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그럼 간단하게 이번에 맡은 역할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식당의 왁자지껄한 소음에서부터 테이블 몇 개 떨어진 텔레비전에서부터 소리가 새어나온다. 다음 주부터 새로 방영할 드라마의 홍보 인터뷰였다. 리포터가 상당히 잘생긴 남자에게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그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빙글거리는 웃음을 짓는다.


 “저희 감독님의 저를 너어무 예뻐해 주셔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영광스럽게도 우리 예쁜 윳쨩, 그러니까 유카리쨩을 아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소꿉친구 역할을 맡게 되었답니다!”

 “어머, 윳쨩은 애칭인가요?”

 “네. 유카리는 윳쨩, 그리고 제가 맡고 있는 이노우에는 이놋치라고 부르고 있어요. 제가 애칭으로 부르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 저 드라마, 시청률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 나오던데.”


 옆 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했다. 입사 동기라서 친구처럼 지내오고 있는 이였다. 그래? 딱히 관심이 없어서. 이와이즈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찬가지로 근처에 앉아있던 동기가 휴대용 거울로 입가를 확인하며 대화를 잇는다.


 “이와이즈미 군이 드라마에 관심 있을 리가 없지. 난 저 드라마, 꼭 본방사수 할 거야. 무려 오이카와 토오루가 주조연이라고!”

 “신인인데 너무 기대하는 거 아냐?”

 “연기 꽤 괜찮던데? 무엇보다 잘생겼으니까 괜찮아.”


 대화는 제대로 고막에 닿지 못했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깜박인다. 저 멀리 화소로 이루어진 남자가 말갛게 웃고 있다. 지나치게 익숙한 사람이라, 도리어 화면 안에 갇힌 모습이 낯설다. 기억이 떠오른다.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먼 옛날이었다. 구기대회에서 이와이즈미의 활약으로 그의 반이 우승한 날이기도 했다. 우승 기념으로 반 아이들이 모두 온갖 종류의 매점 과자들이 든 컴퓨터 본체만한 크기의 과자 상자를 받았었다.


 ‘이와쨩은 배구 말고, 야구해도 충분히 장래가 유망할 것 같다. 코시엔에 설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프로가 되었을지도.’


 마땅히 이와이즈미 몫의 부상은 배구부 전체의 것이 되었다. 하나마키와 오이카와가 득달같이 달려와 강제로 개봉한 상자를 함께 나눠먹으며 오이카와가 가볍게 말했다. 확실히, 이와이즈미 선배가 쿄타니의 공을 장타로 날려버리는 모습은 대단했죠. 옆에서 와타리가 고개를 주억이며 봉지를 뒤적였고, 우스갯소리와 함께 오이카와는 넌지시 물었다.


 ‘그럼 있잖아. 만약 오이카와 씨가 배구 말고 다른 것을 한다면, 뭐가 좋을 것 같아?’


 배구 말고? 말고. 이와이즈미를 포함해 후배들이 각자 생각에 빠진 가운데, 오이카와의 바로 옆에 있던 마츠카와는 포키를 먹으며 심드렁하니 말했다.


 ‘넌 얼굴로 먹고 살 것 같은데.’

 ‘호스트라던가.’


 하나마키가 덧붙였다. 에엑. 기대 이하의 발언에 오이카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오이카와 씨 미모가 부러워서 질투하는 거야? 괜히 징징거리는 것에 마츠카와는 또 질색하는 얼굴을 했다. 넌 배구 말고 잘 하는 거 없잖아. 뭐야, 질투가 아니라 무시였어?! 그 과장스러운 반응에 신이 난 후배들이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호스트, 어울릴 것 같긴 해요. 확실히 오이카와 선배, 인정하기는 싫지만 여자들에게 인기는 많으니까…. 하나마키도 질세라 맞장구친다. 그렇지. 당당하게 돈 뜯어먹고 살 놈이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오이카와는 울상이 된다. 기실 그 대화가 오이카와를 놀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유일한 희망인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까지 제 턱만 매만지며 침묵하고 있는 소꿉친구를. 이와쨩, 이와쨩은 어떻게 생각해?


 ‘어, 그럴 것 같네.’

 ‘뭐? 이와쨩은 소꿉친구가 제비가 되는 게 좋은 거야?!’


 이와쨩도 내가 뒷세계 큰 손의 정부를 꼬셔서 이것저것 얻어먹다가 그 큰 손에게 걸려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 같아?! 그 잠깐 사이 이 녀석들은 무슨 소설을 지어내고 있었던 거야. 이와이즈미는 억울하게 외치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게 아니라. 넌 얼굴값 할 것 같다고. 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연예인이라던가, 아이돌이라던가.’


 지금 얼굴 보는 것도 징글징글한데, 정말 텔레비전에서까지 네 놈 얼굴 보게 된다면 답이 없겠지만.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우마이봉을 뜯었다. 오이카와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활짝 웃었더란다. 만약 오이카와 씨가 연예인 하게 되면, 이와쨩은 평생 내 얼굴만 보게 되겠네?


 이와이즈미는 본능적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어느 동네 고문이냐. 텔레비전 끊을 거야. 너무해! 아, 그런데 솔직히 이와이즈미는 좀 징그럽긴 하겠다. 맛층까지?! 생각해봐. 너네 둘이서 실컷 놀다가 다음에 보자. 안녕, 하고 헤어졌는데 집에서 또 오이카와가 보이는 거야. 그거 완전 고문이지. 이제 좀 벗어나나 싶었는데 또 네 놈에게 시달릴 테니까. 저기, 지금 주장 씨 취급 너무하지 않나요?


 아, 어떻게 네가 있던 풍경은 이토록 세밀하게 남아있는지….


 “벌써부터 오이카와 씨 연기가 대단하다는 소문이 있던 걸요?”

 “와, 누가 퍼트렸대요? 방영 시작하면 난 이제 큰일 났다.”


 이와이즈미는 하염없이 화면을 응시했다. 오래 전, 급작스레 소식 끊긴 남자의 얼굴이다. 왜 소식이 끊겼는지는 모른다. 다만 네가 배구를 그만두었다는 소문만이 도쿄서부터 미야기까지 퍼져왔다. 이와이즈미는 대학교 3학년 이후 오이카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아니다. 없었다.


 일방적인 재회는 불과 한 달 전의 일이다. 퇴근 후 소파에 너부러져 아무렇게나 리모컨을 돌리는데, 오이카와가 보였다. 그는 거짓말을 속삭이고 있었다. 잊을 리 없는 목소리가 전파 너머로 진동했다. 실제로 듣던 것과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했었다. 머리카락은 흑색이었지만 눈동자 빛은 여전했다. 예전보다 말라 도드라진 턱선. 근육은 일부가 죽었다. 낡은 편자가 흑백의 사막에 자국을 남긴다. 이와이즈미는 멍하니 자신이 모르는 오이카와를 응시했다. 몇 년이었다. 화면 너머의 남자는 꽤 자연스럽게 전혀 모르는 역할을 흉내 내고 있었지만, 이와이즈미는 남자의 본질을 지나치게 꿰뚫고 있던 터라 본의 아니게 그 균열이 생생히 느껴졌다. 그랬다. 그는 오이카와를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니었다. 정정한다. 아니다. 그 단편 하나에 잠시 숨 죽였던 감정이 풍선처럼 떠올랐으니.


 그는 직감했다. 자신은 평생 오이카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한 번 그를 발견하자 이후로는 매일이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석자였다. 한참 주목을 받고 있는 신인은 텔레비전이며 사람들의 입이며 잡지며 모든 매체에 도사리고 있었다. 귀를 막으면 네가 보였다.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던 오이카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슬슬 일어서죠.”

 “아, 일하기 싫다. 야마모토 대리님 오늘 기분 안 좋아서 너무 눈치 보여. 옆자리에 있는데, 으.”


 동기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와이즈미도 그들을 따라 정장 마이를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저 먼 세계에 있는 오이카와는 웃고 있다. 사실은 엄청 피곤한 주제에 잘도 웃는다. 평소보다 올라간 입매의 의미를 당연하게 읽어낸다. 한 동기가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이와이즈미, 왜 TV에서 시선을 못 떼냐. 너, 뭐 오이카와의 팬 그런 거야?”


 짜증나게 생겼는데, 무슨.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기며 계산대로 향했다. 사실은 이노우에에게 정이 많이 가요. 조금 저랑 닮았거든요. 뒤로는 너의 목소리. 그래도 오늘도 이렇게 살아 있구나. 이와이즈미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흰 당나귀가 푹푹 나리는 눈을 밟는다. 다행이었다. 눈을 가려도 네가 들린다.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던 오이카와에 대해 알 수 있다.


 우리의 이별은 아직 먼 일이다. 비록 일방향일지라도 이와이즈미는 그 사실에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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