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간만에 닿은 섬은 돛을 내린 만에서부터 활기가 밀려왔다. 정박할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먼저 내렸던 선원이 들뜬 얼굴로 하선하기 시작하는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이봐! 오늘 밤에 이 섬에서 축제가 열린대!”
뭐? 와, 운 좋은데! 축제라 함은 종류가 무엇이든지 즐겁기 마련이다. 특히 자극을 쫓아 살아가는 해적들에겐 더 했다. 어떤 축제인지도 모르면서 들뜬 얼굴을 한 해적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내리는 사람을 동시에 응시했다.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채 주황색 짧은 셔츠를 입고 패션센스 따윈 전혀 없는 모자를 쓰며 계단을 털레털레 내려오고 있던 사내가, “응?” 의아한 얼굴로 선원들을 응시했다.
“에이스 선장! 오늘 여기서 축제가 열린다는데!!”
“축제래요! 술이랑 음식이 잔뜩 있대요!”
오오, 축제? 희소식이었다. 스페이드 해적단 선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고로 축제라면 술과 음식이지! 음악도 빼놓지 못한다! 물자 보충을 위해 항해 중 우연히 보인 섬에 정착한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는 씩 웃으며 유일하게 어두운 낯의 항해사를 향해 말했다.
“좋아! 피터, 이 섬에 기록지침이 뺏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봐! 만약 하루 이상이라면 오늘 밤은 축제다!”
우와아아! 사내자식들의 톤 낮은 함성이 대단했다. 에이스는 씩 웃으며 계단의 중간 즈음에서 단숨에 뛰어내려 땅 위에 착지한다. 흠, 2주 만에 만나는 대지다. 아, 그리고 지난 섬에서 가져왔던 보물들도 처분하고. 늘 그랬듯이 다른 건 몰라도 억지로 물건을 뺏거나 폭력을 휘두르면 안 돼. 그의 엄한 말에는 유치원생마냥 예에, 동시에 답한다. 선장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뿌듯했다. 좋아, 좋아. 그럼 가자!
에이스는 가장 먼저 항해사인 피터를 비롯한 제 배의 주요 간부들과 환금소를 찾았다. 얼마 전 저희 배를 공격한 해적선과 한바탕 하고 얻어낸 전리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전감각 예민한 한 간부 덕분에 꽤 값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에이스는 배의 총무를 겸하는 그에게서 약간의 용돈을 받아 제 길을 갔다. 가장 먼저 음식이 고팠다.
거리는 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저녁부터인가 보다. 음식 외에는 관심이 없는 에이스는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배부터 한가득 채우며 부족했던 잠도 보충했다. 오랜만에 음식에 제값을 치룬 에이스는 저를 불그스름한 얼굴로 힐끔거리는 웨이트리스에게서 축제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바다에 제를 올리며 여는 축제라고 했다. 매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시기가 되면 섬의 주변 해역에서 대형 소용돌이가 나타나는데, 섬의 주민들은 이것이 바다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노여움을 풀기 위해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낮에는 해안가에서 제를 올리고, 이틀 동안 섬 전역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축제를 연다. 그리고 그 이틀간의 축제로 번 돈들은 상자에 전부 넣어 해신(海神)에게 바친다.
“히익, 번 돈들을 전부 바다에 수장한다는 소리야? 아깝잖아!”
“하지만 그래야 신께서 화를 푸실 테니까요.”
애초에 바다의 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이야기다. 에이스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바다라는 것이 신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항해사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악귀의 자식인 저는 바다에 나오자마자 죽었을 터다.
“그래도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오게 되었어요. 야타이 중심의 축제가 꽤 유명하거든요.”
“야타이?”
“노점상이라고 해야 할까, 간이마차상점 같은 거예요.”
저녁부터 저희 섬의 가장 큰 길의 양 옆으로 온갖 종류의 즉석상점들이 들어서거든요. 제를 올렸던 해안가 무대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을 연주하면서 경품을 건 행사도 주최해요.
그건 상당히 괜찮았다. 게다가 들어보니 해신에게 바치는 돈은 야타이로 번 수익만으로 한정되어 있다던가. 뭔가 복잡했지만 외지인인데다가 축제만 하루 즐기다 갈 저희 해적단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고마워. 씩 웃은 에이스가 식당을 나섰다. 저녁까진 아직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있으니 잠깐 배에 돌아갔다가 올 요랑이었다.
옷깃을 팔랑거리며 해적선에 남아있던 동료들에게도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대부분은 "해신? 푸하하! 그게 뭐에요!" 라고 비웃었다. 그렇다면 이참에 축제가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가, 그들이 바다에 버릴 상자들을 빼돌리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애석하게도 이 섬에서 기록지침이 덧씌워지는 시간이 18시간이기 때문에 훌륭한 생각은 실제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하늘과 바다의 색이 달라지는 때가 왔다. 수평선 위로 화마가 번짐과 동시에 섬에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소리가 파도 모양으로 굽이친다. 축제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는 전부 배에 돌아오자고. 혹시 섬에서 다른 녀석들을 보면 모두 전달해줘! 넵! 해적들의 우렁찬 소리도 선율에 묻힌다.
여름섬의 여름이라 그런지, 어둠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바람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다행스럽게도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에이스는 선원들 모두가 시원한 맥주부터 찾으러 가는 사이 홀로 따끈따끈한 닭꼬치를 열 개 해치웠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있었다.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했고, 귓가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연신 이어졌다. 이틀 동안 번 돈을 바다에 버려야 할 마을 사람들 역시 음식을 팔면서도 활기찬 낯이었다. 꽤 신기했다. 시럽이 잔뜩 부려진 빙수를 구입한 에이스는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정확하게는 무슨 음식이 있는지 알아두기 위해 느긋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섬의 사람들은 각 건물의 꼭대기끼리 줄로 연결해 줄 위에 오색 종이등들을 매달아 땅 위를 낮처럼 환하게 만들었다. 예술에 조악한 그조차 예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야타이라고 하는 상점에서는 음식만이 아닌 금붕어 잡기나 사격으로 인형 맞추기 따위의 놀이도 했고, 가면이나 의류부터 시작해 온갖 잡동사니와 각종 섬으로의 영구지침을 파는 곳도 더러 있었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약 절반은 천으로 몸을 두르고 허리에 띠를 맨 옷을 입었는데, 유카타라고 부르는 이 옷은 신세계의 와노쿠니에서 시작된 의상으로 여름에 입기 적당해 섬의 사람들이 자주 입는다고 하였다. 굳이 더위를 타지 않는 에이스는 욕심이 없었지만, 지나가면서 마주친 제 선원 몇몇은 어느새 유카타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더라. 그걸 보면 저도 한 벌 살까? 생각했지만… 양념을 발라 구운 문어꼬치를 발견한 순간 역시 옷에 돈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결심했다.
어느 정도 적당히 구경을 마쳤다고 생각한 그는 곧장 문어꼬치부터 거덜 내기 시작했다. 저렴한 축에 심지어 맛있었다! 이 가게를 오늘 아주 아작 내버려야지, 다짐하다가도 에이스는 아! 아직 먹을 음식은 많지! 상기하며 바로 옆 부스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계란빵 다섯 개를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도 꾸준히 양 손에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기적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짧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에이스가 막 구입한 볶음우동을 한 입에 넣을 적이었다.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로 문득 어떤 말소리가 들렸다. 화권의 에이스라고? 자신의 이름이었다. 지금 현상금이 2억을 넘어섰댔지. 저렇게 음식에 정신 팔린 놈이 정말 2억짜리야? 해군이 이상하게 현상금을 매긴 게 아니라? 아무렴 어때. 멍청한 놈이면 우리야 좋지. 해적주제에 한가하게 축제를 즐기러 오다니……. 애석하게도 목소리가 잘 들렸다. 우물우물 씹던 것을 삼켰다. 뻔했다. 마찬가지로 놀러온 현상금 사냥꾼이라도 되나보다.
그는 가볍게 주위를 살폈다. 딱히 싸움에 장소를 가리진 않지만, 가게가 많은 이곳에서 싸우기에는 곤란했다. 아직 먹어야 할 음식이 많았다. 다음에는 망고 가게 옆에 있는 사과사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역시 거리에서 벗어나는 편이 좋겠지. 뒤로 기울어진 모자를 꾹 누른 사내가 골목으로 걸음을 틀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현상금 사냥꾼들은 착실히 자신을 따라온다. 저희 나름대로는 기척을 숨긴다고 하지만 전부 느껴진다. 4명. 잡졸이다. 금방 끝나겠네.
어느 정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왔다 싶은 에이스가 휙 몸을 틀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유쾌하다.
“나는 오늘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서 기분이 좋거든? 빨리 끝내줄 테니 얼른 나와.”
가볍게 주먹 쥔 손을 손목의 스냅으로 한 바퀴 돌리니 불꽃이 휘익 터진다. 구석진 골목이 짧게 환해진다. 그러나 슬프게도 저를 잡아가려 한 놈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과 다른 전개에 겁을 먹었나? 자연계라서? 어느 쪽이든 귀찮다. 현상금 사냥꾼인 이상 제 동료들에게도 손을 뻗을 수 있으니 지금 바로 해치우는 편이 최상인데.
“안 오면, 내가 간다?”
하여 성가시지만 에이스는 본인이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도착한다. 건물의 왼쪽 그림자에 한 명. 주먹에 불꽃을 일으켜 급소를 때리자 “으아악!” 비명이 울린다. 앞? 아니, 뒤다. 에이스는 제자리에서 거꾸로 뛰어올라 발에도 불꽃을 일으켰다. 그대로 검을 들고 달려오는 사내의 머리를 명중한다. 쾅! 울리는 소리와 발에 맞는 타격감이 훌륭했다. 오, 좋았어. 흡족했다. 거꾸로 몸을 도는 중에 떨어질 뻔한 모자를 잡아 다시 머리 위에 쓰는 도중이었다. 타앙! 총 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문신 새겨진 제 팔을 관통해 지나갔다.
“응? 서두르지 말라고.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자연계에게는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니까. 저가 화권의 에이스란 걸 알고 있음에도 왜 그건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거지. 크게 도약한 에이스가 건물 2층의 난간을 밟고, 다시 이중으로 뛰어올라 건너편 건물 옥상 난간에 도착했다. 총으로 저를 겨눈 채 달달 떨고 있는 사내가 보인다. 빙고. 그는 가볍게 제 자리에서 화권을 쏘았다. 굳이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고스란히 불길을 맞은 남자를 뒤로하고 옥상 난간에 쭈그려 앉아 등을 보인 채 도망가는 마지막 적을 보았다.
“아. 저기다.”
그는 스페이드 해적단의 선장으로부터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무기까지 버리며 사람들이 많은 축제의 현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인파와 섞이면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무릎을 한 번 굽혔다가, 난간에서 크게 뛰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앗차, 모자. 급히 왼손으로 모자를 잡으며 오른손을 뻗어 도망치는 사내의 등을 겨눈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조준한 채 엄지와 검지로,
“화건.”
빵야. 불이 총알처럼 사내에게로 쏘아져나갔다. 등 정중앙을 맞은 사내가 고꾸라진다. 에이스는 쓰러진 사내의 등을 밟고 섰다. 후큭. 짧게 몸을 들썩인 현상금 사냥꾼은 완전히 정신을 놓은 듯 했다.
“이런 연약한 놈들이 그랜드 라인에서 현상금 사냥꾼 노릇을 한다고?”
생각보다 훨씬 약했잖아. 몸풀기 축에도 못 끼게. 에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자의 등에서 내려왔다. 자, 이게 그럼 다시 사과사탕을 먹으러 가보실까! 직후 상쾌한 낯으로 노점상들이 있는 방향을 항해 고개를 돌린 순간이다.
“어.”
붉고 노란 등 아래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남색의 유카타를 입은 채 양손에 사탕을 든 남자였다. 아, 이런. 들켰나? 민간인 같은데. 그는 곤란한 듯 눈을 찡그리며 낯선 이의 얼굴을 보았고, 아주 잠깐 멈칫했다.
어딘가 낯익은 생김새였다. 아주 오랜 지층에서부터 불쑥 거대한 송곳이 솟아오른다. 제 오랜 형제가 제대로 나이를 먹고 성장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루피처럼 크고 동그란 눈이 특히 닮았다. 물론 사보는 머리도 짧았고, 다소 꼬질꼬질 할지언정 한쪽 얼굴에 커다란 흉터도 없었지만. 아그작. 사내가 딸기사탕을 큼직하게 베어 물었다. 단내가 풍긴다. 제가 이 자를 쓰러트린 걸 보았으니, 해군에 신고할까? 눈 딱 감고 기절만 시켜? 하지만 아주 잠깐 동갑내기 형제를 떠올린 탓인지 공격하기가 꺼려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금발의 목격자를 한참 응시하던 짧은 침묵, 찰나의 끄트머리에서. 남자가 다른 손으로 쥐고 있던 사과 사탕을 제게 건넨다.
“먹을래?”
“역시! 너 좋은 녀석이었구나!”
……바로 여기까지가 칠무해 제의를 걷어찬 해적이 이름 모르는 남자와 낯선 섬에서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된 경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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