알아요? 새로운 간부님이 오빠 남팬이라는 사실!’


 직장인이라서 오늘은 같이 못 왔지만, 지인짜 오빠 좋아하는 것 같아요! 게다가 오빠랑 취향도 잘 맞아요! 짱이죠? 오빠 완전 마성의 남자에요! 남자도 다 꼬셔버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양손으로 엄지를 추켜세우던 한 어린 팬을 떠올리자, 기어코 오이카와는 푸스스 웃음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자그마한 소리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즐거운 생각이라도 해요? 간식 먹는 게 그렇게 좋아요?”

 “, 아녜요. 아까 전에 잠깐 팬들이랑 이야기 나눈 게 떠올라서.”

 “오이카와 씨 지금 자기 팬 많다고 자랑하는 거죠?”


 어휴, 얄미워. 에이,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장난스러운 말에도 과장스럽게 눈을 뜨며 고개를 휘젓는다. 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촬영하겠나. 일부러 저를 놀리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지인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아예 도시락을 들고 다른 테이블로 옮기려는 모양에는 얼른 손으로 그를 붙잡으며 장단을 맞추던 오이카와는 별 생각 없이 창문을 힐끗 일별했다.


 “.”


 이윽고 세상이 멈추었다.


 찰나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제게서 배제되었다, 시야에 들어온 한 남자만을 제외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검은 머리칼의 남자였다. 넥타이는 청색 바탕에 은실의 가느다란 스트라이프가 사선으로 그어져 있다. 낯선 얼굴인데도 순식간에 꿰어진다. 오이카와는 눈을 깜박이지 못했다. 단초에 사라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숨도 쉬지 못했다. 날숨 한 번에 날아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작금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이와이즈미 하지메와의 과거와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남긴 말과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막연한 버팀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오이카와 씨? 갑자기 왜 그래요?”

 “아니, , .”


 촬영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온 무수한 인파 사이에서, 사내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는 이름을 모르는 몇 명이다. 아마도 회사 동료지 않을까? 정장 차림과 목에 걸린 비슷한 모양의 사원증으로 어림짐작한다. 그들은 카메라로 북적이는 곳을 힐끔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저 사내 홀로 또렷하게 외면한다. 이윽고 다른 방향으로 발길 돌린다.


 아, 안되는데.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무작정 일어섰다. 일어나는 와중 허벅지와 테이블이 부딪쳐 덜컥 소리를 냈다. 오이카와 씨?!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당황하여 제 이름을 불렀지만 미처 그들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완전한 타인이다. 늘 그에게 최우선은 배구와 이와이즈미 하지메였고, 배구가 없는 현재 최우선은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매니저가 앉아있던 자리를 헤치고 헐레벌떡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가 있을 방향을 어림짐작하여 전진한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의아한 듯, 혹은 반가운 듯 제 이름을 불렀지만 기다리는 목소리가 아닌 터라 대답하지 못한다. 오이카와는 아까 전 카페에서 저가 바라보았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단발의 여자아이가 핸드폰을 들고 꺄악,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와쨩은?


 아무리 고개를 둘러봐도 삐죽한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밝은 대낮에도 플래시가 코앞에서 팡팡 터졌다. 그러나 어떤 반응도 없이, 눈살 한 번 찡그리지 못하고 그는 망연하게 자리에 섰다.


 비로소 숨을 내쉰다. 현실로 돌아온다. 눈을 깜박인다.

 새삼스럽게도, 이와이즈미가 없는 세상이다.

 

 


'HQ > SIDE OU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와오이] SIDE : August  (0) 2017.03.23
[이와오이] SIDE : 0721  (0) 2016.08.20
[이와오이] SIDE : 1  (0) 2016.03.20
[이와오이] SIDE : D-7  (0) 2015.12.26
[이와오이] SIDE : O  (0) 201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