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마츠카와는 아침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느긋하게 등교하려고 했건만, 평소의 습관 탓일까. 일반 등교 시간보다 십 분 정도 더 이르게 도착해버렸다. 느린 걸음으로 교정을 거닐었다. 그가 다니는 후문에서 교사까지 가려면 어차피 매일 들르는 체육관을 거쳐야 했는데, 요상스럽게도 그곳을 지나는 제 귀에 팡팡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오늘은 월요일인데. 3년간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 한 아오바죠사이 남자 배구부의 휴일은 매주 월요일이었다. 도대체 뭔가, 싶어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니 오이카와가 있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손부채질을 하다 말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쟤는 왜 오늘 같은 날에 아침부터 연습이야.


 입고 있는 교복이 온통 땀에 젖은 모양이 이곳에 잠깐 있던 꼴은 결코 아니었다. , 어처구니가 없어 마츠카와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와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이내 강력한 서브가 뒤따랐다. 공을 던지고, 서브가 날아간 장소를 확인하다가, 제가 의도한 곳과 다소 빗겨나간 것에 오이카와는 !” 아깝다는 듯이 소리치며 볼카트에서 다시 공을 꺼내려고 했다. 비로소 코트 안쪽으로부터 돌아간 그림자를 잡아챈다. 인기척을 느낀 소년이 체육관 입구로 고개를 돌린다. 이제야 저를 바라보는 눈이 흡족하다. 마츠카와는 입매를 휘며 줄곧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들어 흔들어보았다.


 “좋은 아침.”

 “맛층이 왜 여기에 있어?”

 “눈이 일찍 떠져서.”


 어차피 녀석도 슬슬 교실로 갈 준비를 해야 할 마당에 굳이 체육관 안으로 발을 디딜 필요는 없어 보여 운동화를 신은 채 입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오이카와가 마츠카와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는 너는 왜 체육관이야? 오늘 쉬는 날이잖아.”

 “그냥. 요즘 준비하고 있는 서브가 좀 마뜩찮아서.”

 “이와이즈미가 너 오버워크라고 잡아간다.”

 “.”


 이와쨩에겐 비밀이야. 오이카와가 슬쩍 검지를 올려 제 입술에 붙였다. 흐음, 글쎄. 단언하는 대신 괜히 말끝을 흐리던 마츠카와가 제 시계를 확인한다.


 “언제부터 연습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됐어. 7?”

 “오래 했네.”


 십 분만 지나면 여덟시 반이야. 슬슬 교실로 가자. 여상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오이카와가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연습만 시작했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녀석이니 저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모를 만하다. 그래, 벌써.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야 더위를 깨달은 그가 땀에 달라붙은 교복 셔츠를 팔랑였다. 흰색의 하복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근육의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가 슬쩍 감추길 반복한다. 마츠카와는 힐끔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신발을 벗고 체육관 위에 올라섰다.


 “공 줍는 거 도와줄게.”

 “, 맛층이 어쩐 일로?”

 “싫으면 갈까?”

 “아니!”


 열심히 오이카와가 던져둔 공을 정리하고 나란히 교실로 향했다. 옷이 젖었는데 괜찮겠냐 물었더니 찝찝하긴 하지만 벗는 것 보단 낫지 않느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 엉큼한 생각이라도 들어? 넌지시 놀리는 어조로 묻기에 비웃음만 지었더란다. 내가 아침부터 그런 생각 할 놈으로 보이냐. 라는 대답을 하며 그를 억지로 교실 안으로 밀어넣고는 저 역시 교실 안으로 돌아온다.


 뭐, 사실 조금 했다.


 근데 그게 어때서. 마츠카와는 제 상상에 당당했다. 못 할 놈으로 할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한 것도 본 애인을 상대로 했는데 뭐 어때서. 교실에 앉아 학급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방을 정리했다. 그래도 집 밖을 나와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다름 아닌 오이카와 토오루라니, 오늘은 그럭저럭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마츠카와에게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교사가 제 번호를 지목하며 문제를 풀라던가, 지문을 읽으라는 사건도 없었고 심지어 고문 시간에 잠깐 졸았을 적에는 걸리지도 않았다. 평온한 하루였다.


 식당에서 하나마키와 마주쳤고, 녀석이 수학 교과서를 빌려 달라기에 흔쾌히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데? 5교시. 혹시 나 네 책에 필기해도 되냐? 그럼 나야 고맙지. 나란히 제 교실을 향해 올라가며 대화를 나눈다. 제 책에 필기하면 도움이 되는 건 저니까. 2층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근데 날씨 진짜 덥다. 소리를 뱉으며 창문 밖을 힐끔 내다보던 하나마키가


 “.”


 하고 돌연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츠카와가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가며 묻는다. .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오이카와가 보여서.”


 오늘도 변함없이 인기 만발이네, 우리 주장님은. 짓궂게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것이 당연한 동의를 구하고 있다. 마츠카와는 잠깐 제 친구가 보았던 끝을 보았다. 그가 말했듯이, 오이카와였다. 그러나 문제라면 오이카와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곧잘 그러했듯 그는 다른 계집애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미소를 흘리며 대하는 모습이 몹시도 능숙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왁자지껄한 소음이 둥둥 떠다닌다. , 마츠카와는 애써 생각했다. 그럴 수 있었다. 교내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상당히 인기 있는 녀석이고, 가끔 밖에 나가면 여자 아이들이 그에게 번호를 묻기 일쑤고. 교내에서 계집애들과 이야기하는 것 정도는 3년간 줄곧 봐와서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몸까지 굽혀가며 키 작은 후배와 눈높이를 맞춰주는 꼴에 얼마나 속이 뒤틀리는지.


 허. 너무 기가 찬 나머지 콧방귀가 나온다. 하나마키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

 “저런 게 뭐가 좋다고 모여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마츠카와가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고등학생을 넘어선 외모는 단지 아주 약간 표정을 찡그리는 것만으로도 금세 무서운 낯을 자아냈다. 질투하냐? 실실 웃으며 어깨를 툭, 건드리면 상대방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 그래. 심지어 수긍하는 꼴이 썩 신경질적이다.


 “.”

 “?”


 그는 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하나마키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뭔데? 내 자물쇠 키. 29번 사물함에 있으니까 알아서 꺼내가.


 “? 너는?”

 “잠깐 아래에.”

 “하아?”


 그러고는 계단 가운데에서 제 친구를 홀로 두고 저벅저벅 아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너 진짜 나 버리고 가냐?! 비명 같은 울림이 뒤에서 들려도 대답은커녕 걸음만 빨라진다. 긴 다리가 계단 두 개를 한꺼번에 밟는다. 괜히 짜증이 나 속이 갑갑해진다. 마츠카와는 하복의 가장 위 단추 하나를 풀었다.


 순식간에 1층에 도달한 그는 오이카와가 보였던 곳으로 향했다. 본관 건물을 빠져나가 팬지꽃 피어난 뜰. 사뭇 사나운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다행스럽게도 그는 여전히 가운데에 있다. 화사한 여자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희희낙락하게 웃는 얼굴로. 마츠카와는 제 머리를 쓸어 올린다.


 “오이카와.”


 낭랑한 목소리 사이로 썩 사나운 음성이 가로지른다. 순간 대화가 훌쩍 멎고, 오이카와 역시 다정한 낯을 바꾸었다. 맛층? 의아한 눈빛이 두어 번 깜박이며 붉은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 오이카와는 저 맥락 없이 좁은 미간의 의미를 찰나에 깨달았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다듬으며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할 말이 있어서.”

 “. 꼭 지금 해야 해?”

 “중요한 이야기라서.”


 오이카와는 으음, 괜히 고민하는 척 했다. 일부러 말을 끌려는 의도가 훤히 보여 마츠카와가 흉흉한 빛으로 눈짓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결국 그는 제 남자친구를 따라주기로 했다. 그도 알고 저도 아는 뻔한 거짓말에 맞장구치며 오이카와는 서운한 얼굴로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미안. 아마 부활동 관련 이야기일 거야.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다음에 이야기 하자.”


 아. 아이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풀죽은 얼굴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 다음에 더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 그래. 오이카와는 마냥 순진한 1학년 아이들을 향해 방긋 웃어주고는 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원을 와해했다. 그들을 가르고 마츠카와에게 다가온다.


 “갈까, 맛층?”


 눈을 휘는 것이 요사스러웠다. 화를 내고 싶어도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그런 낯이다. 제 꼴 잘난 줄은 알아선. 마츠카와는 그래도 타인에 비해 그에게 덜 휘둘리는 편이었으나, 빌어먹게도 애정은 위대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아스팔드 위로 깔리는 건조한 마찰음. 오이카와는 나란히 그의 발걸음에 맞춘다. 맛층,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넌지시 말을 건네는 상대가 한숨처럼 말한다. 그래. 뭔데?


 “매점 가자.”

 “하아?”

 “아이스크림 사줄게.”


 뜬금없는 말에 오이카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푸하하. 폭소를 터트렸다. 고작 아이스크림 먹자고 말하려 부른 거야? 오늘 날씨가 더워서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졌어. 맛층은 친구 없어? 매정에 가자고 이야기 중인 오이카와 씨를 이렇게 끌고 나온 거야? 그 놀림조에 소년은 도리어 몹시 곤란한 비밀을 터놓듯이 고백하는 것이다.


 “그야 네가 골라주는 걸로 먹을 거니까.”

 “애네.”


 뭐, 답변이 귀여우니까 봐줄게. 웃기지마, 봐주는 쪽은 나겠지.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원곡을 알 수 없는 콧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마츠카와는 그 노래도, 방금 전의 제 행동도 전부 우스워 가볍게 웃고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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