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가 내재된 푸른 독 살점을 썩히고


 

1.

오래간만에 닿은 섬은 돛을 내린 만에서부터 활기가 밀려왔다. 정박할만한 장소를 찾기 위해 먼저 내렸던 선원이 들뜬 얼굴로 하선하기 시작하는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


이봐! 오늘 밤에 이 섬에서 축제가 열린대!”


? , 운 좋은데! 축제라 함은 종류가 무엇이든지 즐겁기 마련이다. 특히 자극을 쫓아 살아가는 해적들에겐 더 했다. 어떤 축제인지도 모르면서 들뜬 얼굴을 한 해적들이 가장 마지막으로 내리는 사람을 동시에 응시했다. 가슴팍을 훤히 드러낸 채 주황색 짧은 셔츠를 입고 패션센스 따윈 전혀 없는 모자를 쓰며 계단을 털레털레 내려오고 있던 사내가, “?” 의아한 얼굴로 선원들을 응시했다.


에이스 선장! 오늘 여기서 축제가 열린다는데!!”

축제래요! 술이랑 음식이 잔뜩 있대요!”


오오, 축제? 희소식이었다. 스페이드 해적단 선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자고로 축제라면 술과 음식이지! 음악도 빼놓지 못한다! 물자 보충을 위해 항해 중 우연히 보인 섬에 정착한 것이었다. 운이 좋았다. 그는 씩 웃으며 유일하게 어두운 낯의 항해사를 향해 말했다.


좋아! 피터, 이 섬에 기록지침이 뺏기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봐! 만약 하루 이상이라면 오늘 밤은 축제다!”


우와아아! 사내자식들의 톤 낮은 함성이 대단했다. 에이스는 씩 웃으며 계단의 중간 즈음에서 단숨에 뛰어내려 땅 위에 착지한다. , 2주 만에 만나는 대지다. , 그리고 지난 섬에서 가져왔던 보물들도 처분하고. 늘 그랬듯이 다른 건 몰라도 억지로 물건을 뺏거나 폭력을 휘두르면 안 돼. 그의 엄한 말에는 유치원생마냥 예에, 동시에 답한다. 선장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뿌듯했다. 좋아, 좋아. 그럼 가자!


에이스는 가장 먼저 항해사인 피터를 비롯한 제 배의 주요 간부들과 환금소를 찾았다. 얼마 전 저희 배를 공격한 해적선과 한바탕 하고 얻어낸 전리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금전감각 예민한 한 간부 덕분에 꽤 값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에이스는 배의 총무를 겸하는 그에게서 약간의 용돈을 받아 제 길을 갔다. 가장 먼저 음식이 고팠다.


거리는 축제 준비로 분주했다. 본격적인 시작은 저녁부터인가 보다. 음식 외에는 관심이 없는 에이스는 가까운 레스토랑에서 배부터 한가득 채우며 부족했던 잠도 보충했다. 오랜만에 음식에 제값을 치룬 에이스는 저를 불그스름한 얼굴로 힐끔거리는 웨이트리스에게서 축제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일 년에 한 번, 바다에 제를 올리며 여는 축제라고 했다. 매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시기가 되면 섬의 주변 해역에서 대형 소용돌이가 나타나는데, 섬의 주민들은 이것이 바다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노여움을 풀기 위해 제를 올린다는 것이다. 낮에는 해안가에서 제를 올리고, 이틀 안 섬 전역에서 음악을 연주하며 축제를 연다. 그리고 그 이틀간의 축제로 번 돈들은 상자에 전부 넣어 해신(海神)에게 바친다.


히익, 번 돈들을 전부 바다에 수장한다는 소리야? 아깝잖아!”

하지만 그래야 신께서 화를 푸실 테니까요.”


애초에 바다의 신이 있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이야기다. 에이스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만약 바다라는 것이 신의 의지대로 마음대로 움직인다면 항해사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악귀의 자식인 저는 바다에 나오자마자 죽었을 터다.


그래도 최근에는 관광객들도 많이 오게 되었어요. 야타이 중심의 축제가 꽤 유명하거든요.”

야타이?”

노점상이라고 해야 할까, 간이마차상점 같은 거예요.”


저녁부터 저희 섬의 가장 큰 길의 양 옆으로 온갖 종류의 즉석상점들이 들어서거든요. 제를 올렸던 해안가 무대에서는 하루 종일 음악을 연주하면서 경품을 건 행사도 주최해요.


그건 상당히 괜찮았다. 게다가 들어보니 해신에게 바치는 돈은 야타이로 번 수익만으로 한정되어 있다던가. 뭔가 복잡했지만 외지인인데다가 축제만 하루 즐기다 갈 저희 해적단은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었다. 고마워. 씩 웃은 에이스가 식당을 나섰다. 저녁까진 아직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있으니 잠깐 배에 돌아갔다가 올 요랑이었다.


옷깃을 팔랑거리며 해적선에 남아있던 동료들에게도 들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대부분은 "해신? 푸하하! 그게 뭐에요!" 라고 비웃었다. 그렇다면 이참에 축제가 끝날 때까지 머물렀다가, 그들이 바다에 버릴 상자들을 빼돌리는 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애석하게도 이 섬에서 기록지침이 덧씌워지는 시간이 18시간이기 때문에 훌륭한 생각은 실제로 옮기지 못하겠지만.


하늘과 바다의 색이 달라지는 때가 왔다. 수평선 위로 화마가 번짐과 동시에 섬에서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소리가 파도 모양으로 굽이친다. 축제가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그럼 내일 정오까지는 전부 배에 돌아오자고. 혹시 섬에서 다른 녀석들을 보면 모두 전달해줘! ! 해적들의 우렁찬 소리도 선율에 묻힌다.


여름섬의 여름이라 그런지, 어둠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바람은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다행스럽게도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에이스는 선원들 모두가 시원한 맥주부터 찾으러 가는 사이 홀로 따끈따끈한 닭꼬치를 열 개 해치웠다. 가격도 적당하고 맛있었다.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가 뒤섞여 후각을 자극했고, 귓가에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음악이 연신 이어졌다. 이틀 동안 번 돈을 바다에 버려야 할 마을 사람들 역시 음식을 팔면서도 활기찬 낯이었다. 꽤 신기했다. 시럽이 잔뜩 부려진 빙수를 구입한 에이스는 축제를 구경하기 위해-정확하게는 무슨 음식이 있는지 알아두기 위해 느긋하게 다리를 움직였다.


섬의 사람들은 각 건물의 꼭대기끼리 줄로 연결해 줄 위에 오색 종이등들을 매달아 땅 위를 낮처럼 환하게 만들었다. 예술에 조악한 그조차 예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야타이라고 하는 상점에서는 음식만이 아닌 금붕어 잡기나 사격으로 인형 맞추기 따위의 놀이도 했고, 가면이나 의류부터 시작해 온갖 잡동사니와 각종 섬으로의 영구지침을 파는 곳도 더러 있었다.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약 절반은 천으로 몸을 두르고 허리에 띠를 맨 옷을 입었는데, 유카타라고 부르는 이 옷은 신세계의 와노쿠니에서 시작된 의상으로 여름에 입기 적당해 섬의 사람들이 자주 입는다고 하였다. 굳이 더위를 타지 않는 에이스는 욕심이 없었지만, 지나가면서 마주친 제 선원 몇몇은 어느새 유카타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더라. 그걸 보면 저도 한 벌 살까? 생각했지만양념을 발라 구운 문어꼬치를 발견한 순간 역시 옷에 돈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결심했다.


어느 정도 적당히 구경을 마쳤다고 생각한 그는 곧장 문어꼬치부터 거덜 내기 시작했다. 저렴한 축에 심지어 맛있었다! 이 가게를 오늘 아주 아작 내버려야, 다짐하다가도 에이스는 아! 아직 먹을 음식은 많지! 상기하며 바로 옆 부스로 자리를 옮기곤 했다. 계란빵 다섯 개를 한꺼번에 입 안에 털어 넣으면서도 꾸준히 양 손에 무언가를 손에 쥐었다. 기적적이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짧게 발걸음을 멈추고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에이스가 막 구입한 볶음우동을 한 입에 넣을 적이었다.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로 문득 어떤 말소리가 들렸다. 화권의 에이스라고? 자신의 이름이었다. 지금 현상금이 2억을 넘어섰댔지. 저렇게 음식에 정신 팔린 놈이 정말 2억짜리야? 해군이 이상하게 현상금을 매긴 게 아니라? 아무렴 어때. 멍청한 놈이면 우리야 좋지. 해적주제에 한가하게 축제를 즐기러 오다니……. 애석하게도 목소리가 잘 들렸다. 우물우물 씹던 것을 삼켰다. 뻔했다. 마찬가지로 놀러온 현상금 사냥꾼이라도 되나보다.


그는 가볍게 주위를 살폈다. 딱히 싸움에 장소를 가리진 않지만, 가게가 많은 이곳에서 싸우기에는 곤란했다. 아직 먹어야 할 음식이 많았다. 다음에는 망고 가게 옆에 있는 사과사탕을 먹으려고 했는데. 역시 거리에서 벗어나는 편이 좋겠지. 뒤로 기울어진 모자를 꾹 누른 사내가 골목으로 걸음을 틀었다.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현상금 사냥꾼들은 착실히 자신을 따라온다. 저희 나름대로는 기척을 숨긴다고 하지만 전부 느껴진다. 4. 잡졸이다. 금방 끝나겠네.


어느 정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들어왔다 싶은 에이스가 휙 몸을 틀었다. 입가에 걸린 웃음이 유쾌하다.


나는 오늘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어서 기분이 좋거든? 빨리 끝내줄 테니 얼른 나와.”


가볍게 주먹 쥔 손을 손목의 스냅으로 한 바퀴 돌리니 불꽃이 휘익 터진다. 구석진 골목이 짧게 환해진다. 그러나 슬프게도 저를 잡아가려 한 놈들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생각과 다른 전개에 겁을 먹었나? 자연계라서? 어느 쪽이든 귀찮다. 현상금 사냥꾼인 이상 제 동료들에게도 손을 뻗을 수 있으니 지금 바로 해치우는 편이 최상인데.


안 오면, 내가 간다?”


하여 성가시지만 에이스는 본인이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도착한다. 건물의 왼쪽 그림자에 한 명. 주먹에 불꽃을 일으켜 급소를 때리자 으아악!” 비명이 울린다. ? 아니, 뒤다. 에이스는 제자리에서 거꾸로 뛰어올라 발에도 불꽃을 일으켰다. 그대로 검을 들고 달려오는 사내의 머리를 명중한다. ! 울리는 소리와 발에 맞는 타격감이 훌륭했다. , 좋았어. 흡족했다. 거꾸로 몸을 도는 중에 떨어질 뻔한 모자를 잡아 다시 머리 위에 쓰는 도중이었다. 타앙! 총 쏘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문신 새겨진 제 팔을 관통해 지나갔다.


? 서두르지 말라고. 거기 있는 거 알고 있으니까.”


자연계에게는 물리적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니까. 저가 화권의 에이스란 걸 알고 있음에도 왜 그건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거지. 크게 도약한 에이스가 건물 2층의 난간을 밟고, 다시 이중으로 뛰어올라 건너편 건물 옥상 난간에 도착했다. 총으로 저를 겨눈 채 달달 떨고 있는 사내가 보인다. 빙고. 그는 가볍게 제 자리에서 화권을 쏘았다. 굳이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었다. 고스란히 불길을 맞은 남자를 뒤로하고 옥상 난간에 쭈그려 앉아 등을 보인 채 도망가는 마지막 적을 보았다. 


. 저기다.”


그는 스페이드 해적단의 선장으로부터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무기까지 버리며 사람들이 많은 축제의 현장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인파와 섞이면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무릎을 한 번 굽혔다가, 난간에서 크게 뛰었다.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앗차, 모자. 급히 왼손으로 모자를 잡으며 오른손을 뻗어 도망치는 사내의 등을 겨눈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조준한 채 엄지와 검지로,


화건.”


빵야. 불이 총알처럼 사내에게로 쏘아져나갔다. 등 정중앙을 맞은 사내가 고꾸라진다. 에이스는 쓰러진 사내의 등을 밟고 섰다. 후큭. 짧게 몸을 들썩인 현상금 사냥꾼은 완전히 정신을 놓은 듯 했다.


이런 연약한 놈들이 그랜드 라인에서 현상금 사냥꾼 노릇을 한다고?”


생각보다 훨씬 약했잖아. 몸풀기 축에도 못 끼게. 에이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남자의 등에서 내려왔다. , 이게 그럼 다시 사과사탕을 먹으러 가보실까! 직후 상쾌한 낯으로 노점상들이 있는 방향을 항해 고개를 돌린 순간이다.


.”


붉고 노란 등 아래로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남색의 유카타를 입은 채 양손에 사탕을 든 남자였다. , 이런. 들켰나? 민간인 같은데. 그는 곤란한 듯 눈을 찡그리며 낯선 이의 얼굴을 보았고, 아주 잠깐 멈칫했다.


어딘가 낯익은 생김새였다. 아주 오랜 지층에서부터 불쑥 거대한 송곳이 솟아오른다. 제 오랜 형제가 제대로 나이를 먹고 성장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루피처럼 크고 동그란 눈이 특히 닮았다. 물론 사보는 머리도 짧았고, 다소 꼬질꼬질 할지언정 한쪽 얼굴에 커다란 흉터도 없었지만. 아그작. 사내가 딸기사탕을 큼직하게 베어 물었다. 단내가 풍긴다. 제가 이 자를 쓰러트린 걸 보았으니, 해군에 신고할까? 눈 딱 감고 기절만 시켜? 하지만 아주 잠깐 동갑내기 형제를 떠올린 탓인지 공격하기가 꺼려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금발의 목격자를 한참 응시하던 짧은 침묵, 찰나의 끄트머리에서. 남자가 다른 손으로 쥐고 있던 사과 사탕을 제게 건넨다.


먹을래?”

역시! 너 좋은 녀석이었구나!”


……바로 여기까지가 칠무해 제의를 걷어찬 해적이 이름 모르는 남자와 낯선 섬에서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된 경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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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뚝 위로 가느다란 글자가 새겨지고 있었다. A, S위에는 X, C, E. 뻘뻘 땀 흘리는 종자가 근육 불거진 팔에 찰싹 매달린 채 도안을 완성했다. 그는 땀을 슥 닦고 사내 티 풍기는 청년에게 물었다.


원하는 대로 다 그렸습니다. 이대로 새기면되는 건가요?”


에이스는 고개를 거울 너머로 비치는 모양을 보았다. 제 몸에 영원히 새겨질 상처일 텐데도 큰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 좋네! X가 해적기처럼 보여야 하지만이것도 나쁘지 않아.”

, 바꿔드릴까요?”

아냐. 그냥 해. 얼른 하고 끝내자.”


씩 웃으며 하는 말에도 문신사는 어쩐지 겁을 먹은 듯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이 남자가 근래 위대한 항로를 들썩이는 스페이드 해적단의 선장임을 안 이상 어떤 민간인이라도 두려워 할 밖에. , 그럼 소독하고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냉큼 서둘러 소독을 한 후 기계를 손에 쥐었다. 저를 해치려는 기색은 아직까지 보이지만, 상대는 해적이다. 어찌될 줄 모른다. 그는 어떻게든 빠르고 완벽하게 일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두려움은 가실 줄을 몰라, 손이 가늘게 떨린다.


첫 잉크가 A의 꼭짓점에 박힌다. 에이스는 자리에 앉은 채 미동 않았다. 조금 따끔한 정도였다. 견딜 만 했다. 그는 얼마간 맞은편의 거울만 응시했다. 꽤 집중하는지, 옆의 문신사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감각만으로는 우둔한 통증만 있을 뿐, 정작 지금 그가 A를 그리고 있는지 Z를 그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에이스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문신을 새기기로 한 계기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해적이니 해적다운 겉모양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어린 혈기다. 그러다 보니 가장 먼저 문신이란 게 떠올랐다. 아프다는 동료들의 엄살이 있었지만 해적이 그 정도도 못 견뎌서야 쓰나. 어떤 것을 새기지?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이 떠올랐다. 평생 한 자리에 박혀 있어도 질리거나 후회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만하기도 했다. 그는 흔쾌히 결정했다. 곱씹을수록 그럴듯하다 여겼다. 팔뚝에 이름을 새기면 쉽게 자신의 명성을 알릴 수 있기도 했다. 이미 현상수배자가 되었고 값은 오르고 있다. 이따금 누가 어디서 찍는지, 사진도 최근 사진으로 바뀌곤 했다. 그렇다면 팔뚝에 제 이름자 새겨도 좋으리라. 사진을 보는 모두가 자신이 에이스임을 알 수 있도록.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이 바다를 재패할 것임을, 다른 어떤 수식어도 아닌 그저 에이스(ACE) 석 자로 박아두라고.


한데 결심하고 나니 돌연 제 벗, 아니, 형제가 떠올랐다. 먼저 바다로 떠난 이였다. 어쩌면 벗도 형제도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에이스는 어렴풋이 상기한다. 그를 향한 감정은 루피를 향한 것과 약간 달랐던 탓이다. 제 해적단의 동료를 대하는 것과도 달랐다. 첫 친구라서 그럴까. 우정, 처음, 배 다른 형제. 여러 가지 거창한 단어들을 나열해 보아도 완벽하게 부합하는 표현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영영 찾지 못할 것이다. 만나지 못한 세월이 오래되어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억은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


한 가지 말해볼까. 기실 그는 자신이 제 첫 사람을 잊는 것이 겁이 났다.


가장 먼저 바다로 나가 자유로워지자고 말한 것도 그 아이였건만 형제 없는 바다에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무수한 경험들이 포개어져 아이를 묻어버릴까 두려웠다. 내 기억 속의 영원할 열 살짜리 동갑내기. 남자는 제 존재를 온전히 신뢰치 못했다. 그래서 차라리 먼저 떠난 형제를 팔에 새기기로 한 것이다. 피부에 박음질한다. 멀리 멀리, 혹은 그만치 깊숙한 아래로 떠났을 촌스러운 졸리 로저를. 어린 시절 종종 심장이 울컥이곤 했던 아이의 이 빠진 못난 웃음을. 때 묻은 태양빛 머리카락을. 아직까지 이름 모르는 감정을.


사보를.


에이스는 눈을 뜬다. 문신사는 어느덧 형제의 이니셜 위로 X자를 덧그리는 중이. 아프지 않았다. 충분히 견딜 만 했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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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호그와트 내 퀴디치 리그 첫 경기가 다가왔다. 첫 시합은 그리핀도르 대 후플푸프였는데, 교내에서는 벌써부터 시합의 결과를 예측하며 떠들곤 했다. 슬리데린은 작년에 제게 패배당한 그리핀도르가 마땅히 이번에도 질 것이라며 비웃었고, 래번클로는 벌써부터 제1 시합 결과에 대한 모든 경우의 수를 세워두고 각 경우에 따른 작전을 짜두고 있었으며, 마땅히 소속 기숙사인 후플푸프와 그리핀도르 기숙사 학생들은 선수들의 연습을 재촉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이카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작년 처음으로 퀴디치라는 운동을 접해 보았고, 금세 색다른 운동에 듬뿍 빠졌다.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였다. 두 아이들은 비행술에 괜찮은 소질을 보였으며, 심지어 이와이즈미의 경우에는 올해 초 있었던 그리핀도르 퀴디치 선수 선발에 몰이꾼으로 뽑히기까지 했다! 소학교 시절, 사내아이들이 제발 한 시합만 함께 해달라는 애원으로 기른 힘은 2학년이 블러저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였나 보다. 오이카와는 마치 저가 선수로 뽑히기라도 한 양 힘껏 제 소꿉친구를 축하해주었고, 연습을 닦달했다.


이번 시합은 이와이즈미 하지메의 데뷔전과 다름없었다. 오이카와는 매일 저녁 너도밤나무 아래에 앉아 이와이즈미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님께 새로 받은 님부스 1001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가 허공에서 재빨리 회전할 때에는 박수를 치고, 어디로 날아가든 끝내 시선을 놓지 않았다. 바람에 휩쓸려 휘청하기라도 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을 동동 구르는 덕에, 이와이즈미는 아닌 척 은근히 그런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시합을 열흘 앞두고는 매일 작전회의니 연습이니 하는 명목으로 끌려 다닌 터라 수업 시간과 통금 시간을 제하고는 두 아이는 잘 만나지도 못했다. 이와이즈미는 허겁지겁 음식만 입 안에 우겨넣고 다른 팀원들과 서둘러 연회장을 나섰고, 매번 녹초가 되어 돌아와 기절하듯 잠들었다. 대화도 무색하고, 혹시 모를 염탐꾼들을 방지하기 위해 연습을 구경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오이카와의 입술이 점진적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할 즈음, 다행스럽게도 퀴디치 날이 밝았다.


오이카와는 좋은 자리를 선점해두기 위해 서둘러 경기장으로 향하는 아이들과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급조한 응원가가 점차 멀어지고, 걸음이 점차 빨라진다. 작년보다 덜름한 망토가 소년의 복사뼈를 간지럽혔다. 지금쯤이면 아마 회의를 위해 따로 모였을 것이다. 시간을 잘 맞추면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기장을 빙 돌아 뛰는 모양이 다소 조급스럽나 싶더니,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 오이카와는 앞을 미처 보지 못하고 둔탁한 무언가와 부딪쳤다.


, 하는 신음소리가 동시에 터졌다. 몸이 크게 휘청거렸으나 상대방이 잡아준 덕에 다행스럽게도 꼴사나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던 오이카와가 슬그머니 눈을 뜬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단정하게 맨 노오란 줄무늬 넥타이였다.


괜찮아?”


다정한 목소리다. 반쯤 기울어진 몸을 바로세우며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전 응원 한 마디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서두른 것이 실책이었다. 고마워. 그는 인사를 하며 제 흐트러진 옷차림을 바로 하고, “여기도.” 상대방이 조심스럽게 구겨진 망토 소매를 펴주었다, 뒤늦게 얼굴을 마주했다. 공교롭게도 이따금 후플푸프와 함께 수업을 들을 때면 본 얼굴 이었다. 선한 인상과는 별개로 머리카락 색이라던가, 가끔 교수님께 불리던 이름이 일본식이라 기억에 남아 있다.


그러니까, 스가와라였나?”

, 기억하는구나.”

일본식 이름이라서.”

혼혈이지만. 코우시라고 해.”


웃음 짓는 모습이 썩 싱그럽다. 보는 사람까지 상쾌해지는 기분인데. 토오루 맞지? 그러면서 쉬이 제 이름을 말하는 것이 기억력도 꽤 좋은 성 싶었다.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가는 중이었어?”

. 우리 팀 막사에. 시합 전에 친구 얼굴을 보려고.”

이런. 퀴디치팀들은 지금 전부 최종회의 중일 텐데.”


벌써? 아까 지나는 길에 그리핀도르 팀이 막사로 들어가는 걸 봤거든. 아무래도 저가 조금 늦었나보다. 오이카와는 눈가를 찡그렸다. 스가와라가 단조롭게 조언해주었다. 인사는 시합 후로 하고, 지금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리를 잡아서 응원에 열중하는 게 어떨까? 저가 생각하기에도 그 편이 나을 것 같다. 긴 숨을 내쉬고 오이카와는 뒤를 돌았다.


항상 시합 전에는 내가 이와쨩에게 한 마디 했었는데.”

늘 같이 다니는 검은 머리 남자애 말하는 거지? 너희 둘 정말 친한가봐?”

당연하지. 우린 가장 친한 친구니까.”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이면, 웃음기 어린 목소리가 재차 질문해본다.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친했던 거야? . 옆집이었어. 가족처럼 자랐거든. 둘 다 마법사 마을에서 자랐어? 아니, 런던에서. 굉장한 우연이네.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오이카와는 마치 큰 칭찬이라도 받은 것 마냥 어깨를 으쓱이며 턱을 세웠다. 그치? 굉장하지? 나란히 걷는 걸음이 사뿐하다. 그는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어릴 적부터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면 항상 이와이즈미가 속해있던 팀이 이겼다던가, 그리고 자신은 한 번도 이와이즈미와 다른 팀이 된 적이 없다던가 하는 이야기들. 두 사람이 퀴디치 경기장 응원석에 올라, 한쪽에 자리 잡고서야 스가와라는 넌지시 말했다.


그 말은 이번에도 너희 팀이 이길 거란 소리야?”

당연하지!”

흐음. 절대 네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걸.”


미안한데 우리 팀도 호락호락 당해줄 정도로 약한 팀은 아니거든. 소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사뭇 자신만만한 모양은 제 팀에 대한 신뢰가 포함되어 있다.


이와쨩은 한 번도 진 적 없거든! 무려 이 오이카와 씨가 믿고 있으니까!”


뭣하면 내기도 할 수도 있어. 소년이 빳빳하게 외쳤다. 할까, 내기? 노랗고 붉은 목도리가 한데 뒤엉켰다. 누가 뒤로 뺄 줄 알고. 오이카와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와이즈미를 믿었다. 매번 제 친구가 게임을 할 때마다 믿고 있어.’라고 단언할 정도로. 이와이즈미는 제 무조건적인 믿음을 배반한 적 없다. 비록 오늘은 그 말을 건네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 해서 제 굳건한 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믿음도 부럽네….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소년이 다소 짖궂게 웃는다.


좋아. 그럼 저녁 식사 시간에 지는 쪽이 이기는 팀의 기숙사 테이블에 가서 똥폭탄을 던지고 오는 거야.”

?”


보통은 내기에서 지는 쪽이 더 굴욕적인 결과는 맞지 않던가? 생각한 것과는 다소 다른 내용에 오이카와가 눈을 둥그레 떴다. 눈을 반쯤 휘면, 그 아래 위치한 눈물점이 슬쩍 접힌다.


시합에서도 지는데 내기까지 비참한 쪽이면 너무 슬프잖아. 이래야 이긴 쪽도 진 쪽도 조금은 공평하게 즐거워지지.”


썩 그럴법한 말이었다. 한편으로는 마냥 한쪽만 즐겁게 내버려두진 않겠다는 건가. 얼굴은 상쾌하게 생겼는데 성격은 전혀 상쾌하질 않네. 오이카와는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도 큼지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기 성립이야.”


물론 그는 그 날 저녁, 정말로 자신이 앉아있는 테이블이 똥범벅이 될 거라곤 상상을 못했기에 나올 수 있었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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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 씨, 정신이 들었습니까?”


누군가가 말했다. 새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 남자였다. 아마도 의사인가 보다. 시선은 확실하게 저를 향하고 있다. 까만 동공 너머로 제 얼굴이 보인다. 서서히 차오르는 현실감은 확실히 정신이 든 모양 같다. “.” 나는 대답하며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든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런데 혹시 오이카와 토오루가 제 이름인가요?”

…….”


아주 잠깐 침묵이 흘렀다. 역시 본인의 이름을 도리어 되묻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 상대가 나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요컨대, 이상한 쪽은 본인이었다. 객관적으로 소년은 자신의 상태가 다소 어딘가 어긋났다고 판단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이 이름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요한 병실 내부에서 숨소리만이 잘근잘근 떠돌았다. 몇 번 순진한 낯으로 눈을 깜박인다. 그 불규칙적인 숨소리들을 들고서야 저는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아뿔싸, 이 방에 있는 건 자신과 의사선생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제 코앞에 선 의사로부터 벗어나 시야를 넓게 하자, 비로소 몇 명의 사람들이 더 비쳤다. 입을 쩍 벌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기억에는 없지만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족일까? 그럴 지도 모른다. 얼굴이 아까 전, 힐끔 의사 선생님의 동공 너머로 흐리게 비쳤던 제 것과 닮았으니까. 단순한 머리색이라던가, 눈매 같은 것들.


의사가 그 중 한 가운데 선 여성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오이카와 씨, 혹시 이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아마도 어머니일 것이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므로 고개를 저었다. 토오루. 그러자 여자의 눈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흐느낌에 심장이 덜컹, 곤두박질치고 있으니 제 심정은 아랑곳 않고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지극히 단순한 내용이었다. 본인이 몇 살인지 알고 있느냐,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경위를 기억하고 있느냐 따위의 시시한 물음들. 보통 사람이라면 망설임 없이 줄줄 흘러나왔을 답변이나, 정작 제가 말하려니 머릿속이 안개 낀 듯 서러워져 직전과 같은 문장 밖에 말하질 못했다.


역시 현재 환자는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기어코 의사는 선고했다. 일시적인 증상일지, 영구적인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고 자세한 영역은 정밀 검사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본인에 대해서도 가족에 대해서도 기억할 수 없는 이 상황은 한 가지 결론밖에 도출해내지 않는다고. 침통한 의사의 말에 어머니, 로 추정되는 사람은 더욱 소리 높여 울지 시작했다. 아버지인 것 같은 사람이 어머니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을 닮은, 그러나 30대 중반의 남자가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그 외의 외상이나 내상이라던가, 검사 예약에 대한 말을 늘어놓았다. 모든 것이 나 아닌 남의 이야기 같았다. 병실이 절망과 비탄의 장으로 물들었다. 생경했다.


그런데 찰나였다. 소수의 조촐한 인파 가운데에서 누군가가 돌연 중얼거렸다.


…….”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고개가 돌려졌다. 그곳에는 민트색의 체육복을 입고 있던 한 남자 아이가 서 있었다. 중년의 남자는 여자의 울음을 달래주느라 애를 쓰고 있었고, 호감 가는 외모의 청년은 의사선생님과 여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터라 지금 저 소년을 보고 있는 것은 저 뿐이었다. 가장 구석진 곳에 서서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것도, 나지막한 목소리도 저만 듣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무언가 신기했다. 홀로 묵음으로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하던 소년이, 기어코 한 마디를 뱉었다.


망할카와가.”


제 성을 닮은 욕 비슷한 말이었다. 푸하하. 반사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그 울림이 너무 익숙한 탓일까? 정말 신비로운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진짜 오이카와 토오루인지 조차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나이도 취미도 특기도 가족도 친구도 전부 기억나지 않는데 모든 것이 괜찮은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모든 부재가 아주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오이카와 토오루가 모르는 어떤 오이카와 토오루가 탄생한 날이었다.

 

*               *


나는 학교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왜 떨어졌는지는 모른다. 부모님이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표정으로 미루어보건대, 그들도 모르고 있다고 짐작된다.


몇 번의 지루한 정밀 검사를 치룬 결과, 의사는 기억 상실이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옆에는 아버지와 친형(깨어났던 날 의사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남자였다.)이 있었다. 기질-역행성 기억상실이라고, 꾸준히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을 수는 있는 건가요? 형이 물었다. 흐렸다. 나는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낯설었다.


완전히 기억이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운이 좋아 기억을 조금씩 되찾는다고 해도,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겁니다.”


의사는 말했지만, 기질 저는 아무렴 어떤가, 라는 심정이었다. 숨을 쉬는 데에도 이상이 없고, 제대로 자아를 가지고 생각을 하고 있다. 머리를 약간 다친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지금 당장은 건망증세가 자주 나타날 거라 말했지만 최소한 삶에 이상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신체 회복력이 다소 빨랐던 것을 생각하면 희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보호자분들께서 잘 챙겨주세요.”


그의 당부대로 가족들은 어떻게든지 옆에 붙어서 저를 도왔다. 아니,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


자신의 이름에서 토오루가 관통하다는 의미의 토오루()라는 것도 알았고, 18살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생일은 7, , 7월의 어느 날이라고 한다. 막둥이로 태어났는데, 어릴 적에는 발육이 다소 느려서 굉장히 가족들이 걱정을 했다고. 그런데 지금 제 키랑 몸을 보면 절대로 발육이 느린 편은 아닌 것 같은데. , 모르겠다.


가족의 이름도 배웠다. 어머니, 아버지, . , 형은 결혼도 했고 애도 있다고 했다. 조카 이름이, , 무슨 루로 끝났는데. 주말에 함께 다 함께 병문안을 온다니 그 때 다시 물어봐야 겠네.


잠에서 깨어난 일주일은 몹시 지루하고도 바빴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제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했다. 나는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리 말해도 기억이라곤 전혀 나질 않는데. 그들은 어떤 작은 기적에 몹시 매달리는 눈치였다. 그래도 가족이고, 저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꽤 슬플 것 같으니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제가 토오루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러던 금요일이었다. 전날 병원에서 하루 종일 있는 것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엄마, 내가 자주 보던 책이나, 좋아하던 음악 같은 건 뭐에요? 병원에 계속 있으려니 지루해서.” 라는 질문에, “토오루, 너는 책이라면 늘 배구 잡지만 품에 안고 살았지. , 그러고 보니 배구는 기억나니?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잖니.”라고 대답하며 약 반 년 치의 배구 잡지를 들고 오던 날이었다.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다소 너덜거리는 잡지의 가장 최근호를 꺼냈다. 월간 배구. 표지 상단에 큼직하게 박힌 단어가 인상 깊었다. 의미 없이 팔과 다리가 간질거렸다. 굉장히 그리운 울림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러니까, 내가 아닌 이전의 오이카와 토오루는 배구를 많이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느릿하게 한 장 한 장 넘겼다. 서브, 리베로, 봄고 예선 등 생소하지만 기시감이 드는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또 손끝이 움찔 떨린다.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지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깜깜한 지식들을 끼워 맞춰보려고 노력하며 열심히 기사들을 탐독하던 중이었다.


난데없이 문이 덜컥 열렸다. 마땅히 검진을 온 의사 선생님, 혹은 퇴근 후 잠깐 제게 들린 가족으로 짐작한 채 고개를 돌린 저는 낯선 얼굴에 눈을 댕그랗게 떠버렸다.


.”


아니다. 한 번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처음 제가 깨어난 날에 보았다. 분명 망할카와가.’ 따위의 말도 했었지. 기억이 났다. 하지만 당시에는 주위의 상황에 정신없이 휩쓸렸기 때문에 통성명은 하지 못했다.


우리 첫날에 봤었지?”


그러니까 이름이, 그때와 다름없이 남자 아이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못생긴 얼굴이다. 이름이 뭐였더라?


이와이즈미.”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양 대답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다.”

나는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해.”


이런 나라도, 앞으로 잘 부탁해. 이미 제 이름은 알겠지만, 저에게는 이 통성명이 처음이므로 손을 내밀었다. 가습기의 연기가 구름처럼 퐁퐁 솟아나왔고 까만 창문 너머로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났다. 이와이즈미는 한참을 제 손만 빤 노려보다가, 겨우 손을 맞잡는다.


오냐.”


겨우내 나온 대답이 어쩐지 그답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약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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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츠카와는 아침 연습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느긋하게 등교하려고 했건만, 평소의 습관 탓일까. 일반 등교 시간보다 십 분 정도 더 이르게 도착해버렸다. 느린 걸음으로 교정을 거닐었다. 그가 다니는 후문에서 교사까지 가려면 어차피 매일 들르는 체육관을 거쳐야 했는데, 요상스럽게도 그곳을 지나는 제 귀에 팡팡 공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오늘은 월요일인데. 3년간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 한 아오바죠사이 남자 배구부의 휴일은 매주 월요일이었다. 도대체 뭔가, 싶어 슬그머니 문을 열어보니 오이카와가 있다. 후덥지근한 공기에 손부채질을 하다 말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쟤는 왜 오늘 같은 날에 아침부터 연습이야.


 입고 있는 교복이 온통 땀에 젖은 모양이 이곳에 잠깐 있던 꼴은 결코 아니었다. , 어처구니가 없어 마츠카와는 체육관 안으로 들어와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이내 강력한 서브가 뒤따랐다. 공을 던지고, 서브가 날아간 장소를 확인하다가, 제가 의도한 곳과 다소 빗겨나간 것에 오이카와는 !” 아깝다는 듯이 소리치며 볼카트에서 다시 공을 꺼내려고 했다. 비로소 코트 안쪽으로부터 돌아간 그림자를 잡아챈다. 인기척을 느낀 소년이 체육관 입구로 고개를 돌린다. 이제야 저를 바라보는 눈이 흡족하다. 마츠카와는 입매를 휘며 줄곧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들어 흔들어보았다.


 “좋은 아침.”

 “맛층이 왜 여기에 있어?”

 “눈이 일찍 떠져서.”


 어차피 녀석도 슬슬 교실로 갈 준비를 해야 할 마당에 굳이 체육관 안으로 발을 디딜 필요는 없어 보여 운동화를 신은 채 입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오이카와가 마츠카와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는 너는 왜 체육관이야? 오늘 쉬는 날이잖아.”

 “그냥. 요즘 준비하고 있는 서브가 좀 마뜩찮아서.”

 “이와이즈미가 너 오버워크라고 잡아간다.”

 “.”


 이와쨩에겐 비밀이야. 오이카와가 슬쩍 검지를 올려 제 입술에 붙였다. 흐음, 글쎄. 단언하는 대신 괜히 말끝을 흐리던 마츠카와가 제 시계를 확인한다.


 “언제부터 연습하고 있었는데.”

 “얼마 안 됐어. 7?”

 “오래 했네.”


 십 분만 지나면 여덟시 반이야. 슬슬 교실로 가자. 여상스러운 어조로 말하자, 오이카와가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연습만 시작했다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녀석이니 저가 얼마나 있었는지도 모를 만하다. 그래, 벌써.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야 더위를 깨달은 그가 땀에 달라붙은 교복 셔츠를 팔랑였다. 흰색의 하복 셔츠가 축축하게 젖어 근육의 윤곽을 고스란히 드러냈다가 슬쩍 감추길 반복한다. 마츠카와는 힐끔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신발을 벗고 체육관 위에 올라섰다.


 “공 줍는 거 도와줄게.”

 “, 맛층이 어쩐 일로?”

 “싫으면 갈까?”

 “아니!”


 열심히 오이카와가 던져둔 공을 정리하고 나란히 교실로 향했다. 옷이 젖었는데 괜찮겠냐 물었더니 찝찝하긴 하지만 벗는 것 보단 낫지 않느냐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 엉큼한 생각이라도 들어? 넌지시 놀리는 어조로 묻기에 비웃음만 지었더란다. 내가 아침부터 그런 생각 할 놈으로 보이냐. 라는 대답을 하며 그를 억지로 교실 안으로 밀어넣고는 저 역시 교실 안으로 돌아온다.


 뭐, 사실 조금 했다.


 근데 그게 어때서. 마츠카와는 제 상상에 당당했다. 못 할 놈으로 할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한 것도 본 애인을 상대로 했는데 뭐 어때서. 교실에 앉아 학급생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방을 정리했다. 그래도 집 밖을 나와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다름 아닌 오이카와 토오루라니, 오늘은 그럭저럭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아,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마츠카와에게선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교사가 제 번호를 지목하며 문제를 풀라던가, 지문을 읽으라는 사건도 없었고 심지어 고문 시간에 잠깐 졸았을 적에는 걸리지도 않았다. 평온한 하루였다.


 식당에서 하나마키와 마주쳤고, 녀석이 수학 교과서를 빌려 달라기에 흔쾌히 알겠노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데? 5교시. 혹시 나 네 책에 필기해도 되냐? 그럼 나야 고맙지. 나란히 제 교실을 향해 올라가며 대화를 나눈다. 제 책에 필기하면 도움이 되는 건 저니까. 2층 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근데 날씨 진짜 덥다. 소리를 뱉으며 창문 밖을 힐끔 내다보던 하나마키가


 “.”


 하고 돌연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마츠카와가 자연스럽게 그 시선을 따라가며 묻는다. .


 “아니, 별건 아니고. 그냥 오이카와가 보여서.”


 오늘도 변함없이 인기 만발이네, 우리 주장님은. 짓궂게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것이 당연한 동의를 구하고 있다. 마츠카와는 잠깐 제 친구가 보았던 끝을 보았다. 그가 말했듯이, 오이카와였다. 그러나 문제라면 오이카와 혼자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곧잘 그러했듯 그는 다른 계집애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미소를 흘리며 대하는 모습이 몹시도 능숙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왁자지껄한 소음이 둥둥 떠다닌다. , 마츠카와는 애써 생각했다. 그럴 수 있었다. 교내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상당히 인기 있는 녀석이고, 가끔 밖에 나가면 여자 아이들이 그에게 번호를 묻기 일쑤고. 교내에서 계집애들과 이야기하는 것 정도는 3년간 줄곧 봐와서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몸까지 굽혀가며 키 작은 후배와 눈높이를 맞춰주는 꼴에 얼마나 속이 뒤틀리는지.


 허. 너무 기가 찬 나머지 콧방귀가 나온다. 하나마키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

 “저런 게 뭐가 좋다고 모여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아서.”


 마츠카와가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고등학생을 넘어선 외모는 단지 아주 약간 표정을 찡그리는 것만으로도 금세 무서운 낯을 자아냈다. 질투하냐? 실실 웃으며 어깨를 툭, 건드리면 상대방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 그래. 심지어 수긍하는 꼴이 썩 신경질적이다.


 “.”

 “?”


 그는 제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하나마키를 향해 가볍게 던졌다. 뭔데? 내 자물쇠 키. 29번 사물함에 있으니까 알아서 꺼내가.


 “? 너는?”

 “잠깐 아래에.”

 “하아?”


 그러고는 계단 가운데에서 제 친구를 홀로 두고 저벅저벅 아래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너 진짜 나 버리고 가냐?! 비명 같은 울림이 뒤에서 들려도 대답은커녕 걸음만 빨라진다. 긴 다리가 계단 두 개를 한꺼번에 밟는다. 괜히 짜증이 나 속이 갑갑해진다. 마츠카와는 하복의 가장 위 단추 하나를 풀었다.


 순식간에 1층에 도달한 그는 오이카와가 보였던 곳으로 향했다. 본관 건물을 빠져나가 팬지꽃 피어난 뜰. 사뭇 사나운 얼굴로 걸음을 옮기고 있으니 다행스럽게도 그는 여전히 가운데에 있다. 화사한 여자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희희낙락하게 웃는 얼굴로. 마츠카와는 제 머리를 쓸어 올린다.


 “오이카와.”


 낭랑한 목소리 사이로 썩 사나운 음성이 가로지른다. 순간 대화가 훌쩍 멎고, 오이카와 역시 다정한 낯을 바꾸었다. 맛층? 의아한 눈빛이 두어 번 깜박이며 붉은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 오이카와는 저 맥락 없이 좁은 미간의 의미를 찰나에 깨달았다.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다듬으며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무슨 일이야?”

 “할 말이 있어서.”

 “. 꼭 지금 해야 해?”

 “중요한 이야기라서.”


 오이카와는 으음, 괜히 고민하는 척 했다. 일부러 말을 끌려는 의도가 훤히 보여 마츠카와가 흉흉한 빛으로 눈짓했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결국 그는 제 남자친구를 따라주기로 했다. 그도 알고 저도 아는 뻔한 거짓말에 맞장구치며 오이카와는 서운한 얼굴로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미안. 아마 부활동 관련 이야기일 거야.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쩌지? 다음에 이야기 하자.”


 아. 아이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풀죽은 얼굴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신 다음에 더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 그래. 오이카와는 마냥 순진한 1학년 아이들을 향해 방긋 웃어주고는 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원을 와해했다. 그들을 가르고 마츠카와에게 다가온다.


 “갈까, 맛층?”


 눈을 휘는 것이 요사스러웠다. 화를 내고 싶어도 사람을 맥 빠지게 만드는 그런 낯이다. 제 꼴 잘난 줄은 알아선. 마츠카와는 그래도 타인에 비해 그에게 덜 휘둘리는 편이었으나, 빌어먹게도 애정은 위대했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다.


 타박타박. 아스팔드 위로 깔리는 건조한 마찰음. 오이카와는 나란히 그의 발걸음에 맞춘다. 맛층,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넌지시 말을 건네는 상대가 한숨처럼 말한다. 그래. 뭔데?


 “매점 가자.”

 “하아?”

 “아이스크림 사줄게.”


 뜬금없는 말에 오이카와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푸하하. 폭소를 터트렸다. 고작 아이스크림 먹자고 말하려 부른 거야? 오늘 날씨가 더워서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졌어. 맛층은 친구 없어? 매정에 가자고 이야기 중인 오이카와 씨를 이렇게 끌고 나온 거야? 그 놀림조에 소년은 도리어 몹시 곤란한 비밀을 터놓듯이 고백하는 것이다.


 “그야 네가 골라주는 걸로 먹을 거니까.”

 “애네.”


 뭐, 답변이 귀여우니까 봐줄게. 웃기지마, 봐주는 쪽은 나겠지.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원곡을 알 수 없는 콧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마츠카와는 그 노래도, 방금 전의 제 행동도 전부 우스워 가볍게 웃고만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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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길만걸어 : 역시 몰텐님이시라니까요. 사실 알고 보면 오이카와랑 영혼의 쌍둥이아녜요?wwww]

 [우유빵 : ㅁㅈㅁㅈ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왜 언니들이 몰텐님께 부탁드렸는지 알겠더라고요.]

 [꽃길만걸어 : 저희 안목도 완전 쩔지 않아요? , 저번에 촬영 중에 인스타짤 올라왔을 때! 빨간 뿔테!]

 [우유빵 : 크 ㄹㅇ이었져]


 이와이즈미는 무어라 할 말이 없어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방을 멀거니 응시하기만 했다. 굳이 자신이 타자를 치지 않아도 팬사이트 간부 전용 채팅방의 화면은 잘 올라갔다. 주로 오이카와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이번에 챙겨준 생일선물의 반응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히나쨩 : 근데 반지는 낀 사진을 아직까지 못 봐서 많이 아쉽더라고요:(;´`;):]

 [우유빵 : 근데 몰텐님께서 산 목걸이 짤은 자주 올라오던데요??]

 [민트풍선 : ?? 목걸이요?? 설마 그 일자 목걸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치킨먹고싶다 : 헐 대박 그거 최근 오이카와 호크룩스잖아요]


 간부 중 한 명이지만 이번 생일선물 조공에는 일정상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이 의아한 듯 되물었다. 그 물음에 우유빵님과 꽃님이 빠르게 손가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와이즈미와 함께 선물을 하러 갔을 때, 이와이즈미가 본인의 사비로 산 목걸이를 이번에 조공을 보낼 적 함께 부쳤었다고. 생일 다음날 오이카와가 SNS에 올린 인증샷에서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가 바로 그것이라고. 이와이즈미는 어수선한 채팅방을 오면서 애매한 표정을 짓고는 맥주를 한 모금 머금었다. 굳이 숨기려고 한 적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동네방네 자랑할 의도도 없었던 터라 기분이 이상했다.


 뭐, 그랬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선물을 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로, 그의 생일 이후 촬영 때를 제한 대부분의 동영상이나 사진에는 그 목걸이가 함께 찍혔다. 남자조차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선물은 명백하게 오이카와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의 취향이 바뀔 리는 없다. 그랬더라면 이제까지 제가 골랐던 모든 선물이 무용이 되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편지 한 장 없는 상자가 그 누구도 아닌 이와이즈미 하지메로부터의 선물이라는 것도 알지 못할 터였다.


 덕분에 그는 최근 올라오는 사진을 볼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감각에 사로잡혀 있어야만 했다. 미련이다. 혹시 너는 아직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라는 근거 없는 물음이 홀로 두둥실 떠올랐다가 가라앉길 반복했다. 지금도 같았다. 완전 계를 탔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가만 보다가 이와이즈미는 문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는 화제를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몰텐 : 그런데 이번 드라마는 촬영 시작한 지 꽤 됐는데 조공 소식이 없네요.]

 [우유빵 : 곧 해야죠! 밥차도 보내고! 간식조공도 보내려고요!]


 다행스럽게도 제 말에 오이카와가 얼마 전 촬영을 시작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바뀌었다. 무려 오이카와가 검사 역할이라니, 얼마나 섹시할까. 하는 감탄이 주된 내용이었다. 근래 촬영장이 어디인지, 밥차는 언제쯤 보내면 좋을 지에 대한 이야기도 슬쩍 나왔다. 이번에는 밥차 조공과 간식 조공에 대한 모금을 함께 할 예정인가 보다. 밥차 이후 남은 자금으로 간식 조공을 보내겠다는 펜페이지 회장의 말에 모두가 또 설레는 마음으로 밥차는 지난 번 보낸 모 회사가 좋더라, 간식은 이걸 넣는 게 좋을 것 같다, 둥의 의견을 보탰다.


 [민트풍선 : 이번에는 간식 조공할 때 꼭 도와드릴게요!]

 [민트풍선 : 아니 도와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민트풍선 : 제발]

 [루리 : wwwwwwwwwwwwwww민풍님 조공 핑계로 오이카와 보려구wwwwwwwwwww]

 [민트풍선 : 저번에 진짜 회사 엎어버릴 뻔 했잖아요(இдஇ; ) 개인적으루 촬영장 갈까말까 진짜 고민하다가 안 갔는데(இдஇ; )]

 [루리 : 님 솔직히 말해요 그것도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잖아요]

 [민트풍선 : 들킴ㅎ]


 몰텐님은 이번에 오실 거죠? 그러고 보니 사인회에서도 팬미팅에서도 몰텐님은 한 번도 뵌 적 없네요. 맞아, 게다가 이제 간부가 될 정도로 해비팬이신데 왜 안 오셨어요? 남팬인거 쪽팔려서 그래요? 엑 근데 정모엔 오셨잖아요? 바쁘신가? 아니면 티켓팅이 꽝인가. 그럼 이번 조공은 좀 도와주세요... 저희가 다른 건 몰라도 오이카와는 보여드릴 수 있어요.. 솔직히 남자 한 명 있어줘야 저희도 힘 좀 덜죠ㅠ. 간식 50인분이 얼마나 무거운데. 맞아요. 게다가 실제로 몰텐님 뵀을 때에도 굉장히 힘 잘 쓰셨구. 저희 생선 사러 갔을 때에도 짐 대부분 몰텐님이 들어주시더라고요. 저희는 부탁도 안했는데! 매너 좋으셔서 ㄹㅇ 반할 뻔 했어요. 게다가 짐도 되게 많았는데 힘든 기색 거의 없으셨고.


 다시 한 번 따르게 올라오는 제 이야기에 이와이즈미는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린 채 짧게 망설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가늠을 못했던 탓이다. 낯 뜨거운 칭찬에도 대답 않던 그는 결국 가장 첫 질문에 대한 답만을 간략하게 썼다.


 [몰텐 : 만약 시간 되면 도와드릴게요.]

 [꽃길만걸어 : 헉 정말이죠? 약속이에요!!]

 [몰텐 : 그런데 회사 때문에 평일은 무리]

 [몰텐 : 일거에요]

 [우유빵 : ㅠㅠㅠㅠㅠㅠㅠㅠ]


 죄송하다는 투의 문장을 몇 마디 더 쓴 후에야 이와이즈미는 다른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채팅창을 빠져나왔다. 맥주캔을 완전히 비운다. 썼다.


 만약 시간이 되더라도 가지는 않을 터다. 오이카와를 만날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비겁하지만 그렇다. 아직 저는 오이카와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오이카와가 자신을 기억하느냐에 대한 여부와는 별개의 이야기다이와이즈미는 허망하게 배구를 그만두고, 전혀 다른 직업을 가진 채 만인의 앞에 서게 된 오이카와를 향해 괜찮아?” 라던가, “잘 지냈냐?” 라고 물을 자신이 없었다.


 비록 오이카와가 카메라 앞에서 그러하듯 활짝 갠 얼굴로, “물론이지.” 대답하더라도 저는 그것이 거짓임을 알아차리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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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생일이. 이제 저도 나이를 하나 더 먹게 된다. 그러나 배구부 아침 연습에 예외는 없다. 그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새벽부터 헐레벌떡 나선 탓에 어머니가 황급히 던진, ‘생일 축하한다, 시게루!’라는 말이 등교 전 들은 축하의 전부지만 아침부터 발걸음이 가볍다.


 황급히 부실로 들어서자, 왁자지껄한 소리가 담뿍 새어 나오고 있다. “좋은 아침입니다!” 기운차게 인사하며 문을 들어갔다. 이제 3학년이 되는 선배들과 동기들 몇몇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 야하바!”


 제 사물함의 문을 열고 짐을 안에 넣는데, 오이카와가 살갑게 웃으며 제 등을 가볍게 툭 친다. 너도 와서 같이 끼자. ? 뭔데요? 눈을 깜박이며 체육복 위에 걸쳤던 교복 자켓을 벗으니, 그의 옆에 있던 하나마키 선배가 낄낄 웃으며 대신 답했다.


 “오늘 마츠카와 녀석 생일이잖아. 깜짝 파티 해 주려고.”

 “…….”


 형용하기 힘든 미묘한 기분이 되었다. 나도 생일인데, 라는 생각과 오늘 마츠카와 선배도 생일이었나? 하는 뒤늦은 자각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올랐다. 아니, . 그러고 보면 선배들이 자신의 생일을 알 리가 없지. 따로 제 생일을 알린 적도 없었고. 보아하니 마츠카와 선배의 생일은 작년에도 챙겨준 것 같고. 그나저나 나도 마츠카와 선배의 선물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는데.


 저, 죄송한데 선물은 준비 못했는데요. 말하니 이와이즈미는 그게 뭐가 대수냐며 어깨를 두드렸다. 마음만 있으면 되지, . 케이크도 우리가 이미 준비했고. 너희들은 우리랑 같이 동참해서 파티 준비랑 폭죽 터트리는 것만 좀 도와줘. 이왕 축하하는 거 다함께 하는 편이 즐겁잖아. 확실히 축하할 법한 날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끼는 게 좋았다. 야하바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좋아요.”


 그리하여 야하바 시게루는 자신의 생일에 선배의 생일 파티를 돕기로 약속했다.


 파티는 고등학생들이 급하게 준비하는 것이 으레 그러하듯 뻔했다. 감독과 코치님께 이미 협력을 요청했고, 두 사람은 흔쾌히 동의했다. 수업이 끝나고 부활동이 시작되기 전, 감독이 먼저 회의실에 마츠카와를 따로 불러 약 삼십분을 잡아둘 것이다. 우리는 그 사이 잽싸게 체육관을 꾸미고, 불을 끄고 있다가, 마츠카와가 체육관에 들어오는 순간 케이크를 들고 등장하면서 놀라게 만드는 거라고. 확실히 주어진 시간이 삼십 분 남짓이기 때문에 스피드가 관건이었다.


 계획을 짠다고 다소 어수선했던 아침 연습을 끝내고 1학년 아이들과 다함께 교실로 돌아가는 길, 줄곧 무언가를 고민하던 와타리가, “있잖아.” 야하바를 향해 몸을 짧게 틀었다.


 “?”

 “선배들은 아무래도 선물이 없어도 괜찮다고 하셨지만, 조금 그렇잖아. . 우리끼리 소소하게 돈을 모아서 매점에서 간식이라도 사 드리는 게 어떨까 싶어서.”


 그거 좋은 생각인데? 맞아, 괜찮다! 다른 1학년 아이들도 우루루 몰려와 찬성했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도리어 그 편이 저 역시 약간의 마음이 나아질 것 같았다. 야하바 역시 그럼 점심시간에 다 같이 만나서 선물을 고르자고 말했다. 웃음과 알겠다는 긍정이 자신의 주변으로 와르르 터졌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조금 기분이 이상했다. 그는 어설프게 웃으면서 교실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교실은 나은 축이었다. 친한 동급생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해주었다. 어이, 야하바. 생일이라며? 생일빵이랍시고 등을 팡 때리는 사내 녀석들의 장난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선물로 주는 가벼운 사탕 하나가 보석 같았다. 소년은 실실 웃음을 흘리며 전부 받아주었다. 역시 생일은 이런 기분이지.


 그러나 비로소 제 생일을 만끽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야하바는 멀리 떠밀리고 만다. 점심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 동료들은 전부 마츠카와 선배가 좋아하는 과자만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자신 저 역시 오늘이 생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긴 일처럼 보였다. 마치 축하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이잖은가. 그런 말을 하려면 아침에 진작 꺼냈어야 했다. , 그래도 반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축하를 받았으니까. 그는 더 열성적으로 선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자 안에 과자를 우겨넣고, 예쁘게 포장도 했다. 사내 녀석들의 손재주가 다 엇비슷하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무늬가 있는 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 더 좋지 않겠는가. 어떻게든 매점에서, 그리고 교실로 데려가 숨기는 과정에서 선배들의 눈에 띄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오는 저를 향해 동급생들이, “뭐야, 야하바. 생일 선물 받은 거야?”라고 물은 것이 착잡하긴 했지만, 이 역시 어떻게든 웃으며 넘겼다.


 시간이 흘러 비로소 부활동 시간이 왔다. 삼월의 첫날이고, 자신의 생일인데도 그다지 의욕이 나질 않았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일 년을 함께한 자신의 반만큼이나 배구부를 좋아했기에 더 서운한 것 같다. 사실 선배들은 그렇다 쳐도, 와타리나 다른 애들도 제 생일은 까맣게 잊고 마츠카와 선배의 생일을 챙일 줄은 몰랐다. 물론 마츠카와 선배에게 죄는 없지만.


 아, 나도 모르겠다.


 과자 상자를 들고 도착한 체육관은 매우 바빴다. 누가 구했는지, ‘Happy Birthday’라는 단어가 적힌 큼직한 현수막을 2층 난간에 매달았고, 마찬가지로 난간마다 풍선을 불어 장식해두었다. 야하바도 서둘러 일손을 도왔다. 넘치는 풍선들은 그냥 바닥에 던져두고, 하나마키가 근처의 베이커리에서 사 온 생크림 케이크를 두 개나 꺼냈다. 하나는 작았고, 다른 하나는 배구부들이 한 입 씩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작은 케이크에 초를 꽂는 것을 도우며 물었다.


 “왜 두 개나 사셨어요?”

 “하나는 마츠카와 얼굴에 던지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먹으려고.”

 “과연.”


 혜안에 절로 감탄이 일었다. 곧 마츠카와 선배가 당할 꼴을 생각하면, 누구도 제 생일을 모르고 지나가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는 고개를 주억이며 정리를 도왔다. 마침내 1학년 각자의 손에 폭죽이 들리고,


 “맛층 온대!!”


 주장의 외침에 서둘러 체육관의 불이 꺼졌다. 급하게 하나마키 선배가 켠 케이크의 촛불만이 어슴푸레하게 빛났다. 그림자 너머로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따위의 뒤늦게 긴장한 아이들의 허둥거리는 움직임도 보였다. 야하바는 저도 어쩐지 두근거리는 마음에 체육관 문만 빤히 바라보았다. 회의실에서 체육관까지 몇 분 정도 걸리더라? 어림짐작하며 문 닫힌 체육관 밖에서 나는 발소리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던 와중이다.


 끼익, 문소리와 함께 어둠 찬 체육관에 햇빛이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이었다. 조명 스위치가 있는 쪽에 있던 이와이즈미 선배가 동시다발적으로 불을 켰고, 순식간에 환해지는 시야에 움찔할 틈도 없이 들고 있던 폭죽을 힘껏 잡아당기며 외쳤다.


 “마츠카와 선배 생일 축,”

 “야하바 생일 축하해!!”


 아니, 외치려고 했다. 제가 말을 잇기도 전 먼저 터진 외침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그랬을 터다. 야하바는 따가운 빛도 잊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

 “생일 축하한다, 야하바!”

 “이야, 우리 후배. 생일 축하해!”


 오늘 생일이지? 서프라이즈 파티~! 팡팡, 터지는 폭죽에서 튀어나온 오색 종이들이 자신의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잠시만, 이제 무슨, 오늘 마츠카와 선배의 생일이 아니었던가? 물론 내 생일도 맞는데. 하지만 이건 마츠카와 선배의 파티라고.


 어리벙벙한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 체육관 문 밖에서 들어온 마츠카와 선배는 초가 꽂힌 또 다른 케이크를 들고 있었다. 초가 딱 자신의 나이만큼 꽂혀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야하바, 와 마츠카와의.”


 어설픈 생일 축하노래가 체육관 안에 울려 퍼졌다. 야하바는, 그러니까 저는 박수를 치면서도 멍청하게 가까이 다가오는 케이크를 보고만 있었다. 이 사람들, 그러니까, ‘깜짝 파티에서 깜짝놀라게 만들 주체는 마츠카와 선배가 아니라 나였던 거야?


 “, 빨리 초 불어!”

 “마츠카와, 너도.”


 어느새 노래가 끝났는지, 배구부 일원들은 저희 둘만 빤히 보며 재촉했다. 마츠카와 선배와 눈이 마주치자 어설픈 웃음이 튀어나왔다. 와타리도 그렇고 전부 알고 있으면서 아침부터 모른 척 했다는 거지. 소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작정 떠밀며 촛불을 후우, 불었다. 마츠카와 선배 역시 하나마키 선배가 들고 있던 케이크의 불을 껐다. 그래도 선배의 생일이 오늘이라는 건 거짓말이 아닌가보다.


 “놀랐지?”


 마츠카와 선배가 씩 웃으며 물었다. 야하바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꽤 섭섭했다는 건 제 마음속의 영원한 비밀로 붙여두기로 했다.


 “원래 이런 게 깜짝 파티의 묘미지.”

 “혹시 선배는 이 파티, 알고 계셨어요?”

 “내가 수업 끝난 후 빵집에 가서 케이크를 사오는 동안 진짜로 감독님과 면담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


 진짜 그런 줄 알았다. 면목 없다. 세터 자리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 침묵하는 제 머리를 엉클인 그가 축하를 건넸다. “생일 축하한다, 야하바.” 사실 가슴이 뭉클거렸다. 역시 배구부가 최고구나. 이곳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다짐할 무렵,


 “, 이건 네 생일 선물.”


 유감스럽게도 마츠카와 선배가 줄곧 들고 있던 케이크가 정면으로 제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


 거리가 코앞이었던 터라, 야하바는 피할 도리 없이 고스란히 정면으로 생크림 케이크를 안면에 얻어맞고 말았다. 사람들의 폭소가 우렁찼다. 크림과 빵이 제 얼굴에 뭉개지는 감촉이 지나치게 생생하다. , 진짜! 야하바는 급하게 케이크를 떼어내며 서둘러 눈만 닦아냈다.


 “선배!”


 원망스레 곧장 마츠카와를 찾자, 다행스럽게도 저를 대신해 그에게도 공격을 감행하려는 사람이 있었다. 마츠카와의 얼굴을 뭉갤 것이라며 케이크를 무려 두 개나 준비한 하나마키였다.


 “, 마츠카와. 너도 생일이잖아!”


 달려드는 하나마키 선배에게서 위협을 느꼈는지, 서둘러 도망치려는 것을 오이카와 선배와 이와이즈미 선배가 붙잡아 억지로 끌고 들어왔다. 양 팔이 고스란히 붙잡힌 덕분에, 마츠카와 선배는 마치 세례 받는 것 마냥 지긋이 케이크에 얼굴을 박았다. 물론 선배는 당하지만은 않았다. 남은 생크림이라고 어떻게든 묻히려고 뛰어다니다가, 결국은 함께 먹으려고 따로 사 둔 케이크까지 들고 던지기 시작했다.


 물론 저는 오늘은 특별히 마츠카와의 편이 되기로 했다.


 점심시간에 함께 과자를 고르는 중에도 모른 척 잡아뗐던 얄미운 1학년 동료들을 노리고 투척한 것이다. “너무하네!” 비명들이 외쳤지만 제 알 바가 아니었다. 솔직히 나도 너희들이 너무하다고 생각했거든. 체육관 바닥이 생크림 밭이 되고, 유다 선배가 그것을 미끄러져 넘어지고, 이윽고 들어온 감독과 코치가 너희 지금 뭐하는 거야!!” 외칠 때까지 장난은 계속되었다.


 십 분 동안 잔소리를 듣고, 삼십 분 동안 뒷정리를 하고, 다시 이십 분을 기합 받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이 즐겁게 느껴졌다. 뒤늦게 코트에 들어서는 발걸음은 날아갈 것 같고, 와타리가 선물로 건네준 서포터는 제 무릎에 착 들어맞았다. 잠에 들 때까지 이 들뜬 기분 영영 떠날 것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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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니를 뺐다.


 의사는 굳이 빼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지만 자라는 과정이 고통스러워 빼달라고 우겼다. 마취를 하고 왼쪽 위와 아래를 발치했다. 안쪽에 물고 있는 솜을 뺄 수 없어 말을 꺼내는 것이 힘겨웠다. 자신의 반 투정으로 치과까지 함께 온 아오네가 눈빛으로 괜찮냐 물어도 후타쿠치는 음음, 목울음 이상의 소리를 내지 못했다. 반쯤은 다행이었다.


 아직 마취는 풀리지 않았지만 입 안쪽이 허하고 얼얼한 감각은 생생했다. 지금은 이런데 마취가 풀리면 어떻게 될까, 약을 처방받으면서도 어쩐지 두려웠다. 약사는 덩치가 곰만한 사내 둘이 들어와 아무 말도 없이 처방전만 내미는 모양을 두려워했다. 저희 눈치만 힐끔 살피는 것이 느껴졌지만 후타쿠치는 대답을 할 처지가 아니고, 아오네는 원체 말이 없는데다가 애초에 직원의 눈빛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사내 둘과 약국 직원 하나, 약사 한 명 총 넷 사이의 어색한 침묵만을 두고 겨우 약을 받아 밖으로 나선다.


 햇빛이 따사로워 치과에서 찜질을 하라며 주었던 얼음팩을 조용히 왼쪽 뺨에 가져다 댄다. 지나치게 차가웠다. 아오네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에 그저 손을 내저어 보였다. 신경 쓰지 마. 아오네는 미심쩍은 낯으로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제 손짓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후타쿠치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손을 뻗어 제 친구의 뺨을 잡아 앞을 보게 했다. 이정도면 알아듣겠지.


 얼음팩을 줄곧 붙이고 있으니 팩이 제 맨살에 달라붙은 듯하여 다시 뗐다. 길거리에서는 어떻게 팩을 붙이고 있어도 전철 안에서까지 가져다 대고 있는 것은 조금 쪽팔렸다. 냉기 남은 뺨을 손바닥으로 슬쩍 가져다대니, 감각 없는 볼이 벌써 퉁퉁 부어올랐다. 혀조차 따끔하게 느껴졌다. 괜히 마음까지 서러워진다. 선배들이 그토록 아프다며 겁을 주더니, 정말 아프잖아. 제대로 된 고통은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도 고통스러웠다. 엄살이 심한 편은 아닌데.


 좌석에 앉아, 괜히 부어오른 뺨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가만히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할 때까지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핸드폰이라도 만지겠지만, 그럴만한 기분도 아니었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불편하기도 했고. 온 신경이 이미 빠져나간 사랑니에 머무르듯 했다. 의사는 뿌리까지 잘 뽑혔다고 말했는데.


 역이 멈추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까만 가쿠란을 입은 학생무리였다. 얼굴이 낯이 익었다. 하필 오늘같은 날에.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선한 인상의 남자까지 발현한 후타쿠치는 냉큼 고개를 숙였다. 필사적으로 제 얼굴 가리고 부푼 볼까지 숨긴다. 오초. 전철 문이 닫히고, 까만 교복을 입은 무리들이 자신의 반대쪽 좌석에 앉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다리와 운동화가 보였다. “저기 다테공 아냐?” “! 가서 말 걸어볼까?” “뭐라고?” “물론 다음 번에도 쳐부숴주겠다고!” “그건 말을 거는 게 아니라 시비를 거는 거지. 유우,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얌전히 앉아 있어.” 유난히 짧은 다리가 시선 끝에서 달랑달랑 거린다. 평소라면 빈정거릴 법도 한데, 말을 할 수가 없어 후타쿠치는 차라리 시간이 지나기를 기원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강렬한 시선이 이마에 닿았다가 떨어진다. 소리는 없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이제는 저 다리 짧은 소년을 말린 그가, 익히 알고 있던 소년이 자신에게 말을 걸 이유도 없다.


 후타쿠치는 침묵했다. 벌써 마취가 풀리는지 입 안 어딘가가 아려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내려야 할 역에 도착해서야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왼쪽 뺨을 붙잡은 채. 아팠다. 몹시도, 누군가 제 입 안을 주먹으로 내리꽂듯 했다. 몸 전체를 손으로 쥐어 잡고 흔들 듯 했다. 사랑니가 나기 시작할 적보다 더 아팠다. 그는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얼음팩을 뺨에 붙였다. 그새 약간 녹아 축축하다.


 함께 내린 아오네가 다시 저를 응시했다. 입을 열지 않아도 의미는 안다. 후타쿠치는 아까 전 그랬듯이 손을 휙휙 내저었다. 신경 쓰지 마. 아오네는 이번만은 제 의미를 알아듣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했다. 후타쿠치는 나란히 걷는다.


 그러나 전부 거짓말이다. 빠져나간 자리가 고통스러웠다.

 





 

 남자인 친구와 영화를 보는 약속을 잡는 것은 특이한 일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라이벌 학교의 에이스와 영화를 보기로 한 것은 어느 정도 특별한 일이 될 수 있다.


 쿠니미는 귀찮은 기색 잔뜩 내보이면서도 옷장 문을 열었다. 아오바죠사이 배구부의 주전 선수인 제가 시라토리자와 배구부의 에이스와 만난다는 것을 혹시라도 알게 된다면 득달같이 이것저것 캐물으려 달려들 것이 분명해, 오늘의 만남은 당사자들을 제하곤 아무도 몰랐다. 작년 겨울 있었던 미야기현 1학년들의 단체 합숙을 말해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함께 합숙에 참여했던 킨다이치마저 부럽다던가, 왜 저는 빼놓고 만났냐고 토라진다면 제 추측은 더욱 자명하다.


 데이트도 아니고, 얼굴 아는 남자와 영화를 볼 뿐인데 딱히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두툼한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었다. 꽃봉오리 삼킨 삼월의 끝은 아직 겨울 냄새를 품고 있다. 자고로 옷은 따뜻한 게 제일인 법이다. 소년은 옷을 입고, 가방조차 없이 양쪽 주머니에 각각 지갑과 핸드폰을 넣고 집을 나섰다.


 사실 그는 아직까지도 왜 고시키 츠토무가 다른 동급생이나 배구부 동료들을 두고 하필 제게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한 건지 알지 못한다. 광견이라 불리는 제 부활동 선배처럼 모난 성격도 아니고, 최소한 친한 사람들에게는 썩 살가워 보였는데. 심지어 그조차 대회나 연습시합을 제외한, 즉 사석으로 상대를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끔 메일을 주고받기는 했지만 그 이상은 되질 못했다. 혼자서 영화 보는 것이 그리도 민망한가. 어차피 저도 보고 싶었던 액션 영화였기에 순순히 응해줬지만.


 영화관 앞 동상 근처에 도착하자 약속 시간 5분 전이다. 쿠니미는 약속을 잘 안 잡는 만큼 대개의 경우에서 그럭저럭 약속을 준수하는 편이었다. 홀로 고개를 주억이며 주위를 돌아보던 그는 낯익은 얼굴에 인상을 찡그렸다. 상대가 먼저 나와 있었다. 그것도 저런 몰골로.


 저런 몰골이라 함은, , 쿠니미는 차마 가까이 하기 민망하여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모른 척 다시 집으로 돌아갈지 잠깐 머릿속으로 갈등했다, 도저히 사내 둘이서 영화를 보러 갈 때 할 차림새가 아니라는 의미다. 청자켓과 청바지를 입지는 않았다. 형광 핑크색 셔츠를 입고 있지도 않았고. 썩 준수했다. 그래, 문제는 그 점에 있다.


 고시키의 옷차림이 남자 둘이서 영화를 보러간다 하기에는 지나치게 준수했다.


 빳빳하게 다린 흰 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재킷까지. 누가 보면 소개팅이라도 하러 가는 줄 착각할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바지는 검정색 데님이라는 것 정도. 신발도 운동화다. 정말 다행이군. 쿠니미는 바람에 흐트러지는 앞머리를 필사적으로 다듬는 고시키를 상당히 먼발치에서 응시했다. 손이 시려 후드 주머니에 꽂은 찰나였다. 고시키의 고개가 휘더니 제 코앞에서 멈췄다.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년이 저를 발견했음을 직감했다.


 이제 도망도 못 가겠네. 아니, 백 번 생각해도 저기 내가 아니라 예쁘게 입은 여자 아이가 가야할 것 같은데. 영화관이 아니라 조금 비싼 파스타라도 먹으러 가야할 것 같다고. 쿠니미는 투덜거리면서도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쿠니미! 고시키가 평온하게 빠른 걸음으로 제게 다가왔다.


 “왔어?”

 “.”

 “옷 후드티 입었네?”

 “그냥 영화 보러 나올 뿐인데 뭘.”


 굳이 신경 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제 말에 고시키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었다. . 그래? 조금 서운한 것도 같지만 도저히 이해 불가의 영역이다. 옷의 이야기가 나왔기에 쿠니미 역시 예의상 한 마디 해주기로 했다.


 “오늘 차려입었네. 오후에 데이트라도 있어?”

 “?”

 “? 데이트 있냐고.”


 헌데 반응이 이상하다. 기껏 차려입었다고 말도 해줬더니 도리어 그게 무슨 의미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미간을 좁힌다. 넥타이까지 매고 올 정도면 아무리 생각해도 데이트 아니겠냐고. 혹은 가족행사 정도? 이런저런 짐작은 그의 외침으로 인해 끝이 났다.


 “나 여자 친구 없어!!”


 얼마나 쩌렁쩌렁한지, 주위를 지나던 다른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쿠니미는 급작스레 민망해졌다. 여자 친구 없는 게 자랑이냐고. 자존심 상했나, 왜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건지.


 “그럼 말고.”


 쿠니미는 시큰둥하게 말하며 시선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영화관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놀렸다. 솔직히 좀 쪽팔렸다. 고시키가 그의 옆에서 발걸음을 맞추며 재차 강조했다. 나 정말 여자 친구 없거든? 인기는 많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여자도 없어! 그 재잘거림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얌전히 무시하려던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고 대답하고 알았다. 어차피 그가 누구와 사귀는지 제가 알 바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다. 이래서 피곤한 타입은 질색이다. 영화는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지치는 듯했다.


 아주 약간 다행스럽게도 고시키가 미리 표를 예매해 둔 덕에 팝콘과 콜라만 사서 들어가면 되었다. 영화 도중에 무언가를 많이 먹는 성격은 아니라, 팝콘도 콜라도 중간 사이즈로 하나만 샀다. 고시키도 제 말에 많이 먹지는 않는다고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다.


 영화관에 입장해 적당히 가운데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서로 부활동에 대해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조명이 어두워지고 광고가 나올 즈음에는 입을 다물고 팝콘을 조금씩 집어 먹었다. 어차피 광고를 볼 때 아니면 뭘 더 먹을 것 같지도 않았다. 팝콘을 집으려다 서로의 손가락이 얽듯이 부딪치고 난 후로 고시키는 이상하게도 더 이상 팝콘에 손을 뻗지 않았다.


 “더 안 먹어?”

 “, . 난 괜찮아.”


 황급히 손사래 치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보여 다시 팝콘을 몇 개 집어먹는다. 어차피 팝콘도 제가 들고 있는데, 영화 도중에 어련히 알아서 먹겠지. 애도 아니고. 달달한 캐러멜 맛 팝콘을 다시 한 움큼 쥐려는데 티셔츠의 소매가 흘러내려와 손등을 반쯤 덮는다. 쿠니미는 물끄러미 그것을 보다가 그냥 팝콘을 쥔 채로 빼냈다. 음식을 입 안에 털어 넣은 후 소매를 살펴보니, 다행스럽게도 부스러기가 묻지는 않았다. 소매를 살짝 걷고 다시 팝콘을 집는데, 줄곧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고시키가 말을 던졌다.


 “쿠니미, 너 그 옷 잘 어울린다.”

 “그래?”


 가끔 집 근처에 나갈 때 편하게 입던 옷이다. 자주 빨아서 후드 티가 늘어졌을 정도라,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듣는 게 조금 이상했다. 조금 미심쩍게 대답하자 고시키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첨언한다.


 “진짜 귀여워 보여.”


 그러니까, 뭐가? 쿠니미가 고개를 슬 기울였다. 설마 제가 귀엽다는 뜻은 아니겠지? 다 늘어진 옷이 귀엽다는 것도 상당히 이상한데, 제가 귀엽다는 말은 그보다 열 배는 더 이상했다. 부모님이나 선배도 아닌 저와 동갑인 사내 아이가 말했다는 것도 그 이상함에 한 몫 단단히 했다.


 그러나 뭐가?” 라고 물으려던 쿠니미의 말은 묻히고 말았다. 조명이 다시 한 번 어두워지며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영화 배급사 광고가 스크린에 떴기 때문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찝찝함을 가득 안고 제 앞으로 시선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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