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이와이즈미는 꿀 같은 휴일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번화가로 끌려왔다. 어설프게 신경 쓴 옷차림이 몹시도 어색하다. 약속 장소인 하치 동상 아래에서 핸드폰만 만지며 약속 상대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내 서너 명의 여인네들과 눈이 마주친다. 누구는 일을 하다 나온 것처럼 정장 차림에 피곤한 기색이었고, 누구는 하이힐까지 신은 채 화려하게 차려 입었으며 또 누구는 이와이즈미보다 서넛은 족히 어려 보였다. 전혀 접점 없는 것 같은 세 사람 중 둘은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예상대로 이미 면식 있는 여자 한 명이 손을 올려 붕붕 저어보였다.


 “저기 있네요. ‘몰텐’님!”

 “…네.”


 제 진짜 이름도 아닌 것이 사람들 잔뜩 모인 곳에 울려 퍼지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웠다. 심지어 호칭도 ‘씨’가 아니라 ‘님’이라니. 도대체 저 여자는 쪽이란 것을 모르는 걸까. 온라인 지인과의 만남은 본디 이렇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데도 차라리 본명을 알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이와이즈미는 닉네임을 크게 외치며 다가온 그녀들을 향해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냥 이와이즈미라고 불러요.”

 “어머, 몰텐님의 본명인가요? 이렇게 막 알려주셔도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그냥 불러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녀들은 왜 이와이즈미가 본명까지 알려주며 강조하는지 짐작하기 때문이리라. 하긴, 그는 외견상으로 보았을 때 오프라인 모임에 전혀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이와이즈미가 자신과 함께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생긴 것도, 심지어 말투마저 전형적인 운동부 사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돌을 좋아할지언정 남자 배우의 팬사이트에 가입을 할 정도로 팬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지…. 닉네임 ‘꽃길만걸어’, 흔히 꽃님이라고 불리는 오이카와 대표 팬사이트의 간부 하나가 수줍게 웃었다.


 “그럼 이와이즈미 씨라고 부를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맞다. 그리고 이 분은 처음 보시죠? 저희 서포터 중 한 분인 ‘우유빵’님이세요. 우유님이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저번에는 개인사정 때문에 못 오셨거든요. 그리고 이쪽은 저희 팬사이트의 드문! 오이카와 남팬인 몰텐님!”

 “안녕하세요, 우유빵이에요. 다른 분들에 비해 어려서, 편하게 말씀해주셔도 괜찮아요. 다른 언니들도 모두 제게 말 놓거든요.”

 “아, 네.”


 이와이즈미는 곧잘 웃는 우유빵을 향해, 아니, 우유님을 향해 겨우 자기소개를 했다. 몰텐이라고, 합니다. 제 스스로 이름 꺼내는 폼이 영 어색해 보인다. 그래도 배구공 브랜드를 따온 게 망정이지, 만약 저 분처럼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음식이랍시고 우유빵이라고 지었다면…. 끔찍했다. 만약 이와쨩이라고 지었다면 이와쨩님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몰, 아니, 이와이즈미 씨는 그냥 일반회원이긴 한데, 지난번 교류회에서도 되게 잘 도와주셨고 무엇보다 센스가 좋으셔서 오늘 특별히 제가 부탁했어요.”

 “아니, 센스가 좋다기보다는 이상하게 오이카와의 취향에 들어맞는 느낌이지만….”

 “맞아, 맞아.”


 꽤 친한 두 여자의 대화를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그녀가 가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그랬다. 이와이즈미가 때 아닌 여자들과 무려 삼대 일로 만나게 된 이유는 오이카와 때문이었다. 멍청카와를 못 만난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저를 괴롭히고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까지가 단순한 걱정과 그리움 때문이었다면, 최근에는 조금 다른 이유들이었다.


 오늘은 바로 한 달 뒤가 오이카와의 생일이었기 때문이다. 팬사이트에서는 항상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이트 내에서 자금을 모아 오이카와를 서포트하곤 했다. 사실 이와이즈미가 보기엔 수시로 했다. 새로 드라마를 찍으면 드라마를 찍는다고 밥차를 보내고, 시청률이 어느 정도 되면 또 어느 정도를 넘겼다고 간식거리를 보낸다. 혹시라도 저희 팬을 언급하면 언급했다고 인터뷰날 단체 티라도 돌리는 것이다. 무슨 일이 생겨서 오이카와와 그 주변 스탭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오이카와를 챙겨주고 싶어서 무슨 일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개 중에서도 ‘생일’은 무려 일 년에 한 번 밖에 없는, 그것도 그들의 정신적 지주 혹은 남편과 다름없는 배우 오이카와 토오루가 태어난 날이었다. 당연히 팬사이트에서는 생일 석 달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와이즈미도 어느 정도의 금액은 보냈다. (사실 그는 항상 돈을 보탰다.) 그리하여 오늘은 투표와 간부 회의로 추린 선물 목록을 드디어 구매하는 날이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주문을 넣으면 훨씬 편할 텐데, 이 사람들은 ‘내 배우에게 보내는 선물은 내 눈과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으로 기어코 직접 거리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어색하게 낀 채 세 여자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선물 목록과 미리 알아둔 브랜드들, 그리고 백화점이며 브랜드점의 위치를 체크하며 동선을 짠다. 일단 목록 중 가장 많은 브랜드가 입점한 백화점에 향하기로 결정 나자 과감하게 걷는다. 사실상 저들의 쇼핑에 얼결에 낀 것과 다름없어 그는 따라다니기만 했다.


 그녀들이 이와이즈미를 센스, 라고 칭하는 안목을 신뢰하게 된 것은 약 네 달 전, 오이카와가 연말 방송사 시상식에서 신인 남자배우 상과 최우수 조연상 2관왕을 수상한 기념으로 선물 투하, 즉 ‘조공’이란 것을 보낼 때였다. 회원만이 볼 수 있는 사이트 내에서 선물에 대한 추천이며 투표가 진행 중이었는데, 사실 이와이즈미는 투표 후 댓글로 별 생각 없이 언젠가 오이카와가 지나가며 오래 눈에 담은 신발 하나를 언급했을 뿐이었다. 그의 댓글은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했고, 산발적으로 올라오는 추천 목록들에 조용히 묻혔다. 하지만 조공을 보낼 적, 정한 물품을 모두 구매하고 포장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금액이 남자 운영진은 고민 끝에 댓글 중 몇 개를 뽑아 함께 보내기로 했고, 개 중 이와이즈미의 의견이 뽑혔다. 우연과 우연이 거듭한 산물이었다. 그런데 막상 조공을 보내고 나자, 운영진이 고심들여 결정한 선물들과 다수 팬들의 투표로 뽑힌 목록을 전부 제치고 이와이즈미가 덧글로 무심코 달았던 신발이 오이카와의 분신이라 일컫어질 정도로 ‘최애 신발’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이카와가 애용한다는 브랜드도 아니었고, 그가 방송에서 자주 보이던 디자인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좋아하는 색도 아니었는데!


 이후로 비슷한 투표가 올라올 때마다 간부들은 묘하게 닉네임 ‘몰텐’의 댓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아무 말 않을 때도 있었지만, 제 의견 하나씩 말할 때도 잦았다. 마들렌보다는 그냥 라즈베리 박힌 쿠키가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에도 오이카와는 페이스북으로 간식 잘 먹었다며, 특히 라즈베리 쿠키가 취향이었노라 첨언을 남겼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말투는 무심했고, 딱히 제 의견이 뽑히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지만 추천하는 것들은 묘하게 구체적이었고, 놀랍게도 죄다 오이카와 토오루의 취향에 직격했다. 운영자는 이와이즈미를 처음 만났을 때, 사실 오이카와 본인인 줄 알았다고 웃었을 정도였다. 이후로 간부들은 언제부턴가 조공이나 서포트를 할 때만 되면 이와이즈미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오늘처럼.


 이와이즈미의 의견이 별로 필요 없을, 이번에 새로 나왔다는 아이패드를 구매하고는 투표로 뽑은 물품들을 살폈다. 옷 차려입을 일이 별로 없었던 터라 최근 행사를 다닐 때 입을 정장이 없다던 인터뷰를 보고 정한 유명 브랜드의 쓰리피스 정장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이 브랜드를 고르고 디테일은 이와이즈미가 껴서 정했다. 사실 그 역시 오이카와의 취향을 고려했다기 보다, 저가 보기에 어울릴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과 과거를 더듬어 의견을 내민 것이다. 그래도 옷 사이즈만은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다. 그는 이 정도의 디테일은 팬사이트에도 없는데, 라고 중얼거리는 꽃님에게 남자라서 대충 알 수 있다는 변명으로 넘겼다.


 이어 언젠가 인터넷으로 돌아다니는, 안경을 쓴 채 대본을 읽는 사진을 보고 투표에 올려 뽑힌 안경, 차, 청바지와 향수, 앨범, 그리고 책 따위를 골랐다. 차는 오이카와는 절대 차 따윌 챙겨 마실 녀석이 아니라는, 묘하게 단정적인 이와이즈미의 의견을 받아 최대한 간단하고 편리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변경했다. 마찬가지로 책 역시 유명한 고전이나 자기계발서 따위를 추천하던 여자들과 달리 스포츠나 판타지 계열의, 남성향 만화를 사는 게 좋겠다는 이와이즈미의 주장을 받았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꽤 오랫동안 공방이 오갔지만, 그 역시 꽤 강경했다. 그도 그럴게 아무리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땅 같다 해도 배우 오이카와는 결국 그가 알던 오이카와 토오루다. 운동을 좋아하고, 1984따위를 읽으며 현대 문명에 경각심을 가지기 보다는 원피스를 보며 낄낄거리길 좋아하던 사내놈인 것이다. 간부들은 결국 이와이즈미의 주장을 일부 납득해 자기계발서를 두어 권 넣었지만, 그는 그것들이 결국 오이카와의 책장 구석에 전시될 운명임을 직감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자잘한 포장재들과 물건들을 사기 위해 주위를 배회했다. 이와이즈미 저도 꽤 피곤했는데 하이힐을 신은 운영자 분은 발이 아프지도 않는지 잘도 돌아다녔다. 예산을 계산해보다 그들은 중간 정도 되는 액세서리 브랜드에도 들어갔다. 남성용 반지나 목걸이 같은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아, 이거 예쁘다.”

 “그냥 차라리 약지에 끼는 걸로 주는 건 어때요? 위장용으로 쓰라고.”

 “음, 아무리 오이카와가 배우라도 그건 좀 그렇고. 아, 저런 디자인은 어때요? 깔끔하고 예쁘잖아요.”


 유리 진열장에 옹기종기 보여 떠드는 사람들 뒤에서 이와이즈미는 그들이 추천하는 흐릿한 윤곽만을 응시했다. 목걸이로 할 건지, 반지로 할 건지, 만약 반지로 한다면 또 어느 손가락에 끼울 걸로 정할 건지 한참 의견이 오갔다. 애초에 오이카와는 반지 자체를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하려고 했지만 가만 생각하자니 그건 그가 배구를 할 때의 이야기 한정인 것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물고 목걸이로 눈길을 돌렸다.


 “이와이즈미 씨는 이거랑 이거 중 어떤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가 보기에는 죄다 비슷한 디자인을 들이밀며 우유님이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침음을 삼키며 고민했다. 오이카와가 만약 손에 낀다면. 둘 다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오른쪽이요.”


 그래도 가능한 깔끔하고 얇은 쪽이 덜 불편하게 느껴지겠지. 그의 대답에 꽃님이 외쳤다. 내 말 맞지? 이런 게 잘 어울릴 거라니까!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이번에는 그들이 팬미팅에서 잡았던 오이카와의 손을 상기하며 몇 호가 그의 검지에 들어갈 지 의논하는 것을 가만 들었다. 그러다 문득 목걸이 하나에 시선이 박힌다. 그가 여태까지 제 의견 내비친 것처럼, 오이카와의 취향인 것도 아니었으며 그에게 어울릴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냥 마음에 닿았다.


 “이 사이즈면 될 것 같은데?”

 “차라리 한 치수 작은 쪽이 나을 것 같지 않아? 그러면 검지에 안 맞아도 다른 손가락에 맞을지도 모르니까.”

 “그럼 그게 낫겠다.”


 사이즈를 정하고 주문을 넣는 것을 보다가 무심코 저를 바라보고 있던 점원에게 손짓했다. 이것도 24K로 저쪽 포장할 때 같이 넣어주세요. 제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동시에 제게 몰렸다.


 “이와이즈미 씨, 뭐 사세요?”

 “저희 예산 잠시 계산해 봐야….”

 “아니, 이건 제 돈으로 살 테니까 그냥 선물 보낼 때 대충 끼워서 보내주세요.”


 네? 여자들의 눈이 휘둥그레 변했다. 이와이즈미 씨, 이번 조공 입금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몇 만 엔은 하는 목걸이를, 그것도 배우 생일이라고 개인이 덥석 구매하는 것이 퍽 신기하게 느껴졌나 보다.


 “그렇게 오이카와 취향으로 보였어요?”

 “오이카와 취향은 아닐 테지만,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이와이즈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지갑을 꺼냈다. 우유님이 점원이 목걸이를 꺼내 포장하는 것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하긴, 어린 그녀가 생각해도 달랑 직선 하나(一)가 있는 목걸이는 지나치게 시시해보였다.


 순식간에 값을 치룬 목걸이를 상자에 곱게 들어가는 것을 보며 팬사이트 운영자가 물었다.


 “여기 안에 문구나 편지 같은 거라도 따로 넣어드릴까요? 원래는 안 되지만, 이와이즈미 씨니까 특별히.”

 “괜찮아요.”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단정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다른 건 필요 없으니까, 그냥 제대로 전달이라도 되도록 원래 목록에 있던 것처럼 보내주세요. 설령 오이카와가 존재를 잊더라도 집 한 구석에 방치될 수 있도록.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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