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 2017년 발행했던 회지 <Aparecium>의 외전입니다. 본문의 스포일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https://tnadlwkarlek.postype.com/post/1430461)




이와이즈미는 손에 쥐고 있던 예언자 일보를 꽉 쥐었다. 무너진 마법부 로비의 사진이 아주 쉽게 우그러진다. 사진 속에는 너덜한 상태의 해리 포터를 비롯해 뒤로는 덤블도어를 비롯한 불사조 기사단원들, 어린 학생들 몇이 모여 있었다. 남자는 어린 학생들의 정체는 알지 못해도 불사조 기사단원들은 모두 알았다. 사실 중심에 선 해리 포터와도 연이 있다. 꽤 친한, 그리고 제가 누명을 벗겨준 이후 더욱 친해진 후배 녀석인 시리우스 블랙이 소중한 대자랍시고 몇 번 데려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사진의 주인공인 살아남은 자해리 포터도 아니었으며, 위대한 대마법사 알버스 덤블도어도 아니었다. 그는 뒤에 선 몇 명의 오러들 중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서릿발 같은 시선이 저 너머를 응시하고 있고, 이 몹시 잘생긴 사내가 응시하는 사진 옆에는 기사의 헤드라인이 굵고 반짝반짝하게 빛난다.


어둠의 마왕이 돌아왔다.’


단언컨대 이와이즈미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들은 적이 없었다. 아무리 그가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는다 해도 이는 지나치지 않은가. 기사에서 덤블도어의 말에 의하면 어둠의 마왕, 볼드모트는 이미 작년에 돌아왔다고 한다. 호그와트에서 트리위저드의 마지막 시합이 열렸던 밤, 해리 포터의 피를 발판 삼아 눈을 떴더라고. . 그제야 저는 오래 전 왼쪽 팔목에 새겼던 문신이 되살아난 이유를 깨달았다. 돌아왔다. 한 때 자신이 피상적으로 주인을 모신 자가, 오이카와의 어둠이 돌아왔다. 과거의 악몽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사람만은 지키겠노라는 신념을 이행한 증거가.


그래서 모두가 제게 사실을 숨겨온 것이었다.


알버스 덤블도어는 문신이 되돌아왔다며 불길해하는 제게 볼드모트는 몰락했되 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고 설명해주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설명을 납득할 수 없었지만, 노인은 무시해도 좋다고 했다. 아즈카반에서 벨라스릭스 따위를 비롯해 어둠의 마왕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들이 탈출했던 것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그들이 문신을 되살려 어둠의 마왕을 부활시키려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게 죄다 거짓이었다니. 짓이겨진 신문을 바닥에 던지며 이와이즈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는 덤블도어를 잘 알았다. 만일 그 노인네라면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가 돌아온다는 걸 알자마자 제게 이번에는 불사조 기사단으로 정당하게 협력해달라고 요청해야 정상이었다. 그는 선이면서도 교활하기 짝이 없어서, 사용할 수 있는 패는 죄다 사용하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사실을 숨겼다는 건 한 가지 이유 밖에 없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바라지 않았다.


물론 그를 이해할 수는 있다. 행여 소중한 사람을 또 잃을까 두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지켜낸 영원의 반쪽인가. 우리는 서로가 모여야만 비로소 일이 될 수 있었다. 오래 전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명목 아래 이루어졌던 싸움은 지나치게 고통스러웠던 과정이었던 터라 두 번은 겪기 싫었을 터다. 배신당했다는 생각은 한 번으로 족하다. 내가 너를 죽이겠다는 증오도 한 번으로 족하다. 희생이라는 자기만족을 위한 미덕도 한 번으로 족하다. 그래, 죄다 한 번으로 족했다. 오이카와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정작 누구에게도 지킴 받지 않고 뛰어드는 것 역시 한 번으로 족했다.


구겨진 신문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는 당장 몸을 일으켜 지팡이를 쥐고, 옷걸이에 걸려있던 망토를 둘렀다. 남자는 늘 무언가를 결심한 직후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오직 하나만을 떠올리며 그는 정신을 집중했다. 오이카와가 있을 곳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마법부가 반파되었고 적의 귀환이 공언되었다면 오러이자 불사조 기사단인 자가 있을 곳은 하나뿐이다. 이와이즈미가 선 공간이 일그러진다. 그는 눈을 단초 깜박인다.


오이카와!”


순식간에 그는 그리몰드 광장 12번지에 도착했다. 언제 와도 음침하기 짝이 없는 집구석이다. 언젠가 후배 녀석을 만나기 위해 두어 번 방문한 경험은 있지만, 정작 집주인인 그가 이 집을 끔찍하게 여겨 대부분의 만남은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블랙 가문의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외친 소리에 식당에서 울리던 자잘한 말소리가 뚝 끊긴다. 저쪽이군. 그는 망설임 없이 성큼성큼 다리를 움직인다.


이와쨩? 잠깐, 이와쨩이 어떻게.”


회의를 하고 있었는지, 식당 안에는 낯익은 면면이 가득하다. 호그와트에 있어야 하는 몇 인물들은 없지만, 이와이즈미가 기억하는 불사조 기사단 단원들은 전부 있었다. 집주인인 시리우스 블랙도, 기사단을 이끄는 덤블도어도 있고, 역시 오이카와 토오루도 있다.


늦었네, 하지메 선배.”


머리에 붕대를 둘둘 둘러맨 시리우스 블랙이 씩 웃었다. 마법부에서의 전투에서 상당히 다친 모양이었다. .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오이카와를 보았다. 다친 곳은 없는지 상처나 붕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핏기 가셔 창백한 낯이다. 제가 저지른 잘못은 아는 건지, 시선 역시 저를 피하고 있다. 쉬이 상황을 이해한 덤블도어가 대신 웃었다.


예언자 일보를 보았구나.”

. 불사조 기사단원들이랑 자주 교류를 했던 것 치고는 유감스럽게도 소식이 늦었네요.”


목소리는 덤덤했으나 내용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말투가 토오루를 닮아가는구나, 하지메. 그러나 경험 많은 노인은 능숙하게 이와이즈미의 빈정거림을 넘겼다.


그래, 마침 잘 되었군. 이참에 하지메, 자네도 함께 일을 돕지 않겠나?”

교수님!”


외침은 식당 쪽에서 터졌다. 오이카와였다. 이와이즈미는 거리낌 없이 인상을 구겼다.


졸업한지 곧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데도 날 그리 불러주다니, 영광이구나.”

저와 약속했잖아요, 덤블도어.”

하지만 하지메도 알게 되었잖니.”

이와쨩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요.”


두 사람 사이에 매서운 공방이 오갔다. 다른 자들은 날카로운 공방에 말 붙이지 못하고 상황을 관조할 따름이었다. 아니, 오이카와를 비롯해 이와이즈미와도 친분이 깊은 일부 사람들은 도리어 흥미로운 기색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


이와이즈미는 홀로 팔짱을 끼고 오이카와를 향해 턱짓했다. 기실 연인이나 소꿉친구를 부르는 태도라기에는 상당히 불량스러웠다. 오이카와는 그 짧은 단어에 침묵 마법에 걸린 마냥 입을 꾹 다물었다.


누가 보면 내가 볼드모트에게 돌아간다는 줄 알겠다?”


. 순간 짧은 신음이 어딘가에서 샜다. 식당 밖에서 난 소리였다. 이 저택에 있던 어린 녀석들이 몰래 훔쳐듣고 있기라도 한가보다. 범인을 짐작하는지, 몰리 위즐리가 화가 난 기색으로 식당 밖을 나가기에 이와이즈미는 신경을 끄고 덧붙였다.


뭐가 무서운지는 대충 알겠어.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무서워하는데?”


자신의 배신은 명백하다. 이미 십년 전 제 행위는 덤블도어의 입을 통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고 오랜 시간 뒤 의심을 푼 불사조 기사단들은 저더러 희대의 로맨티스트라 비웃곤 했다. , 몰락했던 데스이터들은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더 이상 서로에게 지팡이를 겨누게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 자명하다.


내가 죽을까봐 무섭다면 너도 나서면 안됐었지. 내가 공주님이냐? 성 안에서 얌전히 지켜지고 있게?”


이와쨩 얼굴이 어딜 봐서 공주야? 제 본심은 이미 질문을 하고 있는 당사자가 훤히 꿰뚫고 있고, 반박할 말은 없어 오이카와는 애꿎은 말만 잡고 늘어졌다. . 리무스 루핀과 시리우스 블랙이 짧게 웃었다.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소년처럼 입술을 삐죽였다.


네가 허튼 짓 할까봐 그렇잖아.

내가 뭘.”

이와쨩은 항상 자기보다 날 더 우선순위로 두는 겁쟁이니까.”

하아? 누가 할 말인데.”

하지만 이와쨩은 정말 쓸모없는 곳에서 그리핀도르 같은걸.”


오이카와 씨는 그런 기사도 정신, 전혀 바라지 않아. 뻔뻔하게 말하던 목소리가 칭얼거림처럼 변해간다.


솔직히 너 또 그럴 거잖아.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이와쨩은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선택할 거잖아.”

…….”

물론 나도 이와쨩이 가장 소중하고, 이와쨩을 잃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나는 날 포기하면서까지 너를 홀로 두고 싶지도 않아. 그런데 넌 아니잖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제 목을 조르는 듯했다. 진실이었다. 그야, 네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으니까. 맹목적으로 바란 건 줄곧 오이카와의 행복이고 그의 삶이었지 제가 아니었다.


하지메. 나는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싸우는 거야.”


나 역시 무엇보다 너를 사랑하는데, 자신의 사랑은 오이카와와는 전혀 달랐다. 혀 위로 모래가 까끌거리듯 하다. 물기 없이 버석 말라버린 사막이다. 덤블도어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그렇지만 만약 네가 나와 같다면. 그러니까,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나만 지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그럼 좋아. 께 싸우자.”

…….”


저를 바라보는 눈길이 뜨거운 데에도 이와이즈미는 전혀 대답할 수 없었다. 빛 담아 눈부신 시선을 보며 그를 버릴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건 거짓니까. 인정한다. 오이카와를 되찾고, 오랜 시간 평화롭게 있었지만 이와이즈미의 사랑은 여전히 비겁했다. 세상이 한 번 꺼졌다가 다시 피어나도 그는 언제든지 오이카와를 위해 자신을 버릴 수 있었고, 기꺼이 그럴 것이었다. 너는 많이 실망하겠지. 어쩌면 그리핀도르 답지 않다고 질색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팔짱을 풀고 어깨에 힘을 늘어뜨렸다. 한참 후에야 겨우내 말문을 열었.


덤블도어.”


나지막이 부르는 이름은 제 연인이 아닌 다른 자의 것이다. “그래.” 현명한 마법사는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음에도 동요 없이 대답했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내리깔았다.


위대하다는 건 저 녀석을 보고 말하는 겁니다.”


나는 그렇지 못해요.


썩 쓸쓸한 음색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 식당을 빠져나갔다. 결국 그는 세상 모든 대의(大義) 중 오이카와만을 위하지 않겠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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