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오늘은 생일이. 이제 저도 나이를 하나 더 먹게 된다. 그러나 배구부 아침 연습에 예외는 없다. 그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새벽부터 헐레벌떡 나선 탓에 어머니가 황급히 던진, ‘생일 축하한다, 시게루!’라는 말이 등교 전 들은 축하의 전부지만 아침부터 발걸음이 가볍다.


 황급히 부실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담뿍 새어 나오고 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기운차게 인사하며 문을 들어갔다. 이제 3학년이 되는 선배들과 동기들 몇몇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야하바!”


 제 사물함의 문을 열고 짐을 안에 넣는데, 오이카와가 살갑게 웃으며 제 등을 가볍게 툭 친다. 너도 와서 같이 끼자. ? 뭔데요? 눈을 깜박이며 체육복 위에 걸쳤던 교복 자켓을 벗으니, 그의 옆에 있던 하나마키 선배가 낄낄 웃으며 대신 답했다.


 “오늘 마츠카와 녀석 생일이잖아. 깜짝 파티 해 주려고.”

 “…….”


 형용하기 힘든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나도 생일인데, 라는 생각과 오늘 마츠카와 선배도 생일이었나? 하는 뒤늦은 자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아니, . 그러고 보면 선배들이 자신의 생일을 알 리가 없지. 따로 제 생일을 알린 적도 없었고. 보아하니 마츠카와 선배의 생일은 작년에도 챙겨준 것 같고. 그나저나 나도 마츠카와 선배의 선물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저, 죄송한데 선물은 준비 못했는데요. 말하니 이와이즈미는 그게 뭐가 대수냐며 어깨를 두드렸다. 마음만 있으면 되지, . 케이크도 우리가 이미 준비했고. 너희들은 우리랑 같이 동참해서 파티 준비랑 폭죽 터트리는 것만 좀 도와줘. 이왕 축하하는 거 다함께 하는 편이 즐겁잖아. 확실히 축하할 법한 날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끼는 게 좋았다. 야하바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요.”


 그리하여 야하바 시게루는 자신의 생일에 선배의 생일 파티를 돕기로 약속했다.


 파티는 고등학생들이 급하게 준비하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뻔했다. 감독과 코치님께 이미 협력을 요청했고, 두 사람은 흔쾌히 동의했다. 수업이 끝나고 부활동이 시작되기 전, 감독이 먼저 회의실에 마츠카와를 따로 불러 약 삼십분을 잡아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이 잽싸게 체육관을 꾸미고, 불을 끄고 있다가, 마츠카와가 체육관에 들어오는 순간 케이크를 들고 등장하면서 놀라게 만드는 거라고. 확실히 주어진 시간이 삼십 분 남짓이기 때문에 스피드가 관건이었다.


 계획을 짠다고 다소 어수선했던 아침 연습을 끝내고 1학년 아이들과 다함께 교실로 돌아가는 길, 줄곧 무언가를 고민하던 와타리가, “있잖아.” 야하바를 향해 몸을 짧게 틀었다.


 “?”

 “선배들은 아무래도 선물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조금 그렇잖아. . 우리끼리 소소하게 돈을 모아서 매점에서 간식이라도 사 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


 그거 좋은 생각인데? 맞아, 괜찮다! 다른 1학년 아이들도 우루루 몰려와 찬성했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도리어 그 편이 저 역시 약간의 마음이 나아질 것 같았다. 야하바 역시 그럼 점심시간에 다 같이 만나서 선물을 고르자고 말했다. 웃음과 알겠다는 긍정이 자신의 주변으로 와르르 터졌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교실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교실은 나은 축이었다. 친한 동급생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주었다. 어이, 야하바. 생일이라며? 생일빵이랍시고 등을 팡 때리는 사내 녀석들의 장난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선물로 주는 가벼운 사탕 하나가 보석 같았다. 소년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전부 받아주었다. 역시 생일은 이런 기분이지.


 그러나 비로소 제 생일을 만끽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야하바는 멀리 떠밀리고 만다. 점심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 동료들은 전부 마츠카와 선배가 좋아하는 과자만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자신 저 역시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처럼 보였다. 마치 축하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잖은가. 그런 말을 하려면 아침에 진작 꺼냈어야 했다. , 그래도 반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축하를 받았으니까. 그는 더 열성적으로 선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자 안에 과자를 우겨넣고, 예쁘게 포장도 했다. 사내 녀석들의 손재주가 다 엇비슷하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무늬가 있는 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더 좋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매점에서, 그리고 교실로 데려가 숨기는 과정에서 선배들의 눈에 띄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는 저를 향해 동급생들이, “뭐야, 야하바. 생일 선물 받은 거야?”라고 물은 것이 착잡하긴 했지만, 이 역시 어떻게든 웃으며 넘겼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부활동 시간이 왔다. 삼월의 첫날이고, 자신의 생일인데도 그다지 의욕이 나질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일 년을 함께한 자신의 반만큼이나 배구부를 좋아했기에 더 서운한 것 같다. 사실 선배들은 그렇다 쳐도, 와타리나 다른 애들도 제 생일은 까맣게 잊고 마츠카와 선배의 생일을 챙일 줄은 몰랐다. 물론 마츠카와 선배에게 죄는 없지만.


 아, 나도 모르겠다.


 과자 상자를 들고 도착한 체육관은 매우 바빴다. 누가 구했는지, ‘Happy Birthday’라는 단어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을 2층 난간에 매달았고, 마찬가지로 난간마다 풍선을 불어 장식해두었다. 야하바도 서둘러 일손을 도왔다. 넘치는 풍선들은 그냥 바닥에 던져두고, 하나마키가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사 온 생크림 케이크를 두 개나 꺼냈다. 하나는 작았고, 다른 하나는 배구부들이 한 입 씩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작은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것을 도우며 물었다.


 “왜 두 개나 사셨어요?”

 “하나는 마츠카와 얼굴에 던지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먹으려고.”

 “과연.”


 혜안에 절로 감탄이 일었다. 곧 마츠카와 선배가 당할 꼴을 생각하면, 누구도 제 생일을 모르고 지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개를 주억이며 정리를 도왔다. 마침내 1학년 각자의 손에 폭죽이 들리고,


 “맛층 온대!!”


 주장의 외침에 서둘러 체육관의 불이 꺼졌다. 급하게 하나마키 선배가 켠 케이크의 촛불만이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그림자 너머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따위의 뒤늦게 긴장한 아이들의 허둥거리는 움직임도 보였다. 야하바는 저도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에 체육관 문만 빤히 바라보았다. 회의실에서 체육관까지 몇 분 정도 걸리더라? 어림짐작하며 문 닫힌 체육관 밖에서 나는 발소리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던 와중이다.


 끼익, 문소리와 함께 어둠 찬 체육관에 햇빛이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었다. 조명 스위치가 있는 쪽에 있던 이와이즈미 선배가 동시다발적으로 불을 켰고, 순식간에 환해지는 시야에 움찔할 틈도 없이 들고 있던 폭죽을 힘껏 잡아당기며 외쳤다.


 “마츠카와 선배 생일 축,”

 “야하바 생일 축하해!!”


 아니, 외치려고 했다. 제가 말을 잇기도 전 먼저 터진 외침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랬을 터다. 야하바는 따가운 빛도 잊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

 “생일 축하한다, 야하바!”

 “이야, 우리 후배. 생일 축하해!”


 오늘 생일이지? 서프라이즈 파티~! 팡팡, 터지는 폭죽에서 튀어나온 오색 종이들이 자신의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잠시만, 이제 무슨, 오늘 마츠카와 선배의 생일이 아니었던가? 물론 내 생일도 맞는데. 하지만 이건 마츠카와 선배의 파티라고.


 어리벙벙한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 체육관 문 밖에서 들어온 마츠카와 선배는 초가 꽂힌 또 다른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초가 딱 자신의 나이만큼 꽂혀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야하바, 와 마츠카와의.”


 어설픈 생일 축하노래가 체육관 안에 울려 퍼졌다. 야하바는, 그러니까 저는 박수를 치면서도 멍청하게 가까이 다가오는 케이크를 보고만 있었다. 이 사람들, 그러니까, ‘깜짝 파티에서 깜짝놀라게 만들 주체는 마츠카와 선배가 아니라 나였던 거야?


 “, 빨리 초 불어!”

 “마츠카와, 너도.”


 어느새 노래가 끝났는지, 배구부 일원들은 저희 둘만 빤히 보며 재촉했다. 마츠카와 선배와 눈이 마주치자 어설픈 웃음이 튀어나왔다. 와타리도 그렇고 전부 알고 있으면서 아침부터 모른 척 했다는 거지. 소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떠밀며 촛불을 후우, 불었다. 마츠카와 선배 역시 하나마키 선배가 들고 있던 케이크의 불을 껐다. 그래도 선배의 생일이 오늘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닌가보다.


 “놀랐지?”


 마츠카와 선배가 씩 웃으며 물었다. 야하바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꽤 섭섭했다는 건 제 마음속의 영원한 비밀로 붙여두기로 했다.


 “원래 이런 게 깜짝 파티의 묘미지.”

 “혹시 선배는 이 파티, 알고 계셨어요?”

 “내가 수업 끝난 후 빵집에 가서 케이크를 사오는 동안 진짜로 감독님과 면담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진짜 그런 줄 알았다. 면목 없다. 세터 자리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침묵하는 제 머리를 엉클인 그가 축하를 건넸다. “생일 축하한다, 야하바.” 사실 가슴이 뭉클거렸다. 역시 배구부가 최고구나.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다짐할 무렵,


 “, 이건 네 생일 선물.”


 유감스럽게도 마츠카와 선배가 줄곧 들고 있던 케이크가 정면으로 제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


 거리가 코앞이었던 터라, 야하바는 피할 도리 없이 고스란히 정면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안면에 얻어맞고 말았다. 사람들의 폭소가 우렁찼다. 크림과 빵이 제 얼굴에 뭉개지는 감촉이 지나치게 생생하다. , 진짜! 야하바는 급하게 케이크를 떼어내며 서둘러 눈만 닦아냈다.


 “선배!”


 원망스레 곧장 마츠카와를 찾자, 다행스럽게도 저를 대신해 그에게도 공격을 감행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마츠카와의 얼굴을 뭉갤 것이라며 케이크를 무려 두 개나 준비한 하나마키였다.


 “, 마츠카와. 너도 생일이잖아!”


 달려드는 하나마키 선배에게서 위협을 느꼈는지, 서둘러 도망치려는 것을 오이카와 선배와 이와이즈미 선배가 붙잡아 억지로 끌고 들어왔다. 양 팔이 고스란히 붙잡힌 덕분에, 마츠카와 선배는 마치 세례 받는 것 마냥 지긋이 케이크에 얼굴을 박았다. 물론 선배는 당하지만은 않았다. 남은 생크림이라고 어떻게든 묻히려고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함께 먹으려고 따로 사 둔 케이크까지 들고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저는 오늘은 특별히 마츠카와의 편이 되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함께 과자를 고르는 중에도 모른 척 잡아뗐던 얄미운 1학년 동료들을 노리고 투척한 것이다. “너무하네!” 비명들이 외쳤지만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솔직히 나도 너희들이 너무하다고 생각했거든. 체육관 바닥이 생크림 밭이 되고, 유다 선배가 그것을 미끄러져 넘어지고, 이윽고 들어온 감독과 코치가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외칠 때까지 장난은 계속되었다.


 십 분 동안 잔소리를 듣고, 삼십 분 동안 뒷정리를 하고, 다시 이십 분을 기합 받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뒤늦게 코트에 들어서는 발걸음은 날아갈 것 같고, 와타리가 선물로 건네준 서포터는 제 무릎에 착 들어맞았다. 잠에 들 때까지 이 들뜬 기분 영영 떠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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